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모든 다양한 현상들은 인간의 인지와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현상들이 모두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가 뜻이 통하도록 하고자 하는 동일한 경향에 의해 동기부여 되기 때문이다.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바가 뜻이 통하도록 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한 바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함축한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 즉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표현에 의해 동기부여 되고, 우리의 표현 수단은 우리의 경험을 지각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경험한 바를 표현하는 일에 모든 언어 현상이 동원되며, 모든 언어 현상은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필요성에 의해 동기부여 된다. 의미는 모든 언어 단위와 현상의 존재를 보장한다. 의미는 언어의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어휘부에 얌전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언어적 범위에 널리 퍼져 있다. 문법은 더 구체적인 낱말의 의미와 상호작용하는 추상적인 의미 구조이다. 문법과 어휘부는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 유형의 의미가 아니라 의미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어휘적 의미와 문법적 의미 둘 다 지니고 있는 전치사 및 접속사와 같은 기능어가 위치하고 있다. 음운론의 분절적 자질과 초분절적 자질에서부터 형태론, 통사론, 담화 화용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어는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임무를 공유한다. 따라서 인지언어학적 언어 연구에서는 의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지언어학과 의미>에서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위의 글에서 두 구절만 뽑아서 간략히 이해해보자.
먼저,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바가 뜻이 통하도록 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한 바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함축한다”라는 부분이다. 이를 내 사고로 정리하면, ‘나의 삶이 타인과 잘 소통이 되려면 내가 이해한 것을 말이든 글이든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해내야만 진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이 문제다.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른데 이를 어찌 볼 것인가? 말과 글에 진정성이 담기면 된다고 정리하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속고 속이는 부분이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복잡한 부분이니 이것만 정리하고 넘어가자. 일단 표현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자는 것이다.(요즘 사설학원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설명할 수 없다면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내걸고 수업을 한다고 한다.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음운론의 분절적 자질과 초분절적 자질에서부터 형태론, 통사론, 담화 화용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어는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임무를 공유한다. 따라서 인지언어학적 언어 연구에서는 의미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는 구절이다. 의미는 부여하는 것이다. 누가? 바로 각 개개인이다. 그래서 의미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시시각각 변한다. 이것은 팩트다. 이 팩트를 등한시하기 때문에 수많은 오해와 꼬임이 발생한다.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인식 구조다.
모든 사람들의 글이 모두 다른 것은 의미 부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의미 부여는 그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타인의 글을 그의 입장에서 헤아리지 않고 무턱대고 나의 입장에서 헤아리게 되면 타인의 글을 심하게 무시한다. 내 의미로 그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인정이다. 타인의 의미에 대한 인정 말이다. 이것도 역시 어렵다. 그 어려움들을 어렵다고 인식하며 타인의 글을 평가하고 내 글도 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 인생 자체가 어렵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