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전기장판
석야 신웅순
딸아이가 이사를 했다. 전기장판이 필요 없다고 한다. 버린다고 해서 집사람이 가지고 왔다.
전기장판에서 불이 난다는 뉴스가 종종 있어 괜히 불안했다. 거실에 깔라놓고 때때로 쓰고 있으니 따뜻한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나는 어렸을 적 사랑방에서 공부했다. 철컥철컥 이웃집 베틀소리에 잠이 들곤 했다. 아버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가마솥에 한가득 하루치의 물을 데어놓으셨다. 새벽이면 싸늘하게 식은 온돌에 이렇게 따뜻한 군불을 지피셨다.
“……”
아버지는 요 밑에 손을 넣으시곤 아무 말없이 나가셨다. 등이 따뜻해왔다. 우리들은 더욱 깊은 새벽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아버지가 데어놓은 물로 어머니는 아침 준비를 했고 우리 5남매는 세수를 하며 하루의 준비를 서둘렀다.
전기장판이 따뜻하다. 이제 전기장판이 그 때 아버지의 아침 군불을 대신해주고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새벽 온기를 어찌 전기장판에다 비교 할 수 있으리.
나는 12시 전후에 잠을 잔다. 새벽 4시경이면 오줌 누러 잠깐 잠을 깨고는 다시 잠자리에 든다. 밤새 꺼놓았던 전기장판을 다시 켠다. 그래야 그 옛날처럼 따뜻한 새벽잠에 푹 빠질 수 있다. 그래야 하루가 가뿐하고 기분이 좋다.
시대가 바뀌었고 세대가 변했다.
공기가 따뜻한 아파트와 궁둥이가 따뜻한 초가와는 세상이 다르다. 전기장판이 따뜻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추운 온돌에 더욱 정감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향수도 향수지만 거기에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냄새가 있어서이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세상살이가 아닌가. 세상이 편리해져가지만 사람의 온도는 오히려 내려가고만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혼정신성이란 말이 있다. 밤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이른 아침에는 밤새 부모의 안부를 묻는다는 뜻이다. 부모를 잘 섬기고 효성을 다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제야 혼정신성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부모는 곁에 안 계신다. 그렇게 부모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다. 젊었을 때 몰랐고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야 좀 알 것 같은데 때는 이미 늦었다.‘있을 때 잘 해’라는 흔한 유행가 가사가 이제와 뼈에 사무친다.
만년에 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할머니의 용변을 다 받아내셨던 아버지이다. 새삼 자식들에 자상했고 할머니께 효성을 다하신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판검사는 못했어도 그래도 대학교수로 학자의 삶을 살지 않았는가. 그 모습이라도 보여드렸으면 조금의 효도는 될 수 있었으련만 세상사가 다 내 마음 같지 않다. 그게 세상살이가 아니냐.
- 2024.12. 27.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첫댓글 저는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어 그 기억이 까마득하기만 하여
아들을 얻고는 둘이 목욕탕엘 자주 가서 놈의 중요한 것을 잡아댕겨도 보고
손녀 손주를 얻고는 할아버지의 사랑과 영역표시를 위해 적잖이 애쓰고 있답니다.
아버지의 냄새 ! 참 겪어 보고 싶은 내음이랍니다.
본의 아니게 선생님의 아픈 마음을 건드렸네요.
세상사가 다 그런가봐요.
손주 손녀 참 귀엽고 예쁘지요?
제 주위는 전부 딸, 손녀들이랍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글과 함께 한해가 저무네요.
저도 이 글을 읽으며 부모님이 그리워 집니다.
저학년때 아버님께서
제 이름 석자(朴暎蘭)를 한문으로 가르쳐 주시면 획이 많아 자꾸 틀리는데
그 곁에서 어머님은 틀린글씨를 찰고무 지우개로 지워주시던 쫀득 사각사각 소리가 너무 좋았었고,
아버님은 물을때마다 자상히 가르쳐 주시던 유년 시절이 생각납니다. ^^
올 한해 동안도 감사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 잘 지키시며 귀한 글들로 게시판을 밝혀 주세요. ^^♡
제가 감사해야지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셨군요.
그래서 여기저기에 사랑을 나누어주시는군요.
따뜻한 카페 분위기는 선생님 덕분예요.
지나가시다 둘러보시기도 하고 들여다보시기도 하고.....
가끔 아름다운 선생님 그림도 걸어놓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시고요.
전에 한 번 뵈었지만 늘 편안한 모습으로 주위를 아늑하게 만들어주십니다.
한해 동안 고맙습니다.
늘 그런 모습으로 올 한해도 그 자리에 계세요.
전 좋은 글 쓰고 싶지만 미치지 못해 언제면 잘 쓸 수 있을까.
맘 속으로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석야 두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