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마을 개군] 정병경.
ㅡ봄 이미지ㅡ
계묘년 4월에 접어드는 봄이다. 꽃이 지는 걸 보니 세월의 속도를 실감한다. 들쭉날쭉한 기온으로 인해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내 입게 된다.
'광나루사생회'에서 주관하는 야외 스켓치 행사에 동참하기 위해 아침 일찍 나선다. 동행하는 37명은 일곱살 소년과 소녀같다. 금년 사생회 첫 행사에 작가들의 관심도가 넘친다.
스켓치 장소는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인 양평 개군 안마을(內里)이다. 다른해보다 10여 일이나 미리 핀 꽃들은 지기 시작이어서 늦은감이 있다. 3일전 내린 봄비에 꽃잎이 일찍 떨어져 아쉽다. 노오란 산수유꽃이 스켓치의 모델로 남아 주어 동기감응同氣感應 이심전심이다.
추읍산(583m) 자락 마을 곳곳에는 그림 소재가 많다. 70년대에 유행한 슬레이트가 아직도 폐가 지붕에 얹혀있다. 요즘 보기 드믄 광경이다. 봄꽃과 함께 캔버스에 담기면 이색적인 그림이 된다.
양평은 타지역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발전이 더딘 지역이다. 예전 모습이 그림 소재로 제격이지만 첨단 시대에 생활의 불편함도 따른다.
수도권 상수원 보호구역이어서 토지 이용에 제약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단점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기도 한다. 청정 지역인 양평은 전원생활을 하는 예술인의 흔적이 많다. 안마을에는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아 옛것이 남아있다. 수수함이 멋스러워 보인다.
한약재 산수유는 대학나무로 불린다. 산수유 농사로 자녀를 대학에 보낸다고 해서 비롯됐다. 농지보다 임야가 70%나 많은 면적에서 해마다 산수유 열매를 4백여 근을 생산한다.
매년 4월이면 산수유 꽃축제가 열린다. 11월에는 산신제와 산수유 열매 축제를 진행한다. 2003년에 첫 산수유 축제를 시작으로 20년 째 이어오고 있다. 1997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한 프로잭트다. 도로 포장과 돌담장 등 산수유 동산을 조성하며 공들인 안마을이다.
해마다 농가 수가 줄어 안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은 3백명도 안 된다. 산수유 고목이 동네를 지킬 뿐, 해마다 폐가는 늘어난다. 소를 기르던 우사도 비어 있는 곳이 많다. 황량한 모습은 번성하던 반세기 전과 대조를 이룬다. 위기의 기회에 반전을 기대한다.
ㅡ소년ㆍ소녀 마을ㅡ
낙후된 지역이 긴 잠에 들고 있다. 문화ㆍ예술의 마을로 조성되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이디어는 작가들의 몫으로 넘긴다. 서둘지 않아도 된다. 풍수 전문가의 자문도 필요하다.
청룡에 해당하는 추읍산 봉우리가 마치 생각에 잠긴 사람의 머리다. 벙거지를 쓴 예술인이 백호인 서쪽 노을을 감상하는 모습이다. 주작인 남쪽과 현무에 해당하는 북쪽 산줄기가 양쪽 어깨와 팔이다. 마을을 포근히 감싼 형국이다.
오행이 원활한 안골마을을 나름대로 설정해 본다. 봄을 장식하는 산수유가 오행 중 토土를 상징한다. 가을이면 화火인 붉은색 열매로 바뀐다.
토와 화는 상생 관계다. 비바람을 맞으며 여름 내내 푸른 잎은 수水와 목木이다. 잎과 열매를 다 떨구고 나서 하얗게 쌓인 눈은 금金으로 본다. 오행을 갖춘 무병장수 산수유 마을은 공기도 맑고 바람이 잘 통하는 동네다.
인위적이지만 마을 어귀에 실개천을 막아 작은 보洑를 만들면 배산임수다. 오행의 혈맥을 돌게 하는 산수유 마을이 예술 동네로 바뀐다면 금상첨화다. 풍요롭고 아늑한 예술의 고장으로 거듭날 뮤지엄 프로잭트를 떠올려본다.
안마을 부녀회에서 지은 토속 요리가 오찬이다. 메밀 빈대떡은 맛과 향이 일품이다. 시냇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울어진 오후, 산길을 걸으며 붓질도 잠시 잊는다.
꿈이 있고 희망도 있는 소년ㆍ소녀같은 산수유 마을에서 1만보를 걸으며 상념에 잠긴 하루다. 상상의 스켓치를 마치고 팔당 호수에 비친 노을을 감상하며 서울로 달린다.
2023.04.08.
첫댓글 양평 산수유 마을에 다녀오셨네요.
슬레이트 지붕의 폐가 모습이 왜 그리 쓸쓸한지요...
때론 느린 세월의 흔적에
따스함이 저며오는 시간
시간에 미소 짓고 추억하게 합니다
산수유가 모여 자란 오랜 그곳 마을
품어놓은 이야기 멋진 스케치 회폭
기대합니다~**
정병경선생님 역사의 흔적과 시간에 조화를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한페이지 여러 장 읽는것 처럼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