문해력의 문맹
* 강인한
이따금 아나운서가 아닌, 방송기자가 뉴스를 전하는 내용 중 ‘창고’를 ‘창꼬’라고 발음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류창고’를 ‘물류창꼬’라고 발음하는 걸 듣는 게 적지 않지요. 귀중품 간수하는 ‘금고’를 그런 식이라면 ‘금꼬’로 발음할는지 모르겠군요. 지난해 12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정부가 추진했던 ‘문재인 케어’를 겨냥,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넘게 쏟아 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까]됐다”고 비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 년에 수천 번 보험을 이용하기도 한다 했습니다(일 년 내내 사용한다 해도 365번인데). 의료비가 엉뚱한 데로 새나가는지 사실의 진위 여부는 전문가들이 밝힐 일이지만 내 귀로 들은 건 “그 부담이 전가[전까]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는 희한한 발음이었습니다. 대통령실엔 아나운서 출신 김은혜 홍보수석이 있습니다. 정확한 한국어 사용으로 대통령의 언어를 순화시키는 아나운서 출신 홍보수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인 래퍼 노엘(22·장용준)의 신곡 가사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사흘과 나흘을 혼동한 듯한 구절이 담겨 있어서입니다. ‘Like you’란 신곡 가사 일부를 공개했는데 ‘하루 이틀 삼일 사흘 일주일이 지나가 나 다시 울고 보채도 넌 떠나 버릴 걸 잘 알아’라고 적었습니다. 1일부터 2,3,4......10일까지를 순우리말로 적어봅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문제는 '사흘'입니다. 요즘 신세대 중 적잖은 사람들이 그 '사흘'을 '4흘'로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삼일 다음에 사흘이라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둘이 '사귀다'란 말. 둘이 사귀었다를 줄여서 둘이 '사겼다'라고 쓰면 안 됩니다. 줄일 수가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바꾸다의 피동 바뀌다 역시 과거 시제로 '바뀌었다'로 써야 하는데 '바꼈다'라고 쓰는 건 잘못입니다.
그리고 '구토(嘔吐)'를 '토'라고만 줄여 쓰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토하다"와 "토를 하다"를 같다고 생각하여 잘못 사용하는 걸 많이 봅니다. '토하다'는 바른 말이지만 '토를 하다'는 틀린 말입니다. "토 나온다"라는 희한한 말이 대수롭지 않게 쓰이기도 합니다.
'스미다'는 매우 조금씩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속으로 "스며들다"와 밖으로 "배어나오다"는 반대의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배우기 쉬운 한글의 편리함 때문인지 전 세계에 자랑할 만큼 전체 국민 중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글로 쓰여진 문장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은 놀랍게도 7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거칠고 험한 범죄자를 다루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검찰들 언어가 뒷골목의 불량배 못지않게 비속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게 웃지 못할 현실이라고 합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비속어를 평소에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는 걸 그냥 이해하며 지나쳐버리기엔 너무 착잡한 심경입니다. 자라나는 이세 국민들을 위해서도 본이 되어야 할 대통령의 언어는 누구보다 바르고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바르고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게 너무나 어렵다면 국어학자를 찾기보다 아나운서 출신 홍보수석한테 학습하면 됩니다. 그리고 모든 방송매체들은 충분한 언어 학습이 이루어질 때까지만 당분간 그분이 말하는 모습을 방송 전파로 내보내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