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는 나로 끝? ‘제2 이준석’ 외면하는 이준석
[이종훈의 政說] 올드보이 리그 흥행 실패 지름길… 李, 연금술사 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홍중식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취임 후 50일이 지났다. 최우선 과업은 차기 대선 승리 구도를 만드는 일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입당시켰다. 대단한 성과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다. ‘제2 이준석’ 만들기다.
찻잔 속 태풍 된 이준석 바람
이 대표 당선 직후 차기 대선 구도가 요동칠 것이라는 관측이 적잖았다.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 젊고 참신한 외부 인사들이 ‘제2 이준석’을 노리며 참가해 전체 대선 구도를 뒤흔들지 모른다는 관측이다. 이 대표가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 이러한 상황을 주도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기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대표에게서는 세대교체에 대한 어떤 기미도 느낄 수 없다. 몰라서 안 하는 걸까, 알고도 외면하는 걸까. 수재에 순발력까지 뛰어난 이 대표가 몰라서 안 하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차고 넘치는 대선주자를 관리하고 엮어내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칠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넋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신을 당대표로 만든 국민적 여망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이준석 바람’은 해프닝, 곧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가고 있다. ‘배우자 빼고 다 바꿔보자’던 보수 지지층의 변화를 향한 열기도 급속히 식어가는 분위기다. 30대 당대표 탄생의 여세를 몰아 대선 구도를 뒤흔들 기회도 사라져가고 있다. 이 대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상당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변화 아이콘으로 선택받은 자의 숙명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대선 경선을 진행 중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간 설전으로 당내 분위기는 후끈하지만 정작 국민은 냉담하다. 흥행 관점에서 실패한 경선이다. 설전조차 없었다면 관심은 더 적었을 것이다. 민주당 경선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참신한 외부 인사가 참여하지 않아서다. 이준석류(類)의 인물이 도전장을 내밀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테다.
이 대표의 행보는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와도 사뭇 다르다. 김 전 위원장은 재임 기간 내내 ‘1970년대생 경제 전문가’를 주문처럼 외고 다녔다. 성사되지 않았지만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찾아가 영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이런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뭘까. 젊은 인물로 선수를 교체해야 보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서다. 이 대표의 정치력이 김 전 위원장을 능가할 수는 없겠지만, 80대 김 전 위원장도 감지한 변화의 불가역성을 30대 이 대표가 느끼지 못했다면 우려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현 흐름이라면 국민의힘 당내 경선도 민주당처럼 ‘올드보이 리그’가 될 개연성이 크다. 경력이 화려한 올드보이들의 위세에 눌려 참신한 외부 인사는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국면이 펼쳐질 것이란 이야기다. 변화라는 관점에서는 물론, 흥행이라는 관점에서도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힘과 이 대표가 ‘이번에는 어떻게 하더라도 정권교체가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6월 29일 서울 시내 한 한식당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혁명하라고 당대표 세웠는데…
이 대표가 차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잖다. 7월 16일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당대표 직무에 성공하면 여러 가능성이 생길 것이지만 서두를 생각은 전혀 없다”며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차차기 대선 출마를 고려한다면 자신과 비슷한 유의 대선주자 등장이 반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이유로 인재 영입에 소극적이라면 이는 민심에 맞서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다시 묻는다. 도대체 누가, 어떤 여론의 흐름이 이준석을 당대표로 만들어냈는가. “보수도 뼛속까지 변해야 한다” “세대교체가 필수다” 등의 민심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이 같은 여론이 이 대표 본인에게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오다. 이 대표는 국민이 선택할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대표는 지금이라도 자신을 당대표로 만들어준 여론의 흐름을 타야 한다. 부지런히 ‘제2 이준석’ ‘제3 이준석’을 발굴해야 한다. 당내 경선에 더 많은 이준석들이 도전장을 내밀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또 이들을 영입하는 데 열성을 다해야 한다. 혁명하라고 당대표로 세웠는데 일상을 관리하는 데만 여념이 없다면, 국민은 대안을 찾아 나설 것이 분명하다. 변화 아이콘으로서 이 대표가 빛을 잃는 순간이다.
역사는 이 대표를 어떻게 기록할까. 보수 정당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뒤바꾼 연금술사로 기록할까, 아니면 국민적 여망을 기득권과 바꿔 먹은 허무개그의 달인으로 기록할까. 이 대표에게 당대표직은 기회이자 위기다. 유리한 환경에서 정권 창출에 실패한다면 향후 정치 가도도 고단해질 수밖에 없다. 차차기 대선 도전 계획도 무산되고 말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8월 말 국민의힘 당내 경선후보 등록이 끝난다.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결연한 각오로 인재 영입에 집중할 때다. 머뭇거리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기회를 채갈지 모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제3지대에 묶어두려던 계획이 무산된 지금, 김 전 위원장은 더 획기적 인물을 내세워서라도 외연 확대를 도모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후보로 야권 단일화가 이뤄지면 이 대표는 의문의 1패만 맞게 될 것이다.
★2030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젠더 표심’ 고민 깊은 대선주자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8월 1일 서울 여의도 북카페 하우스에서 열린 청년 정책 토론회 ‘상상23 오픈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동성애는 싫어한다”고 밝혀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문 대통령 외에도 대부분의 후보가 앞다퉈 여성을 위한 정책을 내놨다. 각 후보 캠프에선 내각 여성 비율 50%, 여성 고용 우수기업에 대한 포상과 조세감면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돼지발정제 논란을 겪으며 ‘여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여성 국무위원·국회의원·고위공직자·공공기관 임원 30% 구성 목표” 공약을 걸었다. 당시만 해도 정치권의 분위기는 ‘젠더 이슈=여성 이슈’와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젠더 이슈=여성 이슈’ 더 이상 아니다
몇 년 사이 정치권의 젠더 이슈를 둘러싼 양상에는 다소 변화가 생겼다. 이른바 ‘반(反)페미’ ‘이대남 현상’으로 일컬어지는 2030 남성들의 여론 응집력이 과거에 비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2030 남성·여성 사이 여론의 간극을 두고 정치권의 고심도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를 둘러싼 논란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안산 선수가 ‘웅앵웅’ ‘얼레벌레’ 등 여초 사이트에서 주로 쓴다는 단어를 사용했다며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의혹이 남초 사이트를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무리한 의혹 제기였지만, 남초 사이트에선 “남자를 대상으로는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일들도 많았다”며 ‘미러링’을 명분으로 삼았다.
온라인상의 소모적인 갈등에 불과했던 이 논란은 정치권이 가담하면서 더 커졌다.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7월 30일 페이스북에 “논란의 시작은 허구였으나, 이후 안 선수가 남혐 단어로 지목된 여러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실재하는 갈등으로 변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양 대변인의 글에서는 ‘남혐 단어’를 쓴다면 이런 식의 공격도 괜찮다는 식의 뉘앙스가 풍긴다. 이는 매우 위험한 신호”라며 “매카시즘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글의 핵심은 애초에 잘못이 안산 선수에게 있었다는 거고, 여혐 공격한 남자들의 진의를 이해해줘야 한다고 변호해주는 건데 이게 공당의 대변인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 대변인은 다시 “남혐 용어로 ‘지목된’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 것이지, 진짜 혐오 단어라고 단정짓지 않았다”면서 “격화된 젠더 갈등이 오염시킨 단어들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며칠간 논박을 이어갔다.
안산을 둘러싼 논란의 시작은 그간 온라인상에서 수시로 벌어져온 ‘남초 커뮤니티 대 여초 커뮤니티’ 갈등과 다름없었다. 차이는 이 논란에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2030 남성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대변된다는 점에 있다.
응집하는 2030 남성을 어쩌나
과거보다 훨씬 더 응집하고 있는 2030 남성 여론의 힘을 보여준 것은 지난 4·7재보궐선거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4·7재보궐선거 이후 결과를 두고 “대선에서도 젠더 이슈를 선점하는 후보가 선택받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20대 남성 72.5%의 득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대표는 그 원인을 ‘젠더 이슈’로 꼽았다.
반면 당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18세부터 20대 여성 중 15.1%가 여야 1당이 아닌 ‘기타 후보’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이를 두고 “민주당이 페미니스트들을 너무 키워놓은 탓”이라고 분석했다. 15%의 표심이 대체로 ‘페미니스트 후보’로 나섰던 신지예·신지혜 후보에게 쏠린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대표는 “20대 여성 15%는 강한 페미니스트 성향이 된 것”이라며 “원래는 민주당이 가져갈 수 있는 표들인데, ‘피해호소인’ 논란 등을 일으킨 탓에 페미니스트들이 민주당을 찍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60대 이상의 기존 국민의힘 지지층과 2030 남성의 신규 진입을 앞세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골골대던 보수정당의 역전을 꾀하고 있다. 이 대표는 2030 남성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역차별과 민주당의 ‘성별 갈라치기’ 정책을 국민의힘이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대남 현상’이라 불리는 20대 남성들의 보수화된 관점도 국민의힘 지지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도 한다.
다만 이러한 관점이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여성 지지율은 24%로, 민주당(39%)에 15%포인트 뒤처졌다. 반면 남성 지지율은 국민의힘 32%, 민주당 32%로 같았다. 이 여론조사대로라면 2030 남성이 국민의힘을 상대적으로 더 지지한다는 근거가 없는 셈이다.
지난 8월 2일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간 건전한 교제도 정서적으로 막는다는 얘기도 있다”는 발언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윤 전 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공부 모임인 ‘명불허전 보수다’ 초청 강연에서 저출생 문제를 지적하면서 “얼마 전에 무슨 글을 봤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을 많이 한다’ 이런 얘기도 있더라”고 했다.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 남녀 사이 갈등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남녀 간 연애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그러자 여권에선 “페미니즘이 저출생 원인이라는 것이냐” “여성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공세에 나섰다. 이날 윤 전 총장의 발언을 살펴보면, 그가 저출생의 원인 중 하나로 곧장 페미니즘을 꼽은 것은 아니었다. 페미니즘의 ‘정치적 악용’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남녀 간 갈등이 격화된 상황을 지적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여권의 비판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자세하게 예시를 듣다 보니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조심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결과적으로 젠더 갈등에 대한 윤 전 총장의 부족한 이해도만 더 부각시켰을 뿐이었다.
젠더 이슈를 둘러싼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고심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선거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선언, 여성 우대 정책 등을 내세웠다간 자칫 신규 지지층인 2030 남성들의 표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대선 예비후보 캠프 관계자는 “과거처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젠더 정책에 접근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다들 갖고 있다. 어떻게 하면 2030 남성 지지세의 바람을 이어가면서도 젊은 여성들이 싫어할 ‘꼰대’ 이미지를 피할 수 있을지 고민되는 지점”이라며 “젊은 남성층과 여성층 표심 사이에서 사실상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이 ‘가짜 페미니스트’였다는 것을 알리는 데 주력해야지,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전략”이라며 “일자리와 부동산 등 남녀 모두에게 급선무인 이슈부터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