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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6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 1열왕 3,5-6ㄱ.7-12
제2독서 : 로마 8,28-30
복 음 : 마태 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참보물
-발견의 은총, 발견의 기쁨-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우리는 방금 화답송 후렴을 참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주여, 내 당신 법을 얼마나 사랑하였나이까”
이렇게 주님 가르침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가 진짜 참보물을 발견함으로
샘솟는 기쁨을 지닌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합니까?
여러분은 부유합니까?
여러분은 자유롭습니까?
여러분은 보물이 있습니까?
한 번 뿐의 인생, 참으로 행복하고 싶고 부유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고 보물을 지니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문득 아주 예전 5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 봄-가을 소풍 때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소풍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보물찾기입니다.
보물찾기가 시작되면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곧장 서둘러 흩어져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찾기에 바쁩니다. 곱게 접어져 있는 보물 종이를 찾는 것입니다.
종이엔 보물 상품이 적혀있고 그것을 받습니다.
보물의 내용이 아니라 보물 쪽지 종이를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 발견의 기쁨이 핵심입니다.
보물을 찾지 못해 상도 못받고 귀가할 때 그 쓸쓸했던 느낌도 생각납니다.
때로 보물 쪽지를 여러개 찾은 동무가 하나라도 주면 고맙고 맘씨 좋은 선생님이
찾지 못한 동무들에게도 골고루 작은 선물들을 나눠줬을 때의 위로도 잊지 못합니다.
소풍과 보물찾기, 참 기막힌 상징입니다.
한 번 뿐의 인생 소풍후 보물을 찾지 못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歸家하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겠는지요. 보물이라고 다 보물이 아닙니다.
가짜 보물도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참보물인 줄 알고 기뻐했는데 막판에 가서 가짜 보물로 드러난다면 그 인생 얼마나 허망하겠는지요.
참보물을 찾아야 합니다. 참보물이 무엇입니까?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 있는 참보물의 발견은 그대로 은총입니다.
바로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인 보물의 비유, 진주 상인의 비유,
그물의 비유가 참보물 찾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발견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은총처럼 뜻밖에 참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간절히 찾을 때
참 보물 진주를 발견하여 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참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공통점은 기쁨이요,
모든 것을 투자하여 이 보물을 구입한다는 것입니다.
하여 이런 참보물을 발견했을 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 구입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공통적, 본질적 욕구일 것입니다. 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수도자들입니다.
마음이 답입니다. 참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절실한 마음으로
항구히 한 결 같이 참보물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무지無知에 눈멀어 참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평생 가난하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 보물을 아무리 많이 소유했어도 마음의 갈증渴症과 허기虛氣는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참으로 마음의 갈증과 허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참 보물은 무엇이겠는지요.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의 솔로몬이 참 슬기롭습니다.
참보물을 선택하는 솔로몬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 대한 근원적 물음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께서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답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하느님께 이런 참보물인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의 참보물을 선물 받았을 때
솔로몬의 기쁨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입니다. 바로 참보물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가톨릭 교회의 불세출의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성인의 전기에 나오는 다음 일화는 늘 읽어도 새롭고 공감이 갑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성인은 경당의 십자가 예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고
지나던 수사가 문틈에서 나오는 대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성인은 그가 그리스도교 믿음의 신비에 대해 쓴 것이 정확한 것인지
주님께 심각하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때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성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썼구나! 놀랍다. 너에게 무슨 상급을 주었으면 좋겠느냐?”
토마스가 그분께 드린 답변은 예수님의 친구들과 제자들이라면
언제나 그분께 드리고 싶은 다음 내용입니다.
“주님, 오직 당신뿐, 당신 외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Nothing but youself, Lord!)”-
얼마나 통쾌, 유쾌, 상쾌한 답변인지요.
세상에 유일한 참보물 예수님 당신 하나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욕심이요 정말 지혜로운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파스카의 예수님을 모신 자가 최고의 부자요 복자福者요 자유로운 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지혜인 예수님을 모시면 줄줄이 보물들이 줄을 잇기 마련입니다.
이런 참 보물 예수님을 지녔을 때 참으로 세상 가짜 보물들,
우상들로부터 초연한, 이탈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도대체 세상에 부러울 것도, 탐낼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주님 맛’앞에 사라지는 ‘세상 맛’들입니다.
가난과 정결과 순종의 복음적 권고도 저절로 이뤄집니다.
도대체 행복의 샘, 지혜의 샘, 사람의 샘이신 참보물 예수님을 모신 충만한 삶인데
무엇이 아쉽겠는지요. 저절로 마음 깊이에서 샘솟는 고백일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부러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어라.”
그러니 참 보물은 예수님 하나뿐입니다. 하느님 하나뿐입니다. 하늘나라 하나뿐입니다.
셋인 듯 하지만 하나입니다. 한 실재의 세 측면이 예수님, 하느님, 하늘나라입니다.
참보물 예수님과 함께 살아 갈 때 그물의 비유대로 최후의 심판을,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하느님 그물 안에, 하느님 수중 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연인 듯 하나 결국은 하느님 섭리의 필연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바오로의 말씀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참보물 예수님과 하나된 지혜로운 이들에게는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것임을 압니다.
주님은 제자들은 물론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깨달았느냐?”
참보물 예수님을, 하느님을 깨달았느냐 묻습니다. “예!”제자들처럼 힘차게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깨달아 있는 그대로 보고 알 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의 은총, 깨달음의 발견입니다.
한 두번이 아니라 평생 깨달음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들이요 더불어 주님과의 일치도 깊어지며
참으로 무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고 행복하고 부유한 내적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처럼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헌것도 꺼내는
자유자재의 집주인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니 참보물을 찾아 밖에 나갈 것은 없습니다. 내 몸담고 있는 일상의 제자리가 보물밭입니다.
참보물 예수님이 숨겨져 있는 보물밭입니다. 다음 예닮기도, 행복기도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보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 천국이옵니다.”-
참보물 예수님과 일치되어 눈이 열릴 때 온통 선물이요 보물입니다. 보물 가득 숨겨진 보물밭입니다.
예수님이 으뜸 참보물이라면 우리 보이는 형제자매들 역시 보물입니다.
여기 수도형제들 하나하나가, 아니 미사에 참석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 하나하나가
신의 한수요 하느님이 보내주신 하느님의 선물, 하느님의 보물입니다.
바로 참보물인 형제자매들은 다음 꽃과 산같은 존재입니다.
-“꽃이 꽃을 가져 오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산이 산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산보다 더 좋은 산이예요!”-
그러니 하느님의 선물, 하느님의 보물인 형제자매들을 소중히 대해야 하고
아껴 보살피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무지에 눈멀어 참보물 하느님을, 이웃을 잊고 살았다면,
또 평생을 살아도 참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가짜 보물 속에서 가짜 인생을 살았다면
이보다 허무하고 허망하고 억울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예전 나눴던 일화 둘이 생각납니다.
-“신부님은 우리 수도공동체의 보물입니다!”란 저의 찬사에
노선배 수도사제의 “아닙니다. 보물寶物이 아니라 고물古物입니다.” 참 유쾌한 유머입니다.
고물이란 겸손이 바로 보물인생 사제임을 입증합니다.-
-“신부님, 보속補贖이 아니라 빛나는 보석寶石입니다.”
면담고백 성사 후 보속으로 써드린 말씀처방전에
기쁨의 환호로 응답한 수녀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정말 주님의 말씀 또한 참보물입니다. 오늘 화답송도 참보물 말씀예찬처럼 들립니다.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저는 당신 계명을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당신의 법 하도 놀라워, 제 영혼 그 법을 따르나이다.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복중의 복이 하느님 복입니다.
금수저, 은수저로 태어나지 못하고 흙수저로 태어났다 자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갓수저로 태어난 부자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도 어제 갓수저가 뭔가 궁금하던 중 인터넷을 통해 알고 웃었습니다.
갓은 영어로 God(갓, 하느님), 그러니 갓수저는 하느님 수저, 하느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보물인 당신을 선물하시어
우리 모두 참보물이 되어 행복하고 부유하고 자유로운 갓수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어제 써놓은 ‘꽃자리’란 시를 나누며 강론을 마칩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 꽃자리이니라”
어디든 자리 잡으면 오늘 지금 여기가
참보물 주님을 만나는 꽃자리 좋은 자리이기에
다니고 싶은 곳이 가고 싶은 곳이 없네”-아멘.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류해욱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보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우리의 진정한 보물,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하늘나라’여야 함을 묵상합니다.
묵상 안에서 우리가 ‘하늘나라’를 진정 보물로 생각하고 있는지,
그것을 얻고자 무엇을 해야 할지를 헤아립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는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청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도 바오로처럼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은 모두 쓰레기로 여길 수 있는 마음,
지닌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이 요구됩니다.
그동안 자신이 보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이제 다 쓰레기로 여긴다고 했던 사도 바오로는
진정 오늘 복음대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지닌 것이 많았던 사람도 다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 드믄 경우이고 대개는 가진 것이 많으면 그것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을 버릴 때 비로소 얻게 되는 보물입니다.
따라서 하늘나라는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가 더 얻기 어려운 보물입니다.
예수님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나가기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까닭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 보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바로 그것을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보물, ‘하늘나라’를 얻게 될 것임을 깊이 헤아립니다.
몇 년 전 은빈님이 묵상 나눔을 하여 주셨는데, 제가 그것을 적이 있지요.
그때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때 그 글을 발견하여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눕니다.
보물
대저 무엇을 얻기 위하여는
먼저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대의 기도는 목적부터 소원하기 마련이어서
이 순서를 거꾸로 가기 일쑤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늘나라는
그 양에 상관없이 가진 것을 팔면 얻게 되는
그러니 부자에게는 어렵고 가난한 이에게는 쉬운
희한한 보물입니다
그런데 부유함과 가난함의 잣대는
겉으로의 재물과 속으로의 마음씀에 모두 해당 됩니다
이때에 재물이야 어떤 의미로는 있든지 말던지
오히려 속편하게 함께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스런 자존심조차도 팔아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그대를 좋게 혹은 나쁘게 하는 것인지
하늘보물 앞에서 되새겨 볼 필요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해석을 붙였지요.
오늘 복음에 대한 묵상도 참 깊이 있는 성찰을 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깊이 있는 묵상입니다.
은빈님 묵상대로, 우리가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우리는 늘 거저 얻으려고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 공짜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별로 없어요. 더구나 가치 있는 보물이 공짜일 수는 없지요.
은빈님 묵상에서
“그대의 기도는 목적부터 소원하기 마련이어서 이 순서를 거꾸로 가기 일쑤”라고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은빈님 글을 잘 읽지 않는 것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지적을 당하는 것을 우리가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기도에서 청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도 “청하여라, 얻으리라. 두드리라. 열리리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늘 청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그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그만한 노력을 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은빈님 묵상대로 순서가 참 중요합니다.
‘영신 수련’의 ‘원리와 기초’라는 것에서 보면, 하느님을 섬기고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 그것이 목적이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어떤 삶을 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여야 하며,
이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최선을 다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그 다음에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청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 그분이라는 신뢰를 두고, 청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청하는 것이 보물이라면, 그 보물을 거저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물론 그 핵심 주제는 ‘하늘 나라가 우리의 진정한 보물이라는 말씀이지만,
보물에 대한 묵상을 하며, 은빈님은 자연히 보물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살핀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보물인 ‘하늘 나라’에 대한 묵상도 참 깊이가 있습니다.
‘하늘 나라’를 진정 보물로 생각하고, 그것을 얻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온전히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을 지녀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은 모두 쓰레기로 여길 수 있는 마음,
지닌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지요.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을 아는 지식 앞에 다른 모든 것은 다 쓰레기와 같다고 했지요.
자기가 그 동안 보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이제 다 쓰레기로 여긴다고 했던 사도 바오로는
진정 오늘 복음대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었지요.
사도 바오로처럼 가진 것이 받았던 사람도 다 버릴 수는 있지만, 참 드문 경우이고,
대개는 가진 것이 많으면, 그것을 버리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은빈님은 “하늘나라는 그 양에 상관없이 가진 것을 팔면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니 “부자에게는 어렵고 가난한 이에게는 쉬운 희한한 보물입니다”라고 묵상한 것입니다.
저는 정말 이 묵상에 깊이 공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기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 때문이지요.
부 자체가 나쁜 것은 분명 아닙니다. 부도 하느님이 주시는 축복이지요.
그런데 대개는 그것을 마치 자기가 잘나서 부자가 된 양, 착각하게 되고,
그것을 움켜쥐려고 하니까 ‘하늘 나라’는 부자에게는 어려운 희한한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가난’ 자체가 좋은 것일 수는 없지만, 지닌 것이 적으면, 훨씬 자유롭거든요.
여행을 할 때도 짐이 적으면, 얼마나 편한 지 모르지만, 짐이 많으면,
그 짐 때문에 제대로 풍경을 볼 수도 없습니다.
정작 풍경을 보기 위해 왔는데 말입니다. 우리 이승의 삶이 실은 여행입니다.
잠시 이 지구라는 별에 나그네로 왔다가 때가 되면 떠나는 여행.
이 여행 길에서 내적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은빈 님은
“그런데 부유함과 가난함의 잣대는 겉으로의 재물과 속으로의 마음 씀에 모두 해당”된다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꼭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지닌 것만 부유함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수도자가 나는 실제 가난하게 청빈을 사는데,
다른 형제들은 왜 청빈을 살지 못하는가. 라고 불평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또 다른 형태의 부유함이고, 바로 그것이 진정 ‘하늘나라’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 버려야 하는 그의 부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유함과 가난함의 잣대는 겉으로 드러나는 물질 뿐만 아니라,
마음 씀에 모두 해당한다는 은빈 님의 묵상을 우리는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 안에서 진정 보물인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 버려야 하는
나의 부, 부유는 무엇인가를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있는 부, 부유는 대개는 남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분명한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은빈님 글에서 말한 그 ‘마음 씀’이 실제 물질이나 재물보다 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그래서 은빈님은
“이때에 정작 어려운 것은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스런 자존심조차도 팔아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묵상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이 자리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자존심,
우리가 보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버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보물, ‘하늘나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에게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 벤야민 지파,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바라사이,
당대 최고의 석학 가므리엘 선생의 제자라는 것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던 비밀스러운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 주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 앞에 그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부, 부유로 여기고 있던 그 모든 것이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알고, 사랑 하는 것 앞에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쓰레기처럼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특별한 사람이고, 이것이 우리네처럼 범인들은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참 보물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해 주시고, 그것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팔아 보물이 있는 밭을 사는 농부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오늘 은빈님 묵상을 제 나름대로 풀어드리면서, 저도 제 자신을 돌아보고,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늘 좋은 묵상 글을 써 주시는 은빈님께 감사드리고,
비록 조회 수가 많지 않더라도 큰 힘과 위로를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제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죽을 때까지 갖가지 병을 앓으면서도
곡식과 채소로 된 음식만을 그것도 아주 조금씩밖에 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병은 점점 악화하였지요. 그래서 곁에서 간호하던 형제들이
성인의 건강을 염려해서 몰래 음식에 약간의 고기를 넣어서 요리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이 설교하던 광장에 군중을 모이게 한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세속을 떠나 형제회에 입회하였으며
형제들을 인도하는 저를 보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만,
저는 아프다는 핑계로 고기와 그 국물을 먹었습니다.”
자신이 원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느님과의 약속이기에 이렇게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아는 일을 사람에게 숨기지 않는 성인의 솔직함과 겸손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솔직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거짓된 말을 하는 것이 지금 우리 모습이 아닐까요?
그래서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과 이기심에 휩싸이고 맙니다.
사람에게 솔직한 사람이 하느님께도 진정으로 솔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과연 하느님께 솔직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솔직한 삶을 살아야만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데 말이지요.
‘하늘 나라’라는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이것을 사들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밭을 사야 한다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밭을 사고, 진주를 사야 한다면
역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해서 진주를 삽니다.
이처럼 ‘하늘나라’는 모든 것을 다 처분해서라도 반드시 들어가야 할 곳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무엇이었고, 지금 하는 최선은 무엇입니까?
이 노력과 최선이 바로 하느님께 솔직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삶이 아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남들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남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라고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모두 주님과 같은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그 힘으로 주님의 모습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 앞에 솔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1열왕 3,5)라고 하느님께서 솔로몬에 질문했을 때,
솔로몬은 지혜를 청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솔직하게 대답해보십시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무엇일까?
오늘은 연중 17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줍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라고 묻자, 솔로몬은 대답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이처럼,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레브 쇼메아)을 청합니다.
여기서 ‘듣다’(샤마)라는 동사는 단순히 듣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은 것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것,
곧 주의 깊은 경청과 이를 통한 전인적 소통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는 ‘소통하는 듣는 마음’에서 옵니다.
곧 ‘말씀을 듣고 들음 말씀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 829)을 밝히면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일입니다.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와 있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로 비유됩니다.
오늘 <복음>은 먼저, 그 ‘값진 보물’인 “하느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그 보물은 멀리 하늘 위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나의 일터인 내 공동체, 내 가정,
이 세상이 바로 보물이 묻혀있는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보물”은 우리 공동체와 이 세상에 그리고 사람 서리에, ‘이미 와서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제1독서>에서 말하는 “듣는 마음” 안에,
<제2독서>에서 말하는 우리 안, “당신 아들의 모상”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1)
그렇지만, 그 보물은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꾸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5)
그것은 우리의 머리 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행동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발길 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행위, 신앙의 여정 그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진주는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찾아다니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혹은 그것을 만났다 해서, 그것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해야 얻을 수가 있을까?
오늘 <복음>의 두 비유에는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이는 “보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가진 것을 다 파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물을 발견하고 찾았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그 보물을 사기 위하여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가진 모든 것보다 더 값지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팔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 나아가서 자신마저도 팔아야 하는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과 자애심 때문입니다. 아직은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서 힘이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해 가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보물은 결코 자신을 팔지 않은 채,
타인이 가진 것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다 파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값진 것을 “사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본질인 것이지, ‘파는 일’이 본질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보물을 발견했다 해도, 또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기 전에는 아직 그 보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살 때라야 비로소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물”이 있기에, 우리는 그 “보물”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하느님 나라는 “먼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나라”가 우리를 이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루카 17,21). 아멘.
-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늘나라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주님!
하늘나라의 그물에 저를 몰아넣으소서.
당신 말씀의 그물로 덮어씌워 당신 뜻 안에 가두소서.
세상의 바다에 저를 던지소서. 당신의 그물이 되게 하소서.
당신이 몰아 온 온갖 고기를 모아들일 뿐, 고르지 않게 하소서.
제가 그물일 뿐 그물의 주인이 아니며,
그물의 주인이 아니듯 고기의 주인도 아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마태 13, 44)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들
밭에 있습니다.
우리들 밭에서
보물이 나옵니다.
여행은
가보지 않고서는 모르고
삶은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삶은
보물같이
숨겨져 있기에
신비롭습니다.
하늘 나라는
삶이라는 밭에
숨겨진 나라입니다.
보물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이 모든 것은
보물이 됩니다.
우리 삶속에 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보물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살 그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미
우리는 하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아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삶에 집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보물입니다.
하늘 나라는
온전히
하느님께 집중하는
충만한 나라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할 때
더욱 아름다운
우리들 삶입니다.
인생 100% 성공하는 법
전삼용 요셉 신부
저희 어머니는 제가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셨네?”라고 말하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야!”라고 노랫말을 되풀이하십니다.
그러면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다 늙었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내가 많이 익었지?”라는 말을 듣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과일도 익은 것은 맛이 있지만 늙은 것은 먹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성공도 이것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늙지 말고 익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늙는 것과 익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옳은 것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 최고가 된 파타고니아의 성공 비결과 ‘이본 쉬나드’의 60년 경영 철학을 공개한 최초의 책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의 교복이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 조끼’의 주인공이자,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기업입니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의 인생 목표는 바로 ‘지구’입니다.
지구를 보존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는 그 사랑의 마음을 평생 키워왔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암벽 등반을 즐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그가 개척한 북한산 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벽에 박아 놓은 피톤들을 잘 빼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피톤의 머리가 너무 쉽게 부러졌기 때문입니다.
“산에 갔을 때는 그곳에 갔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는 등반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대장장이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파타고니아입니다.
그는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란 캠페인을 했습니다.
고쳐서 쓰면 되지 뭐하러 새로 사느냐는 것입니다.
지나친 소비가 지구를 죽이고 있음을 알았기에,
자신의 제품부터 소비를 줄이라고 소비자들에게 호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품은 물론 타사의 제품까지 가져오면 다 수리를 해 주었습니다.
수리되지 않는 물품은 만들지 말자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 중 하나입니다.
그는 옷에 들어가는 소재인 면을 일반 목화로 쓰지 않고 유기농 목화를 쓴다고 합니다.
목화는 많은 농약을 주어야 하기에 땅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농부와 결탁하여 훨씬 비싼 재료인 유기농만을 사용합니다.
그런데도 매해 꾸준한 성장률을 경신하며 전 세계에서 열광적인 팬을 거느리게 된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만약 이본 쉬나드가 돈을 버는 것에만 전념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늙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 안에 사랑의 씨앗을 키우는 것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씨앗을 키우면 성숙합니다.
사람은 성숙에 먼저 집중을 해야지 성공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성숙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성숙에 집중하면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존경받는 모습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행복’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내가 일하고 있는 그 밭에 묻혀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일을 하건 그 밭에 행복이 묻혀있습니다.
다만 행복은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만 보입니다.
그래서 ‘밭에 묻힌 보물’ 다음 비유로 ‘값진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금은방을 하시는 한 자매님이 지인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지인은 인도 여행 중에 어떤 착한 사람에게 싼값으로 진주를 한 무더기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사를 할 때도 꼭 챙겨 다니며 10여 년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보석상을 하시는 분이 그것을 보고
“아니, 왜 가짜를 그렇게 열심히 들고 다녀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결국, 그것들의 신세는 묵주 팔지 재료가 되었습니다.
진주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이 훨씬 비싸고, 양식도 민물양식과 해수양식이 있는데
바다에서 길러진 것이 더 비싸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그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상당히 다양하여 정말 비싼 진주의 가치는
그것에 관심이 있어서 많은 공부를 한 전문가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밭에 보물이 있어도 그것만을 절대적으로 원하여
그것을 위해 철저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그 보물을 발견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원해야 인생의 성숙이 시작됩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의 성숙만을 바라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함께 초대하여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였습니다.
이때 어떤 학생이 “그렇게 부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워런 버핏이 먼저 “인성입니다.”라고 대답했고, 빌 게이츠도 동의하였습니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인성의 성숙’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안에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고
그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늙으면 실패하는 것입니다. 익으면 성공한 것입니다.
인생 100% 성공하는 방법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기 위해 에너지를 쓰면 됩니다.
나의 밭에는 언제나 나의 인성을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보물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나의 인성적 성숙을 얻기 위해 나의 모든 에너지를 그것에 쏟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익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모금 / 수도자매일복음묵상 / 하느님의 정원
최 로이스 수녀
우리모두는 하늘나라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는 열려있지만 우리가 알아듣지 못한다면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비유로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마태 13,51)고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우리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치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초대에 응할 수 있는 나와 하느님사이의 선물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듣고 알아들을 수 있는 지혜, 지혜를 청했던 솔로몬처럼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 있기에 모든 것을 하느님안에서 시작하고 마치는
은총의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원 http://www.benedictine.or.kr-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