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소설가이며 연극영화 시나리오 작가.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였고 1945년에 귀국. 순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입학. 재학 중이던 1962년에 단편 〈생명연습〉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후 강호무, 김성일, 김창웅, 김치수, 김현, 염무웅, 서정인, 최하림 등과 동인지 《산문시대》를 발간하며 여기에 〈건(乾)〉, 〈환상수첩(幻想手帖)〉 등을 발표했다. 그 시기를 전후로 대표작인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발표하였으며, 〈서울 1964년 겨울〉로 제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60년대의 작가'로 불리는 김승옥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중 한 명이다. 한국어 구사에 어려움을 겪었던 전후세대 문학가들과는 달리 한글로 교육을 받은 한글 세대 작가 중 한 명으로서, 감각적인 문체로 60년대의 도시화와 그에 따른 인간소외 문제 등을 작품에 담았다.
김승옥의 등장이 당시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김훈의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 70년대 기라성 같은 청년작가 김승옥이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발표했을 때, 아버지는 문인 친구들과 함께 우리 집에 모여서 술을 마셨다. 그들은 모두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다. "너 김승옥이라고 아니?" "몰라, 본 적이 없어. 글만 읽었지." 그들은 "김승옥이라는 녀석"의 놀라움을 밤새 이야기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새벽에 아버지는 "이제 우리들 시대는 이미 갔다"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식은 안주를 연탄아궁이에 데워서 가져다 드렸다. 아침에 아버지의 친구들은 나에게 용돈을 몇 푼씩 주고 돌아갔다. 》
1976년에 발표한 〈서울의 달빛 0章〉으로 이듬해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1980년에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 연재를 시작했으나,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는 주류언론의 작태에 환멸을 느끼고 연재 15회 만에 자진 중단하고 절필했다.
그 후 1981년 4월 종교적 계시를 체험한 후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에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나 2003년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교수직을 사임했다.
《김승옥 소설전집(전5권)》이 1995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으며 2004년에는 새로운 장정으로 꾸민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제1권 "무진기행"에는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생명연습"을 비롯해제1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서울 1964년 겨울",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서울의 달빛 0장", "무진기행" "역사(力士)" "염소는 힘이 세다" 등 1960년대 문학계를풍미했던 김씨의 주옥같은 단편 열다섯 편이 실려 있다.
제2권 "환상수첩"에는 1980년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했다가 광주민주화운동의충격으로 집필을 중단했던 "먼지의 방"을 비롯해 "환상수첩" "다산성" "재룡이" "빛의 무덤 속" 등 다섯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제3권 "내가 훔친 여름"은 1967년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작품으로 국내 여행을통해 각 지역의 역사적.사회적.도덕적 문제를 탐색하고자 했던 표제작과 "60년대식"등 두 편의 장편이 수록됐다.
제4권 "강변부인"에는 1970년대 풍속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보통여자" "강변부인" 등 두 편의 장편이, 제5권 "한밤중의 작은 풍경"에는 김씨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서른여섯 편의 짧은 콩트가 실려 있다.
- 참고한 글 : 위키백과/엔하위키 미러/미디어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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