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과의 蜜月
석수동에 새로지은 e편한세상아파트에 입주한지도 벌써 22년이다
아내가 이동네에 지인知人이 있어 놀러 왔다가 뒷산을 보니 경치가 수려하고 앞을 내다보니 널다랗게 쭉뻣은 시흥대로의 교통이 원활한것을 보고 이곳으로 이사오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것이다
마침 e편한세상이 정석定石을 놓는 순간이여서 결심에 더욱 부채질을 했고 혹시나 했든것이 요행이도 마음에 쏙드는 양지바른 7층이 당첨되었다
입주할때까지 주변에 있는 칠성 트레빌연립 4층에서 살았다
엘레베타가없어 오르내리는데 불편이 많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이 빠른 입주만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문만 열면 마주한 이웃에는 말 만한 개가 목줄도 없이 불시에 튀여나오는 바람에 많이 놀라기도했다
옥상에 올라가서 운동하고 있는데 말 만한 개를 목줄도 없이 올라온 것을 본 나는 질겁을 하였다
- 이집 사가지고 오셨나요 ? - 나보다는 대여섯살 아래로 보인다
- 전세로 왔어요 - 간단하게 대답하고 내려오려는데 다시 말을 건다
- 사가지고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이집 많이 올랐어요 - 자기는 집주인이라는 뜻을 은연중 비치고있다
- 그래요? 잘하셨네요 - 나는 더이상 대꾸할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내려왔다
집에서 100여m가면 석수역이 있고 나가면 바로 앞에 뻐스정거장이 있어 서울과 안양쪽으로 오가는 차들이 줄지어있어 늦어도 5~10분이면 전철이고 버스를 마음대로 탈수 있으니 이보다 더 원활한 도로망이 있는곳도 드물어 나에게나 물론 아내에게도 더이상 편리할수가 없다
뒤로는 삼성산이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이마를 맞대고 있어 더운여름엔 다른곳보다 온도가 2~3도 낮다
큰길을 건너 100여m가면 안양천이 조용히 흐르고 있어 길양쪽으로 많은이들이 휴식을 즐기고 자전거 들이 무리지어 달리고 있다 또 너른 안양천에는 백조 천둥오리 잉어 떼들이 무리지어 즐기고 있다
세월교 다리가 지난 여름에 폭우로 무너저 다시 산듯한 모습으로 서있다
다리를 지나는이들이 팝콘이고 빵부스러기를 다리 아래로 던저주면 물 오리떼들은 물론 씨름선수 팔뚝만큼이나 큰 수십마리의 잉어 떼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주둥이를 뻐끔거리며 모여든다
구경하는 재미로 사람들 역시 삥둘러 서있다
그사이로 운동복을 입은 아가씨 몇명이 목에 수건을 두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있다
얼굴도 예쁘고 옷매무새는 물론 이마에 땀이 너무나도 예쁘다
청춘은 봄이다 인생의 꽃시절이다 막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다
- 안녕하세요 ?-
뒤돌아보니 칠성트레빌에 살든 녀석이 용케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 예 - 잉어떼들의 춤을보며 고개를 돌려 간단히 대답을 했다
- e편한세상으로 이사하셨다구요 ? 얼마짜리예요 ? - 바싹 다가선다
- 얼마짜리라니 ? 글쎄요 - 듣다보니 거슬린다 얼마짜리라니 아마도 전세가격을 묻는것이 아닌가싶다
- 사셨나요 ?-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또다시 한발 다가선다
오라 네놈이 나를 우숩게 보는 모양이구나 전세살다 이곳으로 왔으니 또 전세사는줄 아는구나 괘씸한생각이든다 !
-예 이 앞의 B아파트 재건축을 하면 입주하려 했는데 마침 e편한세상이 당첨되여서 ......-
- 아 ! 그래요 ? B아파트도 있어요 ?
- 예 이사올때 사놓은게 있는데 언제 재개발들어갈지 -
녀석은 내말이 떨어지자 마자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슬며시 어디론가 사라진다
전세 산다니까 우숩게보며 화물차 운전을 해서 돈좀 벌어 칠성트레빌 샀다며 은근히 자랑하든 녀석이였다
코를 납작하게 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할텐데 왠지 오히려 씁쓸한 기분이다
사람은 외모로 보지말라는 말이 있는데 미처 생각지 못한것 같다
내가 왜 그에게 구태어 그렇게 대응해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한편으로는 괜히 미안스럽다
내나 너나 뱃속에 좁쌀하나씩 들은것은 별수없이 똑같구나
나는 혼자서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며 안양천 물길따라 한참이나 내려갔다
징검다리가 있고 그사이로 맑은 물이 흐른다
한참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니 물이 그렇게 신기해 보일수가 없다
낙엽 한잎이 두둥실 물위를 타고 어느새 저멀리 사라진다
수불쟁선水不爭先이라 했나 ? 아니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나 ? 적막감이 흐른다
꼬맹이 소녀 둘이서 건너오다가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더니 슬며시 지나치려한다
얼굴에는 이세상의 모든 구질구질한 잡티가 한점도 묻어있지 않고 아주 평화스럽고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들이다
인간이 태여날때는 저리도 곱게 태여나거늘 세상살이에 지지고 볶고 살다보면 늙은 여우로 변하는가 싶다
아무 이유없이 싸구려 옷을 입었다고 괄시하고 공연히 키가 작다고 시비하고 물고 늘어진다
- 애기 아가씨 쵸크렛 줄가 ? -
호주머니에 있던 쵸크렛 두개를 꺼내주자 두손으로 얌전히 받드니 손을 가슴에 대고 가볍게 인사를 한다
-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잘먹겠슴니다 -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듣자니 이리 즐거울수가 없다 그래 잘먹고 건강하게 쑥쑥자라거라
깡충깡충 뛰어 저멀리 사라지는 아기 소녀들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한참을 보다가 사라지자 안양천으로 눈을 돌린다
어디서 왔는지 또다시 낙엽한닢이 둥실 두둥실 물결을 타고 어느새 저멀리 사라저간다
우리네 인간도 여기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저 낙엽과 무었이 다르랴
내가 안양천을 나올때는 으례히 호주머니에 쵸크렛 몇개를 넣고 나오는 버릇이 있다
안양천을 걷노라면 쵸크렛을 나누어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 할머니 쵸크렛 드실래요 ?-
- 고맙지라우 잘먹을게요 -
몇년전부터인지 자주 보아온 허리굽은 작은 할머니가 밀구루마를 밀고 옆에는 젊은 여인이 따라간다
젊은 여인은 누구일가 ? 착하디 착한 며느리가 아닐가 ? 아님 엄마를 위하여 자신을 내던진 착한 딸일가 ?
몹시도 궁금했는데 쵸크렛이 그해답을 풀어 주었다
- 엄마 천천히 잡수세요 - 엄마를 위하여 자신을 내던진 착한 딸이였다
어느새 석양에는 태양이 곱게 물들고 길가에 가로수가 길게 그림자를 느리고 있다
첫댓글 60년대초 안양천은 그저 평범한 개울이었지요.
그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랄까?
60년이면 강산이 여섯번이나 변하는 세월이지요
격세지감 ! 맞는 말씀입니다
인생도 그런것 같아 씁쓸함을 느낍니다 未修님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