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신진화론'에 대한 내용이 자주 올라오는 것 같다. 세리 터클이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에서 sns의 잘못된 기능 중의 하나가 갈등의 상황을 승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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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악마화해서 조리돌림하는 것에는 강하게 결집하지만, 갈등을 토론으로 또 화해로 승화시키는 것은 얼굴과 얼굴을 보고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SNS를 통해서 무언가 이슈를 만들고, 비판하는 등의 행위 자체가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시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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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개혁주의진영에서 창조론을 믿는 사람이지만, 팀 켈러가 유신진화론자라는 보수 기독교 진영의 세미나에 '팀 켈러는 유신진화론자인가?' 라는 아티클을 통해 보수 신앙 안에서도 창조론을 믿지만 6일 창조를 믿지 않을 수 있고, 젊은 지구론을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나는 6일창조를 믿고, 젊은 지구론, 늙은 지구론은 둘 다 거부하는 입장이다. (중요하지 않고 창세기 1장은 지구론에 대해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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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창세기 1장을 문학적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6일 창조를 거부하고, 늙은 지구론의 입장을 취하는 팀 켈러의 신학을 수용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팀 켈러는 자신이 주장하는 근거를 명확히 밝히기 때문에 전제가 나와 다를 뿐임을 수용하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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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신 진화론에 대해 여러 강의를 듣고, 우종학 교수님을 비롯한 옹호입장의 책들도 몇 권을 정독했고, 유신진화론을 비판하는 입장의 강의와 글들도 몇 권 읽었지만, 좁은 나의 소견으로는 송인규 교수님이 강의했던 <창세기를 통해 본 과학과 신앙의 쟁점>이라는 강의가 좀 더 균형있게 포용할 수 있는 견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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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규 교수는 <유신 진화론 내에도 여러 스펙트럼이 있는가?>라는 강의에서 유신진화론 안에서도 다양한 이론들이 있음을 나열하고 있다. 1996년에는 카톨릭에서도 '유신진화론'을 인정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진화는 발생했다. 그래도 인간의 영혼을 산출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손이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이 문장만으로 보면 사실 유신진화론은 기독교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수용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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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유신진화론 안에서도 입장은 다양하다. 무목적적 진화(nonteleological evolution) 라는 조금은 이신론에 가까운 진화를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계획적 진화 (planned evolution) 라는 하나님께서 확정적인 계획을 의중에 두고계셨고 이것을 창조시부터 작동시켰다는 주장이다. 또 통제적 진화 (directed evolution) 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산출하셨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계속 활동하시는데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창조적 사건들에 관여하신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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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담에 대해서도 유신진화론 안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급진적 아담론은 역사적 아담을 부인한다. 수정적 아담론은 고생물학에서 말하는 아담과 성경적아담을 별개의 존재로 본다. 전통적 아담론은 아담의 신원을 말해주는 여섯가지 진술을 그대로 지킨다. 여섯가지 진술이란 1) 아담은 최초의 인물이며 하나님 형상을 따라 생기에 의해 창조되었다. 2) 역사적 인물이다. 3) 개인적 인물이다. 4) 생물학적 인류의 첫 조상이며 모든 인류는 혈통상 그의 후손이다 5)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이다 6) 타락후 영적죽음은 물론이고 신체적 죽음까지 초래했다 라는 6가지로 정의하는 것이 전통적 아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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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양한 요소들 때문에 유신진화론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송인규 교수는 5가지 정도로 요약했다. 첫째, 독자적 입장은 제임스 오르로 대표되는 주장으로 통제적 진화, 영육 창조론, 전통적 아담론을 지지한다. 둘째, 보수적 입장은 벤자민 워필드로 대표되는 주장으로 통제적 진화, 영혼 창조론,전통적 아담론을 지지한다. 셋째, 중도적 입장은 데니스 알렉산드로 대표되는 주장으로 계획적 진화, 영육 진화론, 수정적 아담론을 주장한다. 넷째, 진보적 입장으로 데니스 라무르로 대표되는 주장으로 계획적 진화, 영육진화론, 급진적 아담론을 주장한다. 다섯째, 급진적 입장으로 존 하우트의 주장으로 무목적 진화, 영육진화론, 급진적 아담론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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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신진화론 안에서 5가지 스펙트럼을 설명하면서 자신은 점진적 창조론자이지만 유신진화론 중에서 보수적 입장 (벤자민 워필드)과 중도적 입장은 수용가능하고 보수 기독교적 교리와도 상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신진화론 중에서 급진적 입장과 무신론적 진화론은 수용하지 못하고, 반대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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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국 창조론을 믿지만 유신 진화론 속에서 어떤 스펙트럼을 주장하느냐에 따라 수용가능한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유신진화론을 하나로 묶어서 모두 비판하는 보수 신학의 공격도 어쩌면 무의미하고, 창조론을 믿는 보수 신학을 창조과학과 동일시하는 비판도 어쩌면 상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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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욤'의 문제도 24시간 6일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전혀 근거없는 해석은 아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말씀과 비교해도 6일 창조의 근거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욤'이 반드시 24시간이 아니라는 주장도 창세기 1장을 어떤 전제로 보느냐에 따라 타당한 이야기이다. 마치 24시간으로 보지 않으면 잘못된 것처럼 말하는 것도 근거가 부족해보이고, 24시간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전혀 잘못된 이론이라고 말하는 것도 상대방의 논리를 너무 무시하는 것같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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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히브리어 '욤'을 1) 24시간으로 보는 견해와 2) 긴 시간으로 보는 견해 3) 문학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내가 보기에는 세 가지 모두 자기 주장에 따른 나름대로의 타당한 전제가 있다. 팀 켈러가 문학적으로 보기 때문에 6일 창조를 받아들이지 않지만 , 나는 6일 창조를 믿지만 팀 켈러의 해석을 수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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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을 믿지 않아도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수 신학을 하는 사람들도 좀 더 열린마음으로 다가가야 하고, 유신진화론을 확고히 믿는 사람들도 그것을 반대하는 보수 신학의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열린마음을 그들이 말하는 성경해석의 논리를 가지고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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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도 창조론을 믿지만, 유신진화론의 일부분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담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것은 구속의 교리를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를 이해하기 때문에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설득하고 싶기는 하다. 아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입장의 신학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기에 서로의 전제를 이해한다면 대화는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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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가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왜 그런 전제를 가졌는지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려 한다면 서로의 근거를 가지고 좋은 토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난과 조롱은 내가 너보다 더 낫다라는 교만에서 나오는 것 같다. SNS는 누군가를 비판하기에 수월하다는 인간의 잘못된 본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해 두면 좋겠다. 내가 옳은 주장을 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를 비난하는 방식은 옳은 주장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전제가 다르면 그의 전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러면 대화가 가능하다. 틀린 것이 아니다. 전제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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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팀 켈러는 우리가 각각 교파의 엄밀한 교리를 가지고 싸우지 말고 천국에 가면 함께 만날 수 있는 공통적 요소를 가지고 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는 어려운 요소 중의 하나가 교회가 서로 싸우는 것이다. 엄밀한 교리는 필요하고, 자기의 것을 공고히 하는 신학적 뿌리는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명확하면 할수록 더 다른 사람들을 품는 용량이 더 커지는 것이 복음의 겸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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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행위로 얻지 않았기 때문에 늘 겸손한 것이 정상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정말 누군가가 잘 모른다고 생각된다면 은혜로 알고 있는 자신이 겸손하게 낮아져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정상적인 기독교인의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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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보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칼날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또 다시 공격하는 형태가 계속 되는 것 같아서 보수 신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먼저 우리의 잘못을 사과하고 싶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주제는 이런 것들이 아닐수도 있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중요하지 않는 일에 소모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쉐리 터클의 말처럼 SNS는 토론을 통해 승화되는 장은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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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교파의 교리의 엄밀성을 토론하기 보다, 우리의 공통된 요소인 복음을 가지고 서로 연합하는 모습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논의에 있어서 학문적 토론의 장이 좀 더 성숙해져야 하는 것 같다. 조롱과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근거를 가지고 전제를 향한 추구와 나와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존중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고상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