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서는 그 시작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 1)이라고 할 정도로 ‘예수님의 신원’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 의 입을 통하여 이를 다시 한번 선언합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사실 이 고백은 ‘전능하신 하느님’ 의 ‘무력한 죽음’, 그러나 ‘무력한 죽음’ 을 통한 ‘영광’ 이라는 십자가 신학의 총체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역설적 신비는 성주간 내내 좀 더 명확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성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말씀은 이 십자가 사건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예수님의 사랑과 순명에 기초하였음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죽기까지 순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라고 언급하고, 제2독서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라고 선언합니다. 결국 이것으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십자가는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린 자리라고 고백합니다.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엄청난 수난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지 황망해집니다. 어쩌면 답은 간단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촘촘히 드러나는 시간이니, 눈과 마음을 열어 그 사랑을 알아보면 됩니다. 우리가 금욕적 실행을 결심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결연한 사랑과 그 완성을 알아보고 그 사랑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면, 이번 부활 시기에도 우리의 신앙은 구체성과 깊이를 얻기 어려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