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결혼의 시작은 마음이 아니라 눈에서 시작한다. 참사랑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참된 결합이어야 한다. 보고, 느끼는 감각에 의한 사랑은 욕망에서 출발한 단순한 착각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삼손은 성인이 된 처음부터 감각적 욕망에 자신이 지켜나가야 할 신성한 원칙을 양보하고 말았다.
(삿 14: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삿 14: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얼마나 자주 이런 결합들이 일어나며 또한 얼마 가지 못해서 이런 결혼들이 상처만 남긴 체 쉽게 깨어지는지 우리는 너무 자주 보고 있다. 부모들의 간곡한 반대와 설득에도 삼손의 한 결 같은 대답은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였다.
삼손은 단순한 감각적 사랑을 진정한 사랑과 구별하지 못했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라고 한 것처럼 단지 눈에 들어오는 대로 행하고자 한 것이다. 사람이 가정을 꾸리고 연합하는 데는 원칙이 있다. 이 사람과의 결합이 하늘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피차에 삶의 목적과 대화를 통하여 영원을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들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삼손은 그런 것을 무시하고 단지 자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졸랐다. 삼손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백성들의 타락과 불행은 늘 이런 식으로 찾아왔다.
(마 24:37-38, 개정)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성경은 심판 전 노아의 때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것은 인간사의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장가 들고 시집가는 결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신성한 결혼의 원칙들이 아닌 삼손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원칙도 없이 결합하는 보이는 대로 하는 결혼이기 때문이다.
(창 6:2, 개정)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홍수전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다는 말과 삼손이 블레셋 사람의 딸들 가운데 한 여자를 보았다는 말은 같은 의미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히브리 단어 “라아(raah)”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 사람의 내면과 영혼의 고결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는 감각적인 느낌, 그래서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구별된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을 좋아할 수 있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눈에 보기 좋아서 좋아하여 결합한 삼손의 결혼식은 그 결혼식이 채 끝나기 전에 불행의 파탄이 덮쳤다.
“삼손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아내는 결혼 잔치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남편을 배반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 여자의 불성실을 보고 분노한 삼손은 당분간 그 여자를 버리고 홀로 소라에 있는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마음이 누그러진 삼손은 그의 신부를 위하여 다시 돌아왔으나 그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부조, 563)
이 길이 과연 하나님이 인정하는 길인가? 이것이 과연 원칙과 영원의 관점에서 바른 선택인가를 모든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선택하든지 물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감각적인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삼손이 걸었던 불행한 운명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위대한 사사였던 삼손마저 감각적 사랑에 눈이 멀어서 자기의 삶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습니다. 저희에게 강인하고 강철같은 믿음을 주사 올바로 분별하고 주님의 명령을 기꺼이 따를 수 있는 깨끗한 마음과 강한 의지를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모든 감정과 생각을 바른 의지의 지배 아래 두게 하시고 이 땅에 계실 때 주님처럼 아버지를 날마다 바라봄으로써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