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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딱 이틀만이다. 우리의 아파트 문 밖에 내가 찾던 생선이 들어있는 봉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도 반가워서 열어보았다. 그날, 갤러리아에서 샀던 아직 녹지 않은 탱탱한 고등어 세 마리, 동태 2마리, 그리고 오징어 두 마리가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그 외 생강 두 덩어리와 당근봉지가 영수증과 함께 고스란히. 와우 오늘 아침에 이렇게 돌아와 다시 만나게 되다니......
지난 목요일 허둥대며 시내 볼일을 마치고 급히 돌아오던 날, 차선을 바꾸다가 옆 차를 내 차가 긁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찌지직’ 하는 소리에 놀라 창문을 열고 오른쪽을 보니 상대방 여자 운전자가 “제 차는 서 있었는데 댁이 제 차를 박으며 지나갔잖아요.” 하는 것이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저쪽으로 가서 차를 세우지요.”
그날 이렇게 사고를 내고 내가 사는 아파트에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허겁지겁 마켓봉지 3개를 낑낑 매고 승강기 앞에 내려놓았다. 어찌나 무겁던지 생선봉지를 먼저 승강기에 올려놓는 순간 아무도 타지 않은 승강기가 짐만 싣고 먼저 문을 닫고 올라가 버렸다. 아무리 눌러도 다시 돌아오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나머지 마켓 봉지 2개만 들고 5층에 내려 터벅터벅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늘 그랬듯이 열심히 컴퓨터 앞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난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가 점심을 준비했다. 점심상을 차리면서 계속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차사고 낸 것을 언제 어떻게 남편에게 말하지? 그리고 ‘누가 내 마켓봉지를 주어 갔을까? 아이고 모두 잊어버리자. 누군가 필요한 분에게 나누어 주었다 생각하면 된다. 22달러 정도 외식했다 생각하면 된다. 아깝지만 하는 수 없지, 포기하자’ 하며 애써 잊으려 했다.
오늘 바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내었지만 다치지 않고 큰 사고가 아닌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거기에 비하면 마켓봉지 하나쯤 없어진 것이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그런데 사고를 낸 일은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점심 식사 전에 말하면 서로 밥맛이 떨어질 것 같아 아무 일 없었던 듯 조용히 점심을 먹었다. 남편과 마주 앉아도 서로 얼굴이나 상대방 기분엔 무관심 한 것에 익숙해진 탓인지 내 기분을 들키지 않은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물론 잃어버린 마켓봉지 일도 함구했다.
교통사고 낸 일은 나중에 조용히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의외로 남편은 화도 내지 않고 평소에 나의 급한 운전이 우려했던 대로라며 차분하게 대응해주었다. 상대방 차는 우리 보험으로 고쳐주기로 에이전트와 얘기되었다. 우리 차는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고 일단락 처리했다. 가격으로 따지면 교통사고를 낸 후유증이 얼마나 더 큰가, 당장 내년부터 보험료도 올라갈 것이다. 아들과 남편은 앞으로 내가 운전하는 일을 더 삼가라고 한다. 차를 쓰고 나갈 일은 내가 더 많은데 일일이 버스를 이용할 수는 없으니 은근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마켓봉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아파트 메니져에게 혹시 누가 맡겨 놓은 마켓봉지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전혀 없다고 하며 찾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 이튿날도 물건을 찾았냐고 오히려 외국인 메니져가 내게 먼저 물어 봐주었다. 승강기에다 한국말과 영어로 잃어버린 물건을 써 붙일까 하다가 그것도 가져간 사람에게 너무 잔인한 것 같아서 포기했다. 어떤 한국인은 “저도 얼마 전에 똑같은 일을 경험했어요. 금방 없어져 영 못 찾았어요” 하는 말에 나도 이젠 정말 잊어버리자, 누군가 가져가 맛있게 먹으면 됐지 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생각지도 않던 생선봉지가 문 앞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누가 냉장고에 넣어 보관까지 했다가 어떻게 우리 물건인 줄 알고 찾아주었을까? 생각에 꼬리를 물고 다시 상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시니어 아파트는 히스패닉 계통의 외국인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분명 한국 사람의 물건인줄 알고 한인이 사는 방 여러 곳을 돌다가 결국 내게? 어찌 되었든지 고맙기 그지없다. 이번엔 정말 고맙다고 탱큐 카드를 써서 엘리베이터 앞에 붙여놓아야 내 마음이 더 뿌듯할 것 같다.
오늘 돌아온 봉지가 내게 말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주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잃었던 아들이 돌아온 것도 아니고, 귀중품도 아닌 마켓봉지를 다시 찾은 것뿐이다. 그러나 마치 어머니의 따끈따끈한 생일 밥상과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감동이 내안에서 요동하지 않는가. 차사고로 인해 잃어버릴 경제적 손실에 비하면 찾은 물건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따뜻하고 친절한 이웃이 주는 마음의 감동은 결코 물질의 크기에 있지 않음을 깨닫는 이아침을 어찌 넘길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을 내 기억 속주머니에 고이 간직하며 가끔씩 꺼내보련다.
본명: 김혜원
1954년 서울출생 간호사, 양호교사, 소샬워커, 사모
1981년 미국이민, 엘에이 새싹어린이교실 윤영
2010년 엘에이 올림피아 요양병원 소셜서비스일
2013년 재미시인협회, 재미수필문학가 협회 신인상 으로 각각등단
2023년 '이 아침을 어찌 넘기랴' 산문집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