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의 비유로 인자의 오심에 대한 가르침을 주심
마태복음 24장 32-35절 / 32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28-31)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인자의 오심’에 대하여 알려 주심
마태복음 24:32-35은 앞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인 인자가 오시는 날에 있을 일인 천사를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에 이르기까지, 곧 온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모을 것이라는 것에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인자가 오실 것에 대한 분명한 사실, 곧 확실성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무화과나무를 들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라. 내가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무언가 교훈을 주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그것을 배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면서 열매가 맺히고, 그래서 그 후에 잎사귀를 내는 것은 계절적인 시기로 여름이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는 것을 보면 “벌써 여름이 다 됐네!”라고 말하거나 “이제는 여름이구나!” 라고 사람은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에서는 봄이 되면 먼저 꽃이 피고 꽃이 지면서 잎이 나오는 꽃으로 가장 빨리 피는 꽃 중에 산수유나 목련화를 보면 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진달래, 개나리가 활짝 피면 완연한 봄이며, 철쭉이 피면 한창 봄이 진행되어 철쭉과 연산홍이 피면 한창 봄이 진행되는 것을 피부의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꽃들이 지고 잎으로 무성하면 봄은 그 절정을 지나 점차 끝에 이르게 되고 여름의 시기에 들어섬을 누구나 인식을 합니다. 그것처럼 유대인들은 무화과나무의 어린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나올 때가 되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들어서 이것과 같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오시는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고 있는 ‘이런 일’은 마태가 ‘이 모든 일을 보거든’으로서 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29-31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하신 말씀인 14-28절을 두고서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29-31절은 인자가 오심으로써 있을 일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나, 14-28절은 인자가 오시기 전에 인자가 오시는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징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큰 환란에 의한 징조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큰 환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였으며,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나기 시작하면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인자가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리는 징조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알아야 할 것은 큰 환란은 인자가 오실 때까지 진행되는 것에서 마침내 인자의 오심이라는 시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큰 환란이라는 것을 그릇된 종말론자들을 비롯하여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느 날의 한정된 시점으로 알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있고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일이 있어오는 것에서 여름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하면, 여름의 시기가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에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고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인자가 다시 오시는 재림은 반드시 있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가까이 와 있는 것에 의해서 이것 앞에 먼저 큰 환란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함께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보는 큰 환란이 있었으며, 이것에서 보는 큰 환란은 지엽적인 것이며 부분적인 것이든 그것보다 더 큰 재난의 성격의 것이든 세상 끝 날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마침내 창세 이후로 가장 큰 환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핵폭탄이 터지고, 환경 재앙이 와 세상이 멸망하는 식으로서의 마지막 환란이라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29-31절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하늘 이 끝에서부터 저 끝에 이르기까지 사방에서 택하신 자들을 모은 자들로 새로운 세계를 펼쳐 나가실 것에서 처음 하늘과 땅의 이 세상은 없어질 것으로 말미암아 사방에서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에서 겪게 되는 세상의 종말로 말미암아 이후 영원한 고통의 멸망에 있는 그야말로 큰 환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앙함으로 그들이 겪을 고통과 불행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성전의 파괴와 함께 예루살렘 성의 멸망에서 겪은 것이 기억되지 않는 참으로 큰 것입니다. 이것이 인자의 오심으로 있게 됩니다.
‘인자의 오심’에서 그리스도인은 주의 위로를 받으며 힘을 얻음
그런데 인자가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인은 큰 고통을 당합니다. 이때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로잡혀 법정에 끌려가고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박해를 인하여 배반하고 배도와 배교에 있게 됩니다. 그에 따라서 심지어는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형제가 형제를 서로 죽이는데 넘겨주는 일까지 벌어지곤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이적과 놀라운 일들을 행하면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하거나, “그리스도가 저기 있다”면서 “저 분이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미혹케 하는 일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속임을 당하고 그들이 속이는 거짓말에 넘어갑니다. 이렇게 교회가 있어온 역사에서 이런 일이 있어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하여서 있게 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그 속에서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위로가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께서 이야기로 예고하셨는데, 이는 그 실제 상황의 전개를 머리속에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얼마나 심한 큰 고통과 불행을 겪는 위험에 처할 것이냐는 정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통해서 생명의 위험을 겪는 정도의 크고 작은 그 모든 여부에서 많은 사람이 주님에게서 떠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해주시는 말씀은 인자가 다시 오시며, 그래서 인자가 가까이 옴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서 있게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듭 말하거니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배척하는 것이며, 주님을 믿고 따랐던 자들에게서도 주님을 배신하여 주님에게서 떠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음으로 인내하여 견디는 자들도 있습니다.이것에 있는 자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인자의 오심입니다. 이들은 ‘인자가 문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 것인지 아시는지요.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눈을 감을 것이지만, 눈을 딱 뜨니 인자를 봄에 있게 됩니다. 해서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1;1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와 같습니다. 이렇게 문 앞에, 그렇게 바로 눈앞에, 코앞에 와 있음에 계신 인자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참으로 큰 위로가 됩니다. 인자를 뵈며 영접을 받아 주의 나라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이후로 다시 없을 큰 환난을 감함에 있는 그리스도인
예수님은 자신의 오심을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는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이 세대’는 우리가 말하는 우리의 ‘한 세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당시에 살아 있는 그 세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인자가 오실 때까지의 세대를 뜻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성육신을 통해 첫 번째 강림하신 때로부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두 번째 강림하실 때까지의 세대입니다. 그리고 ‘지나가기 전에’는 ‘지나가지 않는다’를 뜻하고, ‘이 일이 다 이루리라’는 이 모든 것들이 될 때까지‘, 또는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면‘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이 될 때까지 이 세대는 결코 지나가지 않는다”를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재림 전에 있을 것으로 예언된 큰 환난들에 의한 징조들이 모두 다 이루어질 때까지는 결코 이 세대가 지나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 세대는 당연히 재림 전에 일어날 큰 환난들의 징조를 모두 다 겪게 될 것을 말합니다. 해서, 예수님의 재림 전에까지 있게 되는 이 세대 – 모든 세대 - 는 그들의 세대에서 있게 되는 큰 환난을 당함에 있는 징조들을 모두 다 겪게 됩니다. 그들은 이렇게 자신의 세대에서 있게 되는 환난들과 징조들을 겪음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께 가진 믿음에서 배반, 배도, 배교에 있게 하는 마귀의 시험과 그에 따른 대적을 받는 큰 어려움을 겪지만 끝까지 참음으로 인내하는 믿음에 있어 그 모두를 이기고서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함에 있는 재림을 기쁨으로 대합니다. 이에 재림하신 예수님은 그들과 주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하심으로 창세 이후로 다시없을 환난을 감하심에 있으십니다. 해서, 앞선 구절인 30절에서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이렇게 인자께서 다시 오시기에 앞서 환난들에서 보게 되는 징조들을 겪을 때 이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와 있는 것에서 있는 일임을 인식하고 참음으로 인내하여 견딜 것을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주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으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굳건히 하심
예수님은 자신이 오심으로 인하여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의 확실성을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으로 해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기까지는 그 말씀의 능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때까지 그 말씀은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전능한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이룰 것이다.”(참조. 창 17:1) 이것을 마태복음 21:18-21; 마가복음 11:12-14, 20-24에서 보게 되는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에서 행하신 이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다시는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지 못할 것이다”란 말씀을 하셨을 때, 그 즉시로 말씀이 저주하신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 무화과나무는 말라 죽어갔던 것이며, 이것을 다음날 아침에 예수님과 함께 걷던 제자들이 보고 “선생님,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저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한 것입니다. 그렇듯이, 예수께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이 주어진 그때부터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 발휘가 되고 있는 것이며, 그에 따라서 마침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어진 것을 보게 될 것에 있는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