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 8,2-4ㄱ.5-6.8-10; 1코린 12,12-30; 루카 1,1-4; 4,14-21
+ 찬미 예수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이제 곧 있으면 설인데요, 설 명절을 맞아 가족과 기쁜 시간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명절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살이 찌기 쉬운데요, 만두는 살이 안 찐다고 합니다. 이미 ‘쪄서 나오기 때문’이라네요.
오늘은 ‘해외 원조 주일’이며 ‘하느님 말씀 주일’입니다. 하느님 말씀 주일을 맞아 특별히 우리 본당 ‘거룩한 독서’에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가톨릭성서모임과 청년성서 그룹 공부 그 밖의 여러 과정에 많은 분이 함께하여 주시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으시고 필사하시면서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시려는 모든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9년에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라는 제목의 교황 교서를 발표하시며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 말씀 주일’로 지낼 것을 선포하셨는데요, 연중 제3주일로 정하신 이유는,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지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성경이 참되고 굳건한 일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황님은 교서에서 오늘 제1독서인 느헤미야기 8장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느헤미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의 일들을 기록한 성경인데요, 기원전 587년부터 538년까지 이어진 바빌론 유배기간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와 다시 100년이 지나자, 바빌론과 그 뒤를 이은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였던 아람어를 쓰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이 고전 히브리어로 기록한 성경 말씀을 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백성이 모인 가운데 사제이며 율법 학자인 에즈라가 모세 오경을 가져와서 읽고 아람어로 번역하고 설명해 주자 그들은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드리고 울기까지 하였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즈라와 레위인들은 “‘오늘은’ 야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말라”고 한 후 “야훼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이상적인 말씀의 전례의 원형입니다. 저는 신학생 때, 이렇게 주일 미사를 봉헌한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는데요, 하느님 말씀 한 글자 한 글자에 감동해서 우는 그런 미사 말입니다. 에즈라는 백성들을 달래면서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라”고 하는데, 미사에서 이 권고는 성찬의 전례로 이어지면서 우리는 주님의 몸을 영하게 됩니다.
교황님은 교서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몇몇을 위한 유산이나 일부 특권층을 위한 모음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듣고 말씀 안에서 자신을 깨닫도록 부르심 받은 이들의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을 들음으로써 갈라짐과 분열에서 일치로 나아가는 주님 백성의 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후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오십니다. 첫 번째로 하신 일은 오늘 제1독서에서 에즈라가 그러했듯 성경을 봉독하신 것입니다. 전례 때에 독서를 하시는 분들은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이어받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을 읽으십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사야서는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로부터 육백 년 뒤에, 이 말씀을 당신 당대의 사람들, 즉 여전히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이들,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눈이 먼 이들, 헤로데와 같은 폭군에게 억압받는 이들에게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으로 하여금 이들에게 주님의 은혜로운 해, 즉 희년을 선포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신 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오늘’은, 그리고 제1독서에도 나온 ‘오늘’은, 2천 년 전의 어떤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2025년 1월 26일 ‘오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금 주님의 은혜로운 해인 희년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2025년은 희년입니다. 희년은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기억하며 거룩함의 본성을 회복하는 해입니다. 본래 50년에 한 번씩 거행되던 희년은, 서기 1475년부터 25년 주기로 바뀌게 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희년을 한 번도 지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일생에 한 번이라도 희년을 지내게 하려는 취지에서 25년 주기로 바뀌었습니다.
올해가 지나면 다음 희년은 2050년입니다. 그때 나는 과연 살아있을까요? 어쩌면 올해가 우리 일생의 마지막 희년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희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서울대교구 사목국에서는 “희년을 잘 살기 위한 7가지 키워드”라는 제목의 영상을 제작했는데요, “순례, 그리스도와의 만남, 화해, 기도, 전례, 신앙고백, 대사”라는 7가지 주제어를 제시했습니다. 오늘 강론 원고를 우리 본당 다음 카페에 올리면서 이 영상을 첨부해 드릴테니 참조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희년을 통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거룩함의 회복이며 그에 따른 삶의 변화라고 영상은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라는 몸의 지체라고 말씀하십니다. 치통이 생기면 우리의 온 신경은 그리로 갑니다. 위장이 ‘휴~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귀가 ‘내가 안 아파서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몸 한 군데가 아프면, 그 부위만 아픈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픈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 중 누가 고통 중에 있을 때,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지 말고, 자기 일로 여기며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도와주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 저녁에 특별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지난 12월 5일 서품 받으신 수원 교구 심기윤 요한 신부님이 예수수도회 수녀원에서 봉헌하시는 미사를 함께 드렸습니다. 심기윤 신부님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박성호 임마누엘 학생의 단짝 친구입니다. 둘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고, 예비신학생 모임도 함께 다니며 꼭 함께 신부가 되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면서 두 친구의 운명은 달라졌습니다.
고 박성호 임마누엘 군의 이모님이 예수수도회 수녀님이기에, 수도회에서 심기윤 신부님을 초대했습니다. 안산 분향소에 박성호 군을 위해 만든 작은 나무 경당이 있었는데요, 저는 2016년 성탄에 그 경당에서 박성호 임마누엘의 친구와 가족들을 모시고 함께 미사를 봉헌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이 임마누엘 축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모 수녀님께서 그때를 회상하시며 저도 심 신부님 미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조카가 사제가 되어 함께 봉헌했어야 할 그 미사를 제가 대신 함께 봉헌하니 마음이 많이 숙연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듣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신부님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하느님을 가장 사랑하던 사람에서 하느님을 가장 미워하는 사람으로 변했었다고 합니다. 도망치듯 신학교에 입학하여 몇 년 동안 하느님을 미워하고 원망하다가, 어느 날 기도 중에 “내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예수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라는 말씀 안에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심 신부님은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말씀을 서품 성구로 정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신부님을 깊은 절망 한가운데서 지켜주셨다는 것을, 절망 한가운데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신부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하느님은 말씀을 통하여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사랑하는 친구 역시 말씀 안에서 함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통 한가운데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 말씀께서, 우리 안에 있는 절망과 어둠과 갈등을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에게는 되뇌어야 할 말씀이 있고, 흘려보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되뇌어야 할 말을 흘려보내는 것도, 흘려보내야 할 말을 그러지 못하는 것도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가장 불행한 일은 흘려보내야 할 말을 되뇌고 있는 것입니다.
상처 주는 말, 서운하게 하는 말, 화가 나는 말을 되뇌지 말고 하느님 말씀을, 성경 말씀을 되뇌야겠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되뇔수록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자라고, 하느님께서는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갈등에서 화해로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https://youtu.be/IaH6WJmL-kU?si=WiybeFI07-WxApUe
* 희년을 잘 살기 위한 7가지 키워드
박성호 임마누엘과 심기윤 요한 사제
출처: 사제의 꿈 못다 피운 친구, “그 손 맞잡고 주님께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