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상)
"주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설립자 성 에오제니오 드 마제노).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Oblates of Mary Immaculate; O.M.I)는 프랑스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가 1816년 엑상 프로방스에서 설립한 수도회다.
그의 정신은 "주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였다. 그런만큼 오블라띠 선교수도회의 카리스마는 "가장 버림 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것"이다.
창설자 에우제니오는 1861년 5월 21일 마르세이유에서 세상을 뜨면서 회원들에게 "너희들 안에서 사랑, 사랑,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 열정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라"고 유언했다. 그같은 '열정을 다하는 사랑의 정신'은 현재까지 세계 70개국에 5000여명 회원들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결과로 퍼져 있다.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선교 수도회로서 구세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수도자들은 사도처럼 인류 구원 사업의 '협조자'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여기서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협력한다는 것은 '말씀'에 따라서 가난한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 소외된 자들에 대한 복음 전파를 뜻한다. 특히 교회가 요청하는 부르심에 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창립자는 평범하고 소박한 민중들과의 직접적이고 친숙한 친교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또 이들에게 '말씀의 빵을 나누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특별히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가 전통에 의해 확립한 하나의 선택이요 자세다. 그러한 선택과 자세는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가 항시 염두에 두고 있는 '사목'과 '선교'를 우선한다는 특성 및 복음 전파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며 그리고 선교 활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확고한 믿음의 근원이기도 하다.
특히 창립자가 남긴 정신적 유언인 "너희들 안에서는 사랑, 사랑, 사랑을 실천하라. 너희들 가운데를 벗어나면, 영혼들에게 열정을 실천하라"는 요청은 공동체적 삶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회원들은 그의 가르침을 따르며 공동체 안에서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주어진 선교 사명을 완수하려고 노력한다.
또 오블라띠인의 삶은 성모 마리아를 위한 삶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그분의 어머니이신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를 만나고, 그분에 대한 사랑을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그런 만큼 결국 근본적으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봉헌 선교 수도회'라는 수도회 이름의 뜻 처럼 마리아를 항상 어머니로 여기고 마리아의 특성을 이어받고 있는 수도회라 할 수 있다.
"오블라띠인의 삶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다. 재산, 가정, 현세에서 안주할 수 있는 모든 부귀 영화를 버리고 선교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예수님을 따르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생활안에서 증거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한다. 오블라띠인의 삶은 인간 공동체를 위한 삶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9월 1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하)
오블라띠회의 기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다. 죽음과 폐허의 모습만을 남겨놓은 대혁명에 의해 교회는 분열과 박해아래 놓이게 되고 사회 전체는 비 그리스도화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처지에서 오블라띠회 창립자 에우제니오 데 마제노드는 젊은이들과 죄수들 그리고 엑상 프로방스 지역의 천민들 사이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또 그리스도를 위해 평생을 바치길 원하는 사제들을 모았다.
이들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며 가능한한 모든 방식과 수단을 통해 '본당 선교- 공동체 피정'을 실시했다. 복음 전파의 지역적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이기도 했던 이 활동은 더불어 세계적인 수도회로 개방되는 씨앗이기도 했다.
"비록 우리들의 수가 적고 더욱 더 필요한 요구가 우리 지역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선교적 열의를 제한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속에는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포용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려는 정신이 있다."
활동에 있어 첫 번째 규칙을 이같이 밝힌 에우제니오 데 마제노드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스승으로 삼기 바라는 이들은 재산과 재능, 자신의 여가와 영혼.육체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며 교회와 이웃의 성화에 바칠 준비가 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하면서 선교 단체 구성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그에게 있어 선교를 위한 단체 구성은 복음 전파에 보다 효과적으로 부응하려는 의지와 사도적이며 공동체적 삶을 통해 성화에 이르려는 깊은 열망을 포함한 것이었다.
에우제니오는 수도회 첫 번째 목적을 농촌 지역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음 전파와 평신도 양성을 위한 본당 영적 피정 지도 등으로 삼았으며 신학교 운영과 청소년 사목 등으로 사도직 분야를 확대해 갔다.
초창기 수도회에 원동력과 새로운 활력을 부여했던 것은 '백성들에게'라는 전도 임무의 방향이었다. 1841년 캐나다로 수도자들을 파견한 에우제니오는 라틴아메리카에 이어 스리랑카 등 아시아 전역으로 선교를 폈고 남아프리카에도 진출했다. 이런 가운데 오블라띠회의 선교 역량은 에스키모인들이 사는 북극에서 호주 토착민, 파라과이 원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지구 구석구석으로 뻗쳐 나가게 됐고 수도자들 외에 오블라띠회 영성을 사는 27개의 단체가 생겨났다.
한국 진출은 1990년 당시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 요청으로 이뤄졌다. '주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는 수도회 목적대로 한국 사회안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작업을 시작한 이들은 현재 노숙자 무료급식소와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 사목을 중심으로 병원사목 대학교 젊은이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속적인 성소 계발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오블라띠회는 이를 통해 남한은 물론 북한과 중국 선교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또한 평신도 영성지도, 젊은이 사목 강화 구상과 함께 끊임없이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사랑으로 오블라띠회의 카리스마를 한국 교회에서 펼친다는 계획이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수녀회
예수 그리스도 수녀회(La Communidad de Jesucrito : C. J.)는 한국에서 창설됐음에도 남미에서 먼저 사도직 활동을 시작, 에콰도르에 본원을 두고 있는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74년 전주 고창본당에서 창설된 예수 그리스도 수녀회는 창설자 최규업 수사가 1980년 선교사로 남미에 파견, 1982년 에콰도르 과야킬대교구 소속으로 사제품을 받고 과야킬대교구 팔말본당 주임으로 활동하면서 남미에 터전을 마련했다.
회원들을 현지에 초청 양성함으로써 수녀회 활동을 시작한 예수그리스도수녀회는 1987년 과야킬대교구로부터 남녀 수도회의 인가를 받고 더욱 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됐으며 한국에는 1989년 수원교구에 수련소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진출을 알렸다. 현재는 한국 및 에콰도르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영성은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셨을때의 그 「봉헌」과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회원들은 복음서에 기초를 둔 회헌에 따라 예수 사건을 온 세상에 상기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마음의 첫 자리에 두고 날마다 회원 자신의 십자가로 충실하게 주님을 추종하는데 사명을 두고 있다(루가 9, 23).
주님의 봉헌 영성을 교회와 온 세상 안에서 현실화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수녀회는 온 세계를 그리스도께 봉헌해드리고 자신의 완덕을 이루어 나감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데 마음을 모으고 있다.
특히 예수님의 소박한 인간성을 본받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회원들은 예수 마리아의 정신인 야훼의 가난한 자들(Anawim) 즉 겸손, 가난, 순명의 영성에 따라 새복음화에 투신한다는 각오를 지닌다.
이런 배경하에 회원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교회에 말씀하신 대로 이 세상에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충만히 이루어지도록 「봉헌」과 「사랑」의 삶을 살도록 요청받고 있다.
특별히 남미 에콰도르에서 시작된 이들의 사도직 활동은 이제 20년 가까운 연륜에 이르고 있다. 선교 시작과 함께 한 진료소가 가장 대표적인 활동. 병원 시설이 워낙 낙후되고 거리도 멀기 때문에 1차 진료기관으로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이를 많이 낳는 현지 현실에서 조산원 역할도 담당하고 있고 굶주리는 사람을 위한 급식 프로그램, 직업 재활 프로그램,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 등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수녀회 모원이 있는 빨말 지역에서는 공소마다 물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해 주민들과 우물을 파는 등 여러가지 지역적인 요청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재 수련원만 진출해 있는 상태라 사도직 영역이 넓지는 않다. 199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집 운영이 대표적 활동. 소규모 모임이나 단체 피정을 위한 장소도 제공하고 있고 성서 사도직 모임도 주관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의 활동 역사가 짧은 탓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 및 해외 선교의 꿈을 지니고 있는 성소자를 찾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매월 셋째주 주일 성소 모임을 갖고 있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천사의 모후 수녀회
1928년 벨기에 멜르씨(Mercier) 추기경 발의로 제르멘 고도(Germaine Godeau)와 페르디낭 마르까스(L'abbe Ferdinand Marcas) 신부에 의해 창설된 천사의 모후 수녀회(Notre-Dame des Anges)는 정신적으로 가난한 이들, 즉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하는데 사도직 초점을 두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1989년 수원교구 초청으로 진출, 수녀회의 유일한 분원을 한국 교회에 두고 있는 천사의 모후 수녀회는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정신적으로 가난한 이들 보다는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노인 복지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지난 2000년부터 수원 장안구에 무료양로원 「아녜스의 집」으로 사도직 활동을 시작, 노인주거 복지시설을 통한 수녀회 카리스마의 씨앗을 뿌린 수녀회는 최근들어 체벌학생 인성교육 및 생활체험 프로그램으로 청소년 사목 활동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수녀회는 정신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도직 활동을 벌이는 만큼 본원이 있는 벨기에에 큰 정신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병원은 명실공히 유럽내 정신병원의 중심 센터라 할 수 있으며 유럽 정신보건의료법의 시발점이 됐던 곳이기도 하다. 정신 질환자들과 함께 하는 삶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불어닥친 전쟁의 후유증으로 많은 이들이 정신질환의 고통을 겪었던 것과 연관이 있다. 이때 수녀회는 이러한 시대의 요청에 부름을 받았다는 생각을 갖고 정신적으로 가난한 이들과의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수녀회 설립 이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함께 미사 성제안에서 자녀다운 찬미의 제물로써 모든 피조물과 온 인류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완성한다」는 것.
그런 배경에서 성체로 봉헌되지만 정작 자신은 사라지고 마는 제병과 같은 삶, 또 천주의 자녀성 속에서 제병처럼 자신을 헌신한 마리아의 봉헌적 삶을 본받는다. 제병을 의미하는 연한 상아색 수도복이 그러한 삶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좌우명으로는 「주님께 의뢰하니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란 말씀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하느님의 전능과 지혜와 자비, 무한한 사랑, 아버지의 보살핌과 성령의 빛과 힘에 의탁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회원들은 즉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고 기쁨 안에서,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확신을 갖고 모든 것을 주님께서 해주시리라』고 믿는 삶을 산다.
이들은 또 절대적인 단순함 안에서 진실된 자매적 사랑을 추구하며 국경없이 각 민족의 고유성과 연대 관계를 유지하는 자매적 공동체 생활의 최종 모범을 천주 성삼에서 찾고 있다.
그런 면에서 모든 회원들은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을 통하여 산을 움직일 수 있는 대담한 신앙을 가지고 모든 장애물을 이겨내며, 마음에 갈등 피곤 고통이 있어도 명랑함과 미소와 단순함을 보여주도록 노력한다는 각오를 지니면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소외된 형제 자매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우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려고 힘을 다하고자 한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심의 프란치스꼬 수녀회
『애덕은 참을성 있기를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애덕은 가슴깊이 애통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바라보며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길 원합니다』
예수 성탄의 심플리치아노 신부(Wimpliciano of the Nativity.1827~1898)는 특히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며 영혼구원에 힘을 쏟은 수도자였다.
종신서원 후 거리를 방황하는 어린이와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일에 힘을 쏟던 그의 눈에 버림받고, 무지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인들의 가련한 모습이 비쳤다.
심플리치아노 신부는 새로운 삶을 희망하는 이들 여성을 위해 「성녀 말가리다의 집」을 마련했다. 이 공동체를 통해 그는 많은 여성들을 비윤리적인 직업에서 벗어나 기도와 쉼을 비롯해 수예, 재봉틀, 공예 등 각종 기술도 배울 수 있도록 도와 교황 비오 9세로부터 『모든 마리아 막달레나를 천국으로 데려가길 원하는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였다.
「성심의 프란치스꼬 수녀회」는 「성녀 말가리다의 집」을 모태로 심플리치아노 신부에 의해 1886년 2월 2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를 창립됐다.
수녀회의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과 성모 마리아의 모성적 삶, 복음적 가난을 실천한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프란치스코 3회인 수녀회의 원래 이름은 「예수 성심과 마리아 성심의 프란치스꼬 수녀회」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녀회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신 예수성심과 이 고통을 함께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충실하고 모성애 가득한 성모신심에 힘입어 사랑을 베푸는데 모든 것을 봉헌한다.
또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도직활동을 통해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따른 기도와 하느님 현존 안에서 기쁨과 단순한 형제적 삶을 살며 하느님께 완전한 봉헌과 영광을 드린다. 특히 도덕적으로 타락하거나 버림받고 상처입은 어린이와 여성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매진한다.
현재 필리핀, 콜럼비아, 인도, 루마니아, 폴란드 등 세계 9개국에서 400여명의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 수녀는 종신서원자 1명을 포함해 유기서원자, 지원자 등 총 6명이다. 이들은 어린이.청소년의 성화와 양성, 교육사업, 병원, 보육원, 노인 복지시설 운영 등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89년 마산교구의 요청으로 진출한 이후 행려인 무료급식소, 어린이 영어조기교육, 미군부대 미사전례와 교리교육 지원 등의 활동을 펼쳐왔다.
올해부터는 사도직활동 영역을 줄이고 양로원 「마음의 집」 운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남 창원에 위치한 「마음의 집」은 국내에서 차상위 계층(준 빈곤층) 노인들을 위한 노인복지시설로는 처음 건립된 모범 시설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를 모토로 하는 수녀회는 무엇보다 각 지역사회의 시급한 요청에 적극 귀기울여 열린 마음으로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