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전 세계가 어수선한 이때 우리들이 신심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갑시다.
그리고 어떠한 장해와 곤란이 앞길을 가로막아 서더라도 일편단심으로 묘법(妙法)을 받들어 믿고, 묘법광포에 몸을 바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금년 『연생묘광(蓮生妙光)의 해』 에는 한층 더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근행·창제·절복이라는 자행화타의 불도수행에 힘쓴다면,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묘광(妙光)의 복덕이 우리 몸에 갖춰질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절복의 행동,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하여 어법주상인 예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어지남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환경에 방해받고 욕망에 휘둘려 본래 해야 할 일조차 하지 못하고 세월에 흘려버리고 좀처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묘장엄왕(妙莊嚴王)이 석존께 「스스로의 심행[(心行): 마음의 움직임]에 따르지 아니하겠나이다」(법화경 p.594)라고 맹세하였듯이, 또 육바라밀경(六波羅蜜經) 혹은 열반경(涅槃經)에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고 설해져 있듯이 스스로 강하고 굳은 결의를 불러일으키고 감연히 절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본래 신심이란 이치나 이론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겨야 비로소 가르침의 의의도 공덕도 내 몸에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일념삼천법문(一念三千法門)』의 「백천(百千) 조합한 약(藥)도 입으로 마시지 않으면 병(病)도 낫지 않느니라. 곳간에 보배를 가졌어도 열 줄을 몰라 굶주리고, 품에 약(藥)을 지녔어도 먹을 줄을 몰라 죽는 것과 같으니라.」(신편어서 p.110)는 어문과 같이 아무리 최고(最高), 최승(最勝)의 본존님을 믿고 있어도 실천수행이 없으면 본존님의 공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절복도 마찬가지로 절복의 중요성과 공덕의 크기를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심은 실천이 바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묘법의 광대무변한 공덕을 삼가 믿고 더욱더 강성하게 자행화타의 신심에 힘써, 그로써 어떠한 병마도 물리치고 힘차게 전진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법주상인 예하께서는 “절복은 우리들의 불도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목숨이 있는 한 항상 절복을 염두해 두어야만 합니다. 절복이란 불행한 사람을 구제해 가는 것인데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은 자신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자행화타이기 때문에 절복을 해감으로써 상대방도 구제됨과 동시에 당연히 자신도 구제되어 성불의 경계(境界)에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도수행을 착실히 해 나가는 데에 우리들의 진정한 일생성불, 영원한 성불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를 심간(心肝)에 물들여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격려하고 또 서로 향상시키며, 광선유포의 길을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이니치렌(大日蓮)』 2019년 3월호]라고 어지남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가 바로 유일한 정법(正法)이며, 이 신앙이야말로 대공덕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설하면서 아울러 사종사의를 감연하게 파절해 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대성인님의 유명(遺命)인 광선유포를 지향하는 신심이 아니면 진정한 신심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연합회 신도 모두는 언제 어떠한 때라도 ‘대한민국의 올바른 광선유포를 지향하는 신심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니치렌대성인 성탄 800년을 맞아 우리가 어보전(御寶前)에 굳게 맹세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절복에 정진해 갑시다.
또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용보살의 권속으로서의 자각과 확신을 가지고 어떠한 장마(障魔)가 앞을 가로막아도 이체동심으로 용기를 내어 이 서원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달성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