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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2ㆍ12 군사 쿠데타를 소재로 한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됐다. 보안 사령관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수도경비 사령관 장태완의 대립을 그린 영화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후, 전두환은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이끌고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뒤 정권을 장악, 군사 정권을 수립했다.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했지만, 강력한 정권을 발판으로 경제 성장은 발전을 거듭했다. 연평균 10% 성장이라는 놀라운 결과다. 이를 두고 역사적 평가는 찬반이 엇 갈린다. 하지만 12ㆍ12는 명백한 반란이며 이후 전두환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희생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반란에 맞서 싸웠던 군인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정병주 특전 사령관과 그의 비서 김오랑 소령, 김진기 헌병감과 장태완 수도경비 사령관 등이다. 특히 장태완 장군은 각종 매체에서 회자되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육사 출신이 아님에도 별을 달았다. 당시 군부는 육사 출신의 사조직인 하나회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그리고 사건 당일, 어떻게든 반란군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의 핵심 병력과 지원 부대 모두가 전두환의 진영에 가담하면서 병력 확보에 실패했고 취사병과 행정병까지 집결시켜 대항했으나 결국 체포되고 만다. 장태완은 보안사에 끌려갔고 그의 아버지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 그의 아들은 갑자기 행방불명 되었다가 할아버지 묘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2010년 장 장군이 사망한 후, 그 동안 우울증을 겪어온 그의 아내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야말로 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장태완은 승산이 없는 줄 알면서도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진압에 나섰다. 개인의 영달보다 군인의 사명과 긍지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12ㆍ12 상황에서 장태완 장군처럼 소신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이미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 목숨을 내걸고 군인의 본분을 다하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의 부대마저 정권 탈취를 위해 서울로 출동시킨 전두환의 뚝심을 이길 자는 애당초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에서 장태완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끝까지 군인의 본분을 다한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고 정의의 편에 서서 정도를 걸은 많은 위인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분들의 지조와 가르침을 거울삼아 오늘날과 같은 혼탁한 시대에도 삶의 가치와 철학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회시스템에 노출돼 있지만,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본분을 잊는다는 것은 개인의 영달에 치우치는 첫 걸음이고 개인의 영달에 치우치게 되면 반드시 부정부패로 인한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집권으로 인한 독재 정권하에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신념 없는 군인들의 총구가 동료 군인들을 향했고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웠던 누군가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비록 장태완의 진압 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가 남긴 강직한 군인정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 하나회 같은 군내 불법 사조직이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역사의 비극 대부분은 특정인들이 본분을 잊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본분이 있다. 때문에 공직자로서, 군인으로서, 기업가로서, 직장인으로서, 학생으로서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 국가를 위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