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랑이다-52
“여보! 천지수. 사실이예요. 전혀 착각이 아니예요.물 맛이 너무 맑고 상쾌하고 속을 시원하게 하도록 맛있어요. 어서 와 보세요.”
“나도 느꼈어. 잔디가 살아있었어. 나는 홀로그램인가 추측도 했었어. 주변 모두가 살아있어. 자연은 살아있는거야. 그 속에 우리가 있어.”
그는 지선경의 손을 잡아 끌어 개울가 깨끗한 반석위에 앉았다. 태양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지선경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만져보았다.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피곤한듯한 지선경이 천지수의 무릅에 머리를 올리고 눈을 감았다.
"여보. 천지수 내사랑."
"왜 그렇게 야시시하게 부르는데? 지선경 내사랑아~"
지선경의 음성은 무엇을 갈구하듯 젖어 있었다. 그녀는 두팔을 천지수의 겨드랑이로 넣은 채 찰싹 달라 붙었다.
"지선경. 왜이래. 말로 해.응"
"천지수~"
"알았어. 어서 생각을 줘봐."
천지수는 지선경의 이마에 뺨을 대었다. 따뜻함을느꼈다. 그들은 죽어서 영혼이 되었음을 잊은듯 하였다.
"저 말이예요."
"응."
"초령이 만나면 꼭 한번 젖 먹이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아요."
"뭐라고? 그게 무슨 생각이야? 다 큰 초령이를. 헤로스계의 지도자인 초령이를 어떻게 하고 싶다고?"
"예. 다 알아요. 엄청나게 성장해서 감히 제가 여러 개체가 있는 곳에서는 함부로 말이나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그래도 제 딸이잖아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두고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초령이에게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 밖에는 없어요. 저도 초령이와 모녀관계를 느끼고 싶고 딸에게 엄마의 가슴속 사랑을 주고 싶어요. 당신은 늘 이렇게 말했잖아요. '말로 떡을 하면 조선이 다 먹고도 3개가 남는다' 라고. 말로만 딸이라 할수는 없어요. 제발 그렇게 하도록 해 주세요. 네?"
그랬다. 지선경의 어머니로서 자식을 말로만 하고 전혀 다른 세상에 두고 멸절이든 어떻게 되든 마침내는 떠나야 하는 어미의 마음을 남자들. 수컷들은 모른다. 신인들 어찌 알겠는가. 천지수도 애비로서의 마음은 지선경 못지 않았다. 그러나...
"지선경. 당신 마음은 알았어. 그러나 초령이는..."
천지수는 생각을 더 하지 못하였다. 딸이라고 부르기 조차 외람스러움을 느끼고 있는데.
"알아요. 그러나 여보! 저 아이는 내 딸이예요. 신 이전에 이 지선경의 딸이란 말이예요. 저는 요- 누가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아요. 이것은 유치한 것도 챙피한 것도 부도덕적인 것도 재미없는 것도 아무 것에도 관계없어요. 오직 내 딸에게 젖을 먹인다는 생각뿐이예요. 이건 모성의 본능이예요."
맞다. 누가 무엇으로 이의를 제기할것인가. 엄청난 어머니의 힘을 천지수는 보고 느꼈다. 지선경은 전혀 무엇을 위하여 생각을 만들지 않았다. 저절로 나왔다. 열변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따질 필요가 없었다. 잠재하고 있던 순수한 모성애의 발로이었다.
"어머니."
초령이었다. 어느새 기척없이 지선경의 옆에와서 어머니를 부르며 가슴에 안겼다.
"어머니. 저도, 이 초령이도 엄마 젖을 빨고 싶어요. 어머니를 내 가슴 속에 넣고 싶어요."
지선경의 가슴에 안긴 초령은 어느새 귀엽고 이쁜 여자 아이가 되어 있었다. 두 영혼의 형상은 희미했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천지수도, 함께 있지않은 다른 곳의 다른 신들과 개체들도 그들의 형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천지수가 두 모녀에게로 가서 큰 두 팔을 벌려 감싸 안았다. 그러자 지선경의 목에 걸려있던 초령검이 부르르 떨기시작하며 코발트색 정기가 피어 올라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하여 큰 구형으로 만들어 빛났다. 영휘였다. 오라같은 코발트색 정기가 세 영혼을 감쌌다. 지선경이 정말 가슴을 열어 복숭아 같은 뽀얀 젖가슴을 꺼냈다. 그리고 초령이의 입에 물렸다.맑은 눈으로 어머니를 잠시 본 초령이는 두 팔로 어머니를 감고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젖을 빨았다. 오른쪽 그리고 왼쪽. 누가 이 장면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서는 볼 수없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본능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 아이의 만족스런 천진한 표정. 그것을 바라보는천지수의 흐뭇함이 충만한 얼굴표정. 언젠가 누가 이 장면을 그림으로 시로 표현하여 푸른구슬 인간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알릴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정말 믿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믿는 것이 더 좋다. 그들이 순수한 사랑속에 있을 때 영휘가 만든 오라밖에서는 천초령 지도자를 지키는 지키미 팀과 신울타리 군인 살루나와 알루나가 원형의 대형으로 그들을 지키고 있었다.
64.
장서영 박사는 한번도 두 시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소변이나 대변을 하지 않기 위하여 물도 필요한 때를 제외하고는 입술만 축였다.울루불루 추장과 천지수가 두고 간 져키와 마른 풀잎은 허기를 채우고 기력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이제는 두려움도 면역이 되어서 친해지든가 보편화되어 버렸다. 그렇게 하루라는 시간은 지금 서영에게 무지하게 길지는 않았다. 서영은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과 지금까지의 과정들을 세세하게 찾아내어 음미하고는 다시 차곡 차곡 머리속에 기억하였다. 다시 또 하루가 가고 있었다. 서영에게 하루가 간다는 것은 놓치지 않고 어머니와 천지수를 부른 후 였다. 그때가 다시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처음 같은 그런 놀라운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다시 일어난다 하여도 감당할 자신이 생겼다. 죽음과 소통하는 행위인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주저하라.
어제와 같이 천지수가 꼿아 놓고 간 유칼립스 나무가지를 꺽어 만든 막대기가 출입구쪽 천정위에 뚫여진 구멍을 통하여 들어 오는 빛에 따라 그림자를 만든 각도가 역시 천지수가 동굴 좌측 바닥에 그려놓은 선을 향해 좌측으로 많이 옮겨져 거의 선에 그림자가 닿으려 하고 있었다, 선은 두 줄로 그으져 있었다. 그 간격은 30cm 정도되었다. 몇분은 시간이 있었다. 나무의 그림자가 선에 들어오고 다시 벗어나기 전까지 서영은 어제와 같이 두 시신위에 올라가 누워 각자의 귀에 대고 불러야 하였다. 서영은 일어나 입고 있든 원피스를 잘 추스렸다. 이제는 마음이 안정되었고 감정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 돌아오세요!’
‘천지수! 돌아오세요!’
서영은 서성거리며 작은 소리를 내어 외쳐보았다. 처음에도 실수는 없었지만, 많이 당황하여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염려하였지만, 이제부터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영은 고개를 돌려 그림자를 봤다. 막대기의 그림자가 막 그으놓은 선 안으로 들어왔다. 얼른 서영은 어머니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어머니에게 자기 몸무게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팔굽과 무릅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왼쪽 귀에 입을 대고 외쳤다.
“어머니! 돌아오세요!”
다시 고개를 돌려 오른쪽 귀에 대고 외쳤다.
“어머니! 돌아오세요!”
서영은 그렇게 세번을 처음같이 불렀다. 그리고 다시 정말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신체상태를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내 옆에 누워있는 천지수에게로 가서 다시 그 위에 포개듯 누웠다. 그때서야 불평이 튀어나왔다. ‘천지수 선생님은 왜 하필 이런 자세로 부르라고 하였을까? 그냥 머리편에서 무릅꿇고 불러도 좋을텐데…’ 그런 중에도 영어 이름이라서 부르기는 수월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와 같은 상황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서영은 혹시 신체가 상할까 그것이 먼저 걱정되어 역시 그에게도 부담을 주지않기 위하여 양 팔굽과 무릅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의 위에 포개어 누워 왼쪽 귀에 대고 힘껏 외쳤다.
“천지수! 돌아오세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려 오른쪽 귀에 대고 다시 힘껏 외쳤다.
“천지수! 돌아오세요!”
“천지수! 돌아오세요!”
서영은 부르기를 마치자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두 분의 머리맡에 서서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아직 부폐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와투시 향은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두 분의 온 몸을 감싸고 주변에 은은히 풍겼다. 의사인 서영은 그것이 신기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용히 무릅을 꿇고 오른 손바닥을 펴서 어머니와 천지수의 목에 대어보았다. 바보같은 짓인줄 알지만 그러고 싶었다. 차거웠다. 숨을 쉴 이유가 없었다. 120% 사망이었다. 그렇게 다시 확인했지만 슬프지 않았다. 두려움도 더 생기지 않았다. 서영은 두 분을 덮은 하얀 면 시트를 다시 고르게 잘 폈다. 다시 면 수건으로 두분의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쟈스가 두고 간 물 항아리를 들어 올려 입술에 대고 조금만 축였다. 이제 맑은 정신으로 보니 항아리는 진흙으로 만들었다. 진흙 그대로 였다. 유약이나 어떤 화학물질을 첨가하거나 바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서영은 하나 하나 지금까지의 주술 같았던 행위들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할 때 서영으로서는 난감함을 느꼈다. 의학은 과학이 아닌가. 그 길을 잠시 벗어나 비과학적인 행위들 속에 들어가 주된 역활(役活)의 한 몫을 하고 있으며 생각마져 그것들에 젖어 있다는 것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있다는 자신이 오히려 신기하였다. 서영은 그러한 생각들을 이제서야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와 때를 같이하여 서서히 졸음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