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 에르메스’ 이전에
‘에르메스 애트모스’ 탁상 시계가 있었다. 지난 2013년 에르메스 산하 크리스털 공방 생루이의 숙련된 장인들이 직접 입으로 불어
여러 겹의 아름다운 유리 케이스를 완성한 이 탁상 시계는 약속시간을 알리거나 심박수를 측정하지는 못하지만 애플 워치의 단점 중 하나인 배터리
문제에서 거의 완벽히 자유롭다. 에르메스 애트모스는 1928년 처음 개발, 이제까지 75만개 이상 생산된 애트모스 탁상시계의 수많은 에디션 중
하나다.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애트모스
561(Atmos 561)
애플워치 발표 즈음 애플에 합류한 산업 디자이너 마크 뉴슨 역시 애트모스의 에디션을
디자인했다. 스위스의 유서 깊은 워치 메뉴팩처 예거 르쿨트르의 ‘애트모스’ 탁상 시계는 태엽을 감거나 충전하지 않아도 (이론적으로는) 영원히
작동하는 기계 장치다.
그 비밀은 온도다. ‘애트모스(Atmos)’는 대기의 온도차를 이용하는 작동 방식에서 붙은
이름이다. 시계 내부, 아코디언을 축소한 것처럼 생긴 주름 잡힌 작은 관 속에 액체와 기체 혼합물이 들어있는데 주변 온도가 올라가면 확장하고
내려가면 수축한다. 이 운동으로 태엽을 감고, 시계를 작동시키는 원리.
굉장히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온도 차 1도만으로 48시간 이상 시계를
구동할 수 있다. 일반적인 기계식 손목 시계를 구동하는 에너지의 250분의 1. 태엽과 연결된 하단의 묵직한 원통형 밸런스 휠이 1초에 2번씩
천천히 회전하며 정확한 시각을 표시한다.
(역시 이론적인 수치이지만) 제작사의 자료에 따르면 시계의 오차는 3821년 마다 하루에
불과하다. 하루로 환산하면 약 0.06초. 물론 영원히 작동하는 기계는 없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는 마찰에 의해 미세하게나마 닳게
마련이고, 공기 중의 먼지와 습기, 각종 이물질은 애트모스를 구성하는 부품에 들러붙어 작동을 방해한다. 예거 르쿨트르는 15~20년에 한 번
정도는 점검하기를 권한다.
베벌리 클락
지금도
엄청나게 혁신적으로 느껴지는, 온도 차로 시계를 구동하는 방식의 역사는 뜻밖에 길다. 400년여 전 처음 개발된 이 방식으로 1864년에
만들어진 괘종 시계 ‘베벌리 클락’이 태엽을 한번도 감지 않은 채로 지금도 멀쩡히 작동하고 있다.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 중 한 곳인
뇌샤텔 지방의 시계공 장-레옹 로이테르가 아이 키만한 괘종시계에 들어가던 이 장치를 탁상시계에 맞도록 소형화, 애트모스 탁상시계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한 것이 1928년이었다. 당시엔 무브먼트 제조사였던 르쿨트르가 1932년 애트모스의 생산권을 넘겨 받아 그 역사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장-레온 로이테르는 최초의 애트모스 탁상시계에 수은과 암모니아의 혼합물을 이용했지만 독성 등의 이유로 예거 르쿨트르는 관 안의 물질을
염화에틸랜(ethylene chloride)으로 바꿨다. 현재까지 애트모스 탁상시계에 쓰이는 염화에틸렌은 인체에 무해하고, 섭씨 12도에서
기화하기 때문에 실내용 탁상시계에 사용하기에 최적의 물질이다.
반구형 또는 직육면체로 만들어진 투명한 유리 케이스를 통해 온도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기계 장치의 작동을 드러내는 애트모스 탁상 시계는 오랜 기간 수많은 혁신을 거듭한 시계 역사에서 기계적, 미학적으로
공히 도드라지게 아름다운 성과였다.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존 F 케네디의 집무실 책상에 애트모스 탁상시계가 놓였다. 스위스 정부는
지금도 국빈에게 애트모스 탁상시계를 선물한다.
최초의 애트모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제껏 75만개 이상 생산된 애트모스 탁상시계는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한다. 1929년 최초의 상용화된 제품이 나온 이래 1983년까지
최초의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쓰였다. 빈티지 애트모스엔 시기에 따라 로마 숫자 ‘I’부터 ‘VIII’까지 일련번호가 붙어있다. 지금도 이베이
등에서 조금만 검색하면 1천 달러 미만에 상태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다. 흔하디 흔한 무브먼트가 들어간, 들어본 적도 없는 브랜드의 시계를 살
돈으로 시계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며 아름다운 기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
애트모스
1934
‘애트모스 VIII’의 생산이 중단된 이후, 시계의 디자인과 내부 무브먼트를 일신한 새로운 버전에는 더 이상
일련번호가 붙지 않는다. 대신 예거 르쿨트르는 다양한 한정판 모델을 내놓았다.
‘밀레니엄 애트모스’는 퍼페추얼 캘린더와 달의 위상을 표시하는 문페이즈 인디케이터를
탑재한 모델로 1999년 이집트 시나이 사막의 성 캐서린 성당에 에디션 중 하나를 파묻었다. 1천년 뒤인 서기 3000년에 꺼내 작동 여부와
정확도를 확인할 예정. 그보단 그때까지 지구와 인류가 남아있을 지가 더 궁금하지만 말이다.
‘애트모스 미스터리어스’는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가 자개와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크리스털
케이스 안에 무브먼트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제작한 25개 한정판이다. 산업 디자이너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마치 백열등 전구처럼 생긴
‘애트모스 561’은 애트모스 탄생 80주년을 기념한 프로젝트. 오랜 친우이자 동료인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와 함께 시침과 분침을
붉은 색으로 칠한 버전이 자선 경매에서 42만 5천 달러에 낙찰되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에디션이 바로 ‘에르메스 애트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