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1. 12. 일요일.
햇볕은 났는데도 날씨는 무척이나 추웠다.
<한국국보문학 카페>에 오른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효자문에 관한 글을 읽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를 쓰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위독하셔서....
꿈을 꿨는데 산 속에 시체 3구가 있고, 시체 머리를 잘라서 집에 가져온 뒤 솥안에 넣고 끓여서 아픈 어머니를 봉양했더니만 어머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 .... 대룡산에 가면 시체 3구가 있는데 그중 가운데 머리를 가져와 고아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문구가 있다.
아래 이미지 그림은 산속에서 시체 머리 잘라서 보따리에 싸서 집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어린 사내아이 얼굴이다?
효자라고 일컫는 반희언은 그당시 만나이 38살(집나이 39살) 이상의 중년 얼굴이어야 하는데?!....
다른 자료에서 검색....
' 효자 반희언은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어머니를 간병하였으나 효험이 없던 차 꿈속에 한 신선이 나타나 대룡산 어디쯤 가면 시체 다섯구가 있으니 가운데 시체의 목을 잘라다 어머니께 먹이면 병이 낫는다고 하여 신선이 가르쳐준 대룡산으로 달려갔다. 과연 시체 다섯구가 있었다.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가운데 시체의 머리를 잘라 돌아온 길을 거두리(머리를 잘랐다)라 부르니 지금의 거두리다. 시체의 머리를 달여서 어머니께 드리니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하도 기이하여 후일 대룡산을 찾으니 산삼 다섯포기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산삼의 머리 부분이 잘려 있었다. 이 효성이 임금님께 알려져 효자각을 내리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춘천, 원주, 양구가는 삼거리, 지금의 효자동이 그 효자각을(현재 우체국 자리)세웠던 곳이다.'
*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시체 3구로 나온다.
다른 자료에서 검색 ....
같은해 겨울, 갑자기 딸기가 먹고싶다는 어머니의 말에 반희언은 온 산을 뒤져 딸기를 찾았다.
어머니께 딸기를 드릴 생각으로 바쁘게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는 갑자기 몰아친 눈보라에 길을 잃게 되고
설상가상 호랑이를 마주치게 된다. 반희언을 잡아먹을 줄 알았던 호랑이는 그를 해치는 대신 등에 태워 어머니가 계신
집까지 데려다주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반희언의 지극한 효심은 마침내 궁궐의 임금님(선조)에게까지 알려졌고,
조선 선조 41년, 반희언의 효행을 칭송하는 효자 정려와 효자문이 내려졌다.
나는 경찰관, 수사관, 검사 등의 출신은 아닌데도 많은 의문점이 생긴다.
효자문의 효자 반희언은 1554년 5월 생이란다.
그의 부친은 임진왜란(서기1592 ~ 1597년 정유재란) 전쟁에 참가했다가 죽었다고 한다.
효자 반씨가 1454년 5월생이기에 임진왜란 발생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나이는 만38년(세는 나이는 39살) 이후이다.
그렇다면 한 세대 전인 아버지, 나이가 많은 아버지가 임진왜란 전쟁에 참가하고, 만나이 38살인 아들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 당시의 백성의 나이로 계산하면 엉터리 논리이다.
아버지가 임진왜란에 돌아가셨기에 반 씨는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단다.
*시묘살이 : 시신을 묻은 무덤 앞에 움막집을 짓고 살면서 조석으로 곡을 하며 제사를 올린다. 목욕도 하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도 않는 채 3년간 무덤 곁에서 산다.
시신을 모신 묘지 옆에 움막을 짓고는 조석으로 곡을 하며 죽은 부친을 3년간 모셨다고 한다.
그러면 살아있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방치했다는 뜻일까?
자식인 아들은 3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아버지의 무덤 곁에 움막집을 짓고는 조석으로 곡하였고....
남편 죽고, 자식이 시묘살이로 떠나간 집에서 홀로 남은 어머니를 내팽개쳤다는 뜻?
홀로 된 어머니(아녀자)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 당시(1592년 임진왜란 이후)의 경제상황, 서민들의 상활은 극도로 어려운 시기였을 터.
21세기 2023년을 살아가는 내 시각에는 위 강원도 춘천의 효자동 효자 반희언의 이야기는 그냥 거짓말일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죽은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려고 시묘살이 3년간 하면서도 살아있는 어머니한테는 아예 돌보지 않고는 내팽개쳤다는 뜻이다.
어머니가 병이 난 뒤에야, 시묘살이가 끝난 뒤에서야, 아들이 나타나서 ...... 위와 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짝퉁 이씨 조선조의 충효사상을 엿보는 것 같다.
하나의 성씨(전주이씨)가 519년간이나 유지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씨조선(1392 ~1910년 8월까지 존속)
이씨왕조에 대한 충성을 빗대어서 개인의 과장된 효사상을 접미했다?
조선조 선조시대의 반희언은 어떤 신분이었을까?
양반계급이었을까?
사대부집안이었을까?
서민집안이었을까?
노비, 천비출신의 집안이었을까?
2023년 11월인 지금 우리나라(대한민국)에서 성씨별 인구 순위로 보면 반씨는 몇번째일까?
2000년대의 통계 : 인터넷으로 검색
남한 성씨 333개 가운데 '거제 반씨'는 285위 인구 10,053명
* 워키백과 자료에서 아래 자료 발췌 ....
- 거제반씨 : 2000년 10,063명
- 2015년 기성 반씨 7,631명 + 거제 반씨 5,183명 = 12,814명
*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위 글에서 나오는 효자 반희언은 1544년 5월생.
임진왜란은 서기 1592년 발발, 위 반씨에 대한 효자상 이야기는 1608년이다.
지금으로부터 431년 전인 임진왜란 1592년 발생 ~ 415년 전인 서기 1608년(선조41년)에 효자각을 세워준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바로 코앞의 전시대이다.
그런데도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이야기, '전설이 고향' 속에 나올 법한 이야기 같다.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은 효자1동에 효자 반희언(潘希彦)을 기리는 효자문이 있었던 것이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나중에 보탠다.
의문투성이.... 꾸면낸 가짜 효행 이야기인가?
2023. 11. 12.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