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사장 아들이 일진회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고 난 후 태권도를 배우다
정훈의 친척 중에 최공칠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칠 아버지는 정육점을 경영하면서 비교적 돈을 많이 벌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자 정육식당까지 차렸다.
그동안 정육점을 하면서 좋은 소고기를 판매해왔는데, 정육점을 계속 하면서 고깃집까지 같이 하니까 손님들이 많아졌다. 그 때문에 인근 식당은 타격이 컸다. 아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공칠이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믿는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지하고 있는데, 왜 정육점을 오래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칠이 들은 바에 의하면, 비록 동물이지만 살아있는 동물의 목숨을 끊는 것은 잔인한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육식을 하지 말고 채식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매일 날선 칼을 들고 소고기를 정육하는 것을 보고 저렇게 자꾸 소의 살을 칼로 도려내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피의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낚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특히 먹기 위해 낚시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로 고기를 미끼로 낚아서 죽이는 것은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한다든지, 갑자기 비명횡사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냥도 마찬가지다. 취미로 산에 가서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것은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공칠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종교적 교리고, 우리가 먹는 것과는 관계 없는 일이야. 정육점은 생업일 뿐이야. 내가 직접 도축을 하는 건 아니잖니? 지금까지 소고기 회사나 돼지고기 회사, 닭고기 회사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재벌이 되었는지 알아? 어차피 인간은 육식과 채식을 같이 하는 동물이야. 채식만 하는 소나 말과는 달라. 동시에 하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된 거야.”
아버지 설명을 들으니 그럴듯했지만, 공칠은 여전히 아버지가 정육점을 계속 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공칠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힘이 센 건달 친구들로부터 일진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공칠 아버지가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일진회에서는 공칠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칠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일진회에 가입하면 공부도 못하고, 모범생이 되는 것을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랬더니 일진회 멤버 5명이 공칠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집단폭행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심하게 폭행을 당한 공칠이는 그 다음 날부터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우선 태권도와 권투를 배웠다.
공칠이 일진회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다음 혼자서 공부보다는 무술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것을 본 일진회 간부들은 더 이상 공칠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공칠에게 앞으로는 괴롭히지 않을테니 공칠도 일진회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원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한계가 있어 그랬는지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대학은 포기하고 아버지가 하는 정육점과 정육식당을 가업으로 이어받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공칠에게 집요할 정도로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강요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자식이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으면 크게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망할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농사짓는 아버지의 아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 생활하는 곳에서 그대로 아버지의 농사를 이어받으면 점진적으로 생활이 나아진다. 아버지가 식당을 하면 아들이 그곳에서 일을 배워 나중에 식당을 이어받으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는 농사 짓는데 아들은 도시로 나가 공부를 해서 성공하려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아들 역시 아버지가 농사짓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보고 조금이라도 배웠지만, 공부에 관해서는 아버지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거나 들은 바가 없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물론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는 식당을 하는데, 아들은 전기공사업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공칠은 아버지의 생각이 낡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정육점은 살생을 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사상적 신념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굶어죽으면 죽었지 정육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