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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보배로운 믿음 욥23:6-14, 갈5:1-10
어느 목사님이 필리핀 마닐라 교회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한 후 할아버지 한 분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는 기적의 사람으로 온 필리핀을 놀라게 한 화제의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이 필리핀을 지배할 때에 일본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체포하여 동굴에 넣고 시멘트로 막아 버렸습니다, 산 사람을 생매장한 것입니다.
일본이 패하여 도망친 후 시체를 찾아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멘트벽을 헐었습니다. 70일이 경과한 후라서 다 죽고 할아버지 한 분이 살아 있었습니다. 7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살아 있었던 그 할아버지는 필리핀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와 식사를 하면서 살아남게 된 비결을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살았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쌓임을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을 믿으며 살았노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기적이 따르게 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보배로운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보배로운 믿음은,
1.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구약 본문의 주인공인 욥은 사단의 시험으로 말로 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을 당한 인물입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모든 재물과 종들을 잃었습니다. 집이 무너져 열 명의 자녀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악창'(惡瘡)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나 쓰레기더미에 앉아 기와 조각으로 가려운 몸을 긁어야 했고, 환처에는 고름이 나오고 구대기가 붙어 밤에 잠을 자려 해도 고통 때문에 뒤척이며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진 고통이 임할 때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하지요, 위로한다고 온 친구들 역시 인과응보의 논리로 욥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욥은 한꺼번에 재물, 자녀, 건강, 가정, 친구, 이웃, 지위를 잃은 것입니다. 그는 그 고통들이 너무 견딜 수 없어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호소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답을 듣고자 했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의 호소를 들어줄 것이고 자기의 옳음을 판단해 주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본문 욥23:8~9에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탄식 했습니다. 욥은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10절)고 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여전히 자기와 동행하시고 자기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욥은 자기가 만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고난과 고통을 주신 이유와 목적이 자기를 단련하여 순전하게 하여 정금 같이 나오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불순물이 석인 금광석이 제련소에서 수천도의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가 녹아지고 수십 번의 과정을 거쳐 불순물을 걸러 낸 후에 귀한 금이 탄생합니다. 도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범진씨의 "1250°C 최고의 나를 만나라"는 책에 보면 도자기가 아닌 일반적인 질그릇을 구울 때는 가마의 온도가 800°C인데 고려청자와 같은 최고의 도자기를 구울 때는 가마의 온도가 1,250°C 이상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뜨거워지면 흙의 밀도가 놀랄 만큼 단단해지고 흙 속에 있던 유리질들이 녹아 밖으로 흘러나오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최고의 작품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은 고난을 통해 죄가 그쳐지고 인격이 만들어지고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고 영광된 존재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서신서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롬5:3-4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벧전1:6-7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약5:11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삽시다.
2.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신약 본문 갈5:6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서 역사 하는 믿음뿐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안에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 할례를 받아야 의롭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선생들의 꾐에 빠져 할례를 받은 일에 대하여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에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고 말하므로 할례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효력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 일이나 의롭다 함을 얻는 일에 할례를 받고, 안 받고는 아무런 효력을 줄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율법에서 자유 함을 받은 자가 율법의 종으로 전락하는 일이며, 다시 율법의 멍에를 메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화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화답하는 최고의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믿음의 통로를 통해 온갖 은혜와 은총을 받게 되는데 그 은혜와 은총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구원을 비롯한 온갖 은혜와 은총이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 본문에 나오는 욥을 참소한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이 많아서 그런 것이지 그것들을 거두어 가면 그는 틀림없이 하나님을 떠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욥의 믿음을 칭찬하신 하나님은 욥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호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허락 하에 욥이 받은 물질의 복, 자녀의 복, 명예의 복, 건강의 복 등 다 잃게 되었지만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욥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만일 사단의 참소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졌다면 모든 것을 잃는 시련 중에서 그의 믿음은 깨어지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가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나 주님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 역시 사랑에 근거해야 그 일들이 가치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이후 크게 낙심하여 다시 어부의 일로 돌아 간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시면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당부 하셨습니다. 나를 사랑 하셔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주님의 사랑에 화답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게 되면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할 수도 있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어 놓을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사도 요한은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2)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형식적이 믿음이 되기 쉽고, 사랑이 없는 믿음은 이기적인 믿음이 되고, 사랑이 없는 믿음에는 열정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으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께 소망을 두고 계속해서 성화를 이루어가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영적 어린아이가 되어 자라가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돌봄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처럼 육체적으로 장성한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갓 태어난 아이는 성숙한 신앙인의 돌봄을 받으면서 영적으로 자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 자라게 되면 다른 사람을 믿음 안에서 자라도록 도와주고 주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잘 못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변에 어려운 이웃을 많이 도울 수도 있습니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주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신앙의 사람들은 본받을 만한 존귀한 자들입니다.
성도들이 성화를 이루어가려고 할 때 좋은 환경에서 보다 고난과 시련이 따르는 열악한 환경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 좋은 환경은 신앙을 게으르게 하고, 하나님 보다 세상을 기웃거리게 만들고, 부패하게 만들지만 시련과 역경은 내 안에 있는 불순물들을 제거하게 만들고, 깨어 경성하게 만들고, 죄를 버리고 더욱 성결한 모습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욥의 경우에서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신앙이 아니면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불 시험을 통과 하면서 그의 신앙은 시련 당하기 전보다 훨씬 성숙한 신앙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음을 그의 신앙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욥42:5-6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시련을 통과 하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뵙게 되는 확고한 믿음의 사람, 장성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칭찬 받을 정도였기에 스스로 자기 의에 빠질 만도 한 자였으나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게 질문한 것을 깨닫고 그 말들을 다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한다고 겸손한 모습으로 자복했습니다.
바울은 고후12:7-10에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1942년 11월 8일 미국 역사상 최대의 화재가 보스턴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하여 무려 493명이 타죽고 200여명이 불 속에서 구출되었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였던 린드만 박사는 정신건강 연구소에서 불 속에서 구출된 100명을 면담하여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을 번한 위기에서 살아난 이들의 85%가 오히려 그것이 건설적인 체험이 되어 새 출발을 하거나 신앙으로 돌아오거나 부부관계가 좋아지거나 나쁜 습관을 고치는 등 좋은 열매를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떠한 상황을 만나든지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오직 소망을 주님께 두고 계속해서 성화를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보배로운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보배로운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계속해서 성화를 이루어가는 믿음입니다. 아멘.
<2022. 11. 09. 호현낙선>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