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9] 권우삼 (權佑三) - 말보다는 실천을 앞세우며 9. 전남 여수에서 성전을 건립하고 - 2
10 성전 구석구석 내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한곳도 없었다. 식구들과 함께 정성을 다해 성전을 지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성전이 이룩되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명당자리에 성전을 건축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었다. 11 학생 중심한 교회에서 청년 중심한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고, 교회 생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오늘의 교회로 발전하기까지엔 숨은 가운데 충성하시던 이정길 장로님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2 항상 교회와 뜻을 먼저 생각하며 희생 봉사하시던 이 장로님의 정성이 있었기에 오늘의 여수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13 또한 말없이 교역장을 받들며 식구들을 위해 희생의 길, 제물의 길을 걸어갔던 아내의 정성을 잊을 수 없다. 받기보다는 주기를 더 좋아했으며, 남편보다는 식구들을 더 사랑하였기에 식구들이 나보다 아내를 더 따랐는지도 모른다. 아내의 숨은 그 정성을 하늘만은 기억하여 주시리라 믿는다. 14 뜻길을 걸어오면서 도저히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는 군에 있으면서 성화 동창 총회에 참석을 하였을 때의 일이다.
15 63년 제1차 성화 동창 총회에 군복을 입고 참석을 하였었는데, 그때 많은 공직자들은 3년 노정이 끝나자 진학 또는 취직을 하여 자신들의 가정을 돌보려는 생각들을 내심으로 하고 있었다.
16 그때 부모님으로서는 가지 말라는 말씀을 할 수 없음을 안 나는 총회에서 ‘일편단심’이라는 혈서를 썼다. 그러자 그 혈서에다 참석한 모든 성화 동창 회원들은 진학이나 취업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으로 자기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는 엄숙한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17 그때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힘이 들고 어려워도,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도 공직 생활을 버리고 이선으로 물러날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8 그 일을 자랑으로 삼으면서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1968년 피를 토하면서도 임지를 향했던 내 모습을 생각하게 되면 일보도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