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시베리아 사할린주의 한국 독립운동가 신문 '국민성'
1919경부터 ~ 1930년대 김좌진 장군 등과 함께 시베리아와 만주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박일리야(박윤천)' 장군의 위업을 생각해 볼 수 있는
1919년 아무르강 하류의 사할린 주(州) 주도(州都) 니콜라예프스크(니항)에서 발행되었던 국문신문 '국민성'
1919년 4월 2일경 사할린주 니콜라예프스크 (니항)에서 발행된 독립운동가들의 신문 '국민성'
1919년 사할린 주 주도였던 니콜라예프스크에서 발행된 독립운동가들의 신문 '국민성'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등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 7, [니콜라예프스크에서의 朝鮮獨立示威行列 請願 拒否의 건], (在ニコラエウスク領事代理 副領事 石田虎松), 1919년 04월 03일
https://db.history.go.kr/item/imageViewer.do?levelId=haf_006_164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 8, [國民의 聲이라는 週刊新聞의 발행에 관한 건], 石田 (領事代理), 1919년 05월 05일
https://db.history.go.kr/item/imageViewer.do?levelId=haf_007_010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 8, 朝鮮新聞 再刊에 관한 건, 石田(니콜라예프스크領事代理 副領事), 1919년 10월 20일
https://db.history.go.kr/item/imageViewer.do?levelId=haf_007_0830
문건보고자 :
(니항의 일본 영사관 이시다 부영사, 在ニコラエウスク領事代理 副領事 石田虎松)
니콜라예프스크(니항)의 부영사 이시다는 나중에 니콜라예프스크 일본영사관의 영사로 승진한다.
1920년 3월 니항사건 당시 처자식과 함께 자살했다.
일본 본토에 있던 딸 1명은 2차 세계대전에서도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수고 많으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어렸을적 2002년 이후 사할린 갔었었는데 몇년 지나니 유전 터졌던...
예. 요즘도 고려인들 많이 사시고, 해안 가스전 개발 활발하다고 합니다.
구 소련시대에도 엔지니어나 광부들 엄청 동원돼서 개발했지요
일제시대 남쪽에는 한국인들도 강제 징용가서 많이 죽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