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31]
주기철(朱基徹, 1897-1944)①
주기철 목사는 1897년 경남 창원군 웅천면에서 태어나 사립 개통소학교(開通小學校)를 졸업하고, 남강 이승훈 선생이 1907년 설립한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입학했습니다. 평북 정주에 세워진 이 학교는 이광수, 조만식, 함석헌 등과 같은 교육자가 학생들을 가르쳤고, 김소월, 백석, 이중섭, 김홍일 등과 같은 인물을 배출한 학교입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애국심을 기르고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지만 3년 후에 기독교 학교로 탈바꿈하고 나부열(S. L. Roberts) 선교사가 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기독교 교육을 받던 주기철은 재학 중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산학교는 3·1운동 당시 일본 헌병들에 의해 소각되어 1년 반 동안 폐교되었다가 1920년 9월 학교를 다시 열었습니다. 6·25 전쟁 이후 서울 용산에 재건되어 오늘날까지 오산고등학교로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주기철은 1916년에 이 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전신) 상과에 진학했으나 심한 안질로 인해 중퇴했고, 고향인 웅천으로 돌아왔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었고 만세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웅천교회에서 집사로 섬기던 중에 마산 문창교회 집회에서 김익두(金益斗) 목사의 설교에 감동되어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해서 1926년 졸업 후, 부산으로 내려와서 초량교회 목사로 섬기면서 경남성경학원을 세워 성경을 가르쳤고, 1931년에는 마산으로 옮겨 문창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지만, 스승이었던 조만식 장로의 권유로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에 담임으로 부임했습니다. 그의 첫 설교 메시지는 ‘신사참배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범죄요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참고: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