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관음사
날씨가 눈부시도록 화창하다.
금년의 봄날씨는 하루는 햇볕이 쨍쨍하다가다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뒤덮는다. 그리고는 오락가락 비를 뿌린다. 날씨도 쌀쌀해진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그저께 이질인 재규가 서울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여 서울을 다녀왔다. 주열이에게 얼굴도 조금 다듬고, 하룻밤을 잤더니, 내 방처럼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조금 피곤하다. 날씨는 맑은 정도를 넘어 창창하다. 그런데도 피로가 가시지 않아서 절집 찾아가기를 망서리고 있는데 집사람이 먼저 집을 나서자고 한다. 그럼 좋지, 나도 동의하고, 찾아가기 쉬운 고령 관음사로 정했다.
서부 정류장에서 시외 버스를 탄다. 서부 정류장은 여러 번이나 이용하였던 곳이라서 익숙한 곳이다. 지하철로 가면 시간도 단축된다. 버스 표에 탑승할 버스도, 좌석 표시도 없다. 어느 차를 타야할지 몰라 멍히 앉아 있을 동안에 버스가 출발했다. 당황했으나 금방 뒤 차가 있어서 낭패 볼 일은 아니었다. 우리 옆에서 아주머니 몇 분이 떠들썩하더니 그분들도 차를 놓쳤다나. 금방 다음 차가 와서 차에 올랐다. 아하 승차 규칙도 바뀌어 져 있었다. 승객으로서는 더 편해해진 듯하여 나쁘지 않다.
고령까지 생생 달린다. 산과 들은 온통 푸른색이다. 푸른색에 덮여 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바라보면 마음이 뚫린다. 막상 그 땅에 가면 낙원과는 거리가 먼 곳이더라도 바라볼 때만은 기분이 좋다. 고령에서 내렸다. 1시가 가까워서인지 완전히 여름 날씨이다.
관음사는 시내에 있는 절이다. 걷기로 했다. 고령 읍내 길을 두어 굽이 돌면서 걸었다. 멀지 않는 거리지만 햇볕이 따가워서 걷기가 힘든다. 도시 가운데의 절집이다. 그러나 절 마당이 조용하다. 절의 어디에도 스님도 불자도 보이지 않는다. 초파일이 그저깨고, 일요일인데도 조용하니, 정말 산골 절집 같다. 그러나 기와불사를 하는 곳도 보이고, 땅의 여기저기를 판 흔적들이 있어서, 가난한 절로는 보이지 않는다.
여늬 절집을 찾았을 때나 마찬가지로 아내는 관음전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법당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늘에 앉았다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절의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읽었다. 절의 창건 대신에 조선 순종 때 조성하였다는 불화를 소개하였다. 그 시대에 영남지역의 불화를 그렸던 화승의 이름이 있고, 영남지역의 불화 양식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나는 탱화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눈으로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설명으로 이 절을 건립한 년대가 오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번에 대가야 고분군의 답사를 왔을 때, 지산동 고분과 이 절을 잇는 산책로가 있다고 하였다. 산책로라면 가벼운 도보 길이라는 생각이다. 아내와 나는 고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우리의 목적인 걷기 운동을 하자고 했다. 여기저기의 안내판을 보니, 고령과 절을 안고 있는 산이 고령의 주산이다 고분군과 관음사는 산자락의 길을 따라 연결이 되었다. 아내와 나는 그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햇볕은 따갑지만 가로수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주산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씻어준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주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이기도 하고, 지산동 고분군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이기도 하였다. 오르막 길이라서 힘은 들지만 숲속 길은 그늘로 덮여 있다. 내가 매일 걸었던 대구의 산책로와는 달리 산으로 오르는 길이라서 가파르다. 힘이 든다. 쉬엄쉬엄 걸었다. 여름날이라도 산에 오르면 이상하게도 산바람이 불어온다.‘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이라는 동요가 생각났다. 그 산바람을 맞으면서 오르막 길을 올랐다.
길의 곳곳에 써 있는 안내판에 의하면 이 산에는 외성과 내성의 이중으로 된 성터가 남아 있다. 대가야가 자신의 수도를 지키는 방어진지 였다. 저 멀리 낙동강 너머에는 신라군이 창녕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아내와 오르고 있는 산책로 옆으로도 성은 허물어지고 없지만 곳곳에 성벽 터가 남아 있다 전번에 답사를 갔던 창녕에는 진흥왕이 신라 군 최 전선을 방문하여 남긴 창녕 순수비가 있다. 해인사 쪽에는 아내와 찾아갔던 월광사 터가 있다. 대가야 마지막 왕자 월광왕자가 신라와 마지막 전투를 벌인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집사람과 나는 관음사 절을 찾아와서 역사의 흔적들을 만나고 있다.
너무 더운 날씨 탓인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내는 이제 두 사람이다. 세 사람이다 라면서 산책로에서 가뭄에 콩 나듯이 만나는 사람을 세고 있다. 꽤나 높이 올랐다 싶은데도 길은 여전히 오르막 길이다. 조금 더 올라 안내판을 보니 미숭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이란다. 미숭산은 지난번에 찾아간 반룡사가 있는 뒷산이다.
내려왔다. 지산동 고분군으로 가는 길이 갈라졌다. 안내판이라도 세워두어야지 ------.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니 산능성을 따라 고분들이 줄지어 있다. 아내는 능이 쾌 크다 라고 한다. 그럼, 왕능인데 평민이 묻히는 묘지 같은 줄 알았나 보다
여기서부터 대가야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내리막 길이다. 산 능성 위의 고분들이 지산동 고분군이다. 지난 날에 아마도 열 번을 답사를 왔을 것이다. 그때는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도 수월했고, 내려오는 길은 거의 뛰다시피 내려왔는데, 오늘은 왜 이리 다리가 후둘거리는지, 조심 조심 발을 옮겼다.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발가과 발톱에 무게가 쏠려서인지 불편하기 그지 없다 발을 빨리 옮기려니 몸의 균형이 잡히지 않고, 내려오는 길이 올라가는 길보다 훨씬 더 힘이 든다.
아내는 나보다 훨신 빠르다. 젊은 날에 팔공산을 다닐 때도 그랬다. 올라갈 때는 집사람은 뒤쳐졌는데, 내려갈 때는 나보다 빨랐다. 오늘도 그랬다. 관음사에서 출발하여 주산의 산책로를 오를 때는 내가 앞섰는데, 내려가는 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순장묘를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한 박물관이다. 지난번에는 아내가 박물관으로 들어 갔었으나 내가 너무 피곤하여 따라가지 않았다. 오늘은 함께 들어가서 순장묘 설명을 해주었다.
지난번의 경험도 있어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걷기로 했다. 아내는 발걸음이 빠르다. 나는 멀리서 아내의 뒷 모습만 보고 걸었다. 많이 피곤하다, 날이 너무 더워서? 하기야 내일이 팔순이니 나이 탓이겠지.
고령 시외버스 주차장에만 오면 대구로 들어가는 버스는 대구서 시내버스를 타는 것만큼이나 편리하다. 오늘도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