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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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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야기 상상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파스칼)
시냇물 추천 1 조회 12 23.06.23 07:2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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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6.23 07:32

    첫댓글 내 상상력의 한 복판에 감자가 떠올랐다/장석주

    나는 눈을 다쳤다 눈의
    흰자위에 구멍이 뚫려 붉은 피가
    흐른다 다친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왜 그렇게 다친 곳이 많은지
    다친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왜 이렇게 어두운지 나는
    눈을 다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나는 몰랐다 세상에
    왜 그렇게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지를

    내가 심은 감자의 눈에서
    싹이 트고 제 살의 자양분으로
    뿌리를 더욱 깊이 박고 푸른 줄기를 키워가는 동안
    나는

    감자꽃이 피길 기다리며
    뿌리마다 감자알들이 둥글게 열리기를 기다리며
    긍정하기로 한다, 내가 눈을 다치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들의 무게와 중요성을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은 의원이다
    나는 눈을 다쳤다 하얗게 끓어오르는
    여름 햇빛 속을 뚫고 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감자가 갑자기 떠올랐던 것은 웬일일까
    그것들 모두에 까닭이 있는 것이다
    오늘 우는 자들이여, 감자를 상상하자
    나는 눈을 다쳤다, 그러나 눈을 다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쁘다, 내 상상력의 복판에 감자가 떠올랐다

  • 작성자 23.06.23 07:56

    *사고처리과정이나 시를 창작하는 과정이나 동일하다는 유비. 메타시

    문학과 상상력 2
       이현승
     
    경찰서에 갔다. 

    사고 사실 확인서를 작성하고
    최종적으로 cctv 사고 영상을 본다.

    느리고 천천히
    교차로로 진입하는 차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충돌을 향해 움직이고

    그걸 몇 번이고 돌려보는 동안
    나는 운전석 쪽 어두운 창문만 뚫어지게 보았다.

    사진 속 멀리
    운전대를 잡은 몸이 앞으로 쏠린 채
    바로 옆에서 다가오는 차를 모르고
    전방주시 중인 어머니의 실루엣만 희미하다.

    우리는 담당 경찰관에게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말을 들었고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도 천운이라는 말을 주고받았지만 

    사고처리를 위해서 경찰서에 다녀오는 길
    어머니는 많이 다치지 않았지만
    나는 어머니를 따라나섰다가
    어머니를 잃고 미아가 된 소년처럼

  • 작성자 23.06.23 07:39

    밥풀의 상상력 / 김륭

    밥도 풀이라고 생각할래요
    질경이나 패랭이, 원추리 씀바귀 노루귀 같은
    예쁜 풀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해 줄래요 

    주렁주렁 쌀을 매단 벼처럼 착하게 살래요
    밥그릇 싸움 같은 어른들의 말은
    배우지 않을래요

    말도 풀이라고 생각할래요
    며느리배꼽이나 노루귀 같은 예쁜 말만 키워
    입 밖으로 내보낼래요
    온갖 벌레 울음소리 업어 주는 풀처럼 살래요
    어른들이 밥 먹듯이 하는 욕은
    배우지 않을래요

    치매 걸린 외할머니 밥상에 흘린
    밥알도 콕콕 뱁새처럼 쪼지 않을래요
    풀씨처럼 보이겠죠

    잔소리 많은 엄마는 잎이 많은 풀이겠죠
    저기, 앞집 할머니도 호리낭창
    예쁜 풀이에요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2009.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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