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7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요13:1-7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할 너무 큰 짐을 지고 오신 것이다.
그의 어깨에 놓여진 엄청난 책임은 주님께도 몹시 감당하기 어려운 막중한 것이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너무 역겹고, 너무 괴롭고, 너무 아픈 것이었다.
그는 이 땅의 신뢰 못 할 인간들, 하나님을 배반하고, 고장나버린 자들이 있는 곳에 오셔서, 그들의 모든 과오와 망가진 마음에 대한 책임을 지러 오셨다.
주님은 이 땅의 모든 것의 반대이신 분이시다.
이 땅에서 보지 못했던 유일한 선한 분이다.
이 땅에 오셔서, 주님은 죄와 사망에 물든 자들과 싸우셔야 했다.
그가 짐을 지시는데, 그 짐은 죄와 사망이다.
죄의 결과로 사망이 오는데, 그는 이 땅에서 그것들과 싸워야하는 과제가 있었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나, 그에게는 그분만 가지는 사랑이 있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더라도 감당하는 하나님만의 마음이다.
이 세상은 배반이 가득하고, 자기 정욕으로 육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모든 신의를 다 버린다.
그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성장하셔서, 사람들의 삶속에서 발견하신 이질적인 것을 보고, 얼마나 고통받으셨을까 생각한다.
이 어두운 땅의 역겨움, 더러움.
그가 짐을 지셨을 때는 죄라는 것을 그분안에 그가 받아들여야했다.
그 짐을 지고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의 부담을 생각할 때, 어떨 때는 너무 이론적으로만 대하니까, 주님의 참 모습을 많이 왜곡한다.
주님은 어떤 시스템으로 와서, 자기 목숨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내놓고, 모든 인간에게 천국에 오르게 하는 열쇠가 되게 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한다.
신학적 기초를 닦으면서, 이론의 관련성을 부여하다 보니까, 실제적인 것이 많이 없어졌다.
우리가 이론을 논하지만, 본질은 사랑이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연의 마음이다.
꼭 남에게 내 마음을 들어서 호소하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 자체가 선하시고, 인자하시다.
망가진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아파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사랑스럽게 하도록 자신을 낮추신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죽음의 그림자가 늘 따르는 어두운 곳을 다니셨다.
역시 예측이나 한듯 이 세상은 그에게 원치 않는 접근과 온갖 사욕으로 망가진 심령으로 공격적인 견제를 했다.
세상의 모든 불의와 고장난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셨을 것이다.
우리가 때로는 많은 회중들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모습을 생각하는데, 그것보다 먼저 주가 오셨을 때, 만난 사람은 제자였다.
열두사도뿐 아니라, 많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듯,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한 무리에 불과했다.
외롭고, 초라한 사람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없는 개념으로, 누구도 주지 못하는 것, 곧 자기를 내어주셨다.
정말 그들을 사랑하신 것이다.
제자들을 온 인류의 대표로 해서, 그들을 씨로 여기고, 엄청난 부흥을 열겠다는 생각보다, 그는 이 땅에 오셔서, 그냥 사랑하신 것이다.
이 사랑이 저들 속에 움터서, 성령의 힘으로 저들이 세상을 이겨내고, 죄를 이겨내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리라.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아버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저들에게 소개하셨다.
예수께서 그저 제자들 사랑하셨다. 남은 것은 그저 열두사도외 일부였다.
삼년반동안 사귀었던 자들.
이 땅에서 욕심을 이루기 위한 배반, 욕심, 번민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 마지막에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최후에 도울 것이다, 너희에게 희망이 있다 하신다.
그들을 통해 자기 욕심을 채울 것이 없었다. 사랑했다.
특별히 열두 사도로 축소해서 보면, 나는 너희들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리라 하셨다.
나는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영원한 사랑과 충실함이 있다.
자랑스럽게 펼쳐줄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에게서 배운 사랑, 영원한 사랑.
절대 배반하지 않는 사랑.
너희들을처럼 배반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사랑이 내게 있다.
이것이 영원하다. 견뎌야 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그 사랑으로 영원히 너희를 사랑할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그런 중에 멈추지 않고 그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마지막 주간까지 따라다니는 마음의 아픔이 있었다.
사람이 몸의 한부분만 아파도, 온 정신이 빨려들어간다.
주님의 마음이 늘 아팠던 것은 그를 배신한 가룟 유다였다.
주님은 열둘 모두를 사랑했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일으키셨다. 끝난 것 같지만, 끝이 아니다. 너희 속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힘을 내라 하지만, 그 마음의 에너지를 다 빼앗는 것은 가룟 유다였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냉혈인간이었다. 사랑을 받아도, 배반했다.
내가 새 계명을 주노라. 모든 율법이 이 안에 다 들어있다.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사랑으로 이겨갈 수 있도록, 선물을 줄 것이다.
그런 나를 발견할 때, 너희는 힘을 낼 것이다.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세상이 너희를 등질지라도, 넘어지지 말라. 나는 절대 실패하지 않고, 너희를 만나러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데리고 갈 것이다.
너희는 내 제자이니, 너희에게 한 사랑을 기억하라.
너희도 사랑하라.
주님께서 그들의 발을 씻기셨다.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인생관에서 그것을 스승이 하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발을 씻기는 일은 가장 신분이 낮은 자가 하는 것인데, 베드로는 거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 자신의 모습이었다.
주께서 그 발을 씻기며, 제자들을 깨끗하게 하셨다.
종처럼 섬기는 자가 되셨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가 제자들을 씻기신다는 것은 그가 고난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 혼을 메마르게 하고, 응어리지게 한 것을 그가 감당하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모든 고통의 열기들이 내게 올지라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기를.
그리고, 능히 원수를 거절할 수 있기를.
영원한 패배, 영원한 사망을 거부하고, 이제는 소망, 자유, 하나님의 행복을 주장할 수 있도록.
나는 천국의 행복으로 살거야. 원수를 저항할 수 있도록, 나는 너의 실질적인 힘이다.
나를 믿으라.
나를 믿는다면, 사랑하라.
너희가 사랑할 때, 나는 너희 속에 있을 것이다.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면, 나는 아버지와 함께 너희 속에 거할 것이다.
내 계명을 지키고 있다면, 나는 어디든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영원히 이끌기 위해 죽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룟 유다에 대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셨다.
그의 온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고통.
열한제자에게 사랑을 쏟아도, 마음 한구석의 고통이 모든 에너지를 뽑아낸다.
잡히시기 불과 서너시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짧은 시간안에 제자들에게 자기가 짊어지셔야 할 짐과 떠나는 것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했던 제자가 자기를 배반하는 것에 대해 너무 마음이 아프고, 견딜 수 없다.
배반당한다는 것, 미움을 받는다는 것, 주께도 너무 괴로웠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가지면서, 그들에게 약속하신다.
나중에 그들이 확실히 알았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내 목숨을 내놓는다.
그날 식사는 유월절 식사가 아니라, 자기 몸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거기서 그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마지막 때, 가룟 유다의 눈빛이나 분위기가 주님을 너무 짓눌렀다.
다른 제자들은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 기쁨, 사랑이 가득하지만, 가룟 유다는 눈빛조차 다르다.
주께서 그에게 네 할 일을 하라 하셨다.
그는 그릇에 함께 손을 넣었던 자, 함께 먹던 자였다.
함께 먹는 것은 굉장한 친분이고, 신뢰다.
거기서 가룟 유다가 박차고 나간다.
문을 박차고, 어두운 거리로 사라졌다. 예수를 팔려고, 대제사장에게 갔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그는 주님의 약속보다 자기 육신이 중요했다.
나도 살아야지.
그는 세상이 예수님을 향했던 불의의 대표자였다.
모든 인류의 실패와 약점의 대표자였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작은 가룟 유다일지 모른다.
모두 가룟 유다의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성령이 너희를 도우실 것이다.
나에 대해서, 다 가르쳐 줄 것이다.
대신 사랑하라.
너희가 사랑할 때, 내가 너희 속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룟 유다가 없는 곳에서 새계명을 주셨다.
그리고, 그가 당하실 일을 맞기 위해, 떠나신다.
그날 그가 맞으려고 한 것은 우리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끔 이 세상에 취해서, 이 세상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옥으로 향하고 있던 우리 모든 것에서 구원하시려고, 최고의 아픔과 불행과 슬픔과 배반, 고통을 당하셨다.
선동당하여, 변한 사람들이 달려드는 무서운 광기를 맞기 위해, 육신과 정신의 가장 큰 아픔을 겪이 위해, 최후에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기 위해, 길을 떠나신다.
이제 너희가 다 나를 버릴 때가 되었다.
그 시간 이후로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까지 쉬지 않는 고통이 시작된다.
한잠도 못주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비로소 눈을 감게 되신다.
그러나, 너무 비싼 값을 치른 그것으로 우리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이제 주님이 명하신대로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사랑하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처럼 선한 자, 긍휼한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고, 절망과 실패에서 구원하시고, 자기를 내어주어, 고통을 맛보고, 우리를 살려주신 주님께 영광돌리자.
지금까지 말씀은 당시에는 목요일 저녁일이다.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일을 기억해야 하는 아픔도 있지만, 주님이 그날 겪으신 일을 신학 시스템으로 넣고 생각하지 말고, 나도 거기 열한명중 하나로 들어가,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고난받은 주님처럼 나도 주님처럼 하겠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하지 않겠습니다.
베드로는 맹세했지만, 넘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충실한 자가 되도록 주님도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늦었지만, 오늘부터 이어진 우리의 사랑과 충성을 받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