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칠월을 보내면서
간밤 열대야에 에어컨을 켜다 끄길 반복하다 맞은 칠월을 보내는 마지막 날은 목요일이다. 일찍 잠들어 그만큼 일찍 일어난 새벽 시간이 독서와 글쓰기로 보내는 나의 생활 양식에 스스로 감사와 고마움에 젖어 산다. 일간지에 시사만화를 싣거나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가 아님에도 주변에서 내가 생활 속에 남기는 글 부스러기를 기다리는 독자가 있음에 새날을 맞는 아침이 행복하다.
내가 생활에서 남기는 글은 두 갈래 트랙이다. 10포인트 글자로 A4지 한 장에 남기는 생활 속 글은 30여 년째 계속된다. 일기처럼 남기는 글이 오탈자가 더러 있음에도 내가 속한 문학동아리 카페에 올려두고 몇몇 지기들에게 메일로 전한다. 재작년부터 지역의 한 신문에서 내 이름을 단 수필로 싣자는 편집국장 제안이 와 거절 못하고 매주 문화면 지상 한 모퉁이에 실리고 있다.
내가 남기는 글은 수필만이 아닌 4음보 운문도 있는데, 2연으로 된 시조를 일상서 남기는 사진과 함께 디카시처럼 꾸며낸다. 생활 속 발품을 팔아 손수 남긴 사진에 걸맞은 정형률로 엮어 감성공장 앱으로 편집해 지기들에게 아침 안부로 전한다. 3년 전 봄 초등학교 동기들의 단체 카톡에 올려짐이 계기가 되어 친구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소중한 독자이고 글쓰기를 부추기고 있다.
목요일 새날을 맞아 여전히 이른 시각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정류소에서 가끔 이웃에 사는 노부부를 뵙는데 여러 날째 나오지 않는다. 두 분은 도심에 살면서 대중교통으로 근교 강가 밭으로 농사를 짓는데 근래 날씨가 무더워 나갈 일이 없어서다. 콩이나 팥과 같은 작물을 주로 가꾸어 잡초 제거를 마쳐 놓은 여름에는 농장으로 가서 할 일이 없기도 하다.
혼자서 창이대로로 나가 본포 강가로 가는 31번 버스를 첫차를 탔다. 이른 시각임에도 얼굴이 익은 중년 부부는 죽동리를 지난 윗대방으로 농사를 지으러 갔고 한 아낙은 가술 일반산업단지로 출근했다. 나는 가술에 닿아 국도변 제동리에서 내렸다. 날씨가 무더위 아침 산책으로 걷는 동선을 최소화하려는 생각이다. 근교 농촌 사학재단 중고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마을 앞을 지났다.
제동리와 우암리 일대 들녘은 추수 이후 겨울 비닐하우스가 주력 작물이고 여름 벼농사는 덤으로 짓는 곳이다. 당근과 수박을 길러 수확을 마치고 서둘러 모를 낸 들판은 푸름이 짙었다. 규모가 큰 농장을 경영해서인지 뜰이 넓고 정원수나 화초가 잘 가꾸진 농가들도 보였다. 울타리에 핀 여름 장미가 뙤약볕에도 시들지 않아 눈길을 끌고 원예용 화초 가지도 열매를 맺어 영글었다.
마을 안길에서 시멘트로 된 들녘 농로로 나가자 길바닥 여기저기 피사리를 한 잡초가 흩어져 시든 채 깔려 있었다. 여름 논농사에서 골치 썩히는 일이 피사리다. 벼와 흡사하게 생긴 피는 벼보다 더 왕성하게 자라 초기에 제압 못해 끌려 가면 나중 추수 무렵에 알곡을 거두기 미안할 정도다. 벼 논 임자가 부지런한지 게으른지는 그 논에 피가 있는지 여부를 보면 단번 알 수가 있다.
제동리 들녘 한 구역만 둘러 다시 가술로 되돌아 와 삼봉공원에서 땀을 식히고 일찍 문을 연 카페에서 냉커피로 더위를 잊었다. 정한 시각이 되어 부여된 아동안전지킴이 임무를 수행하고 지역 도서관 열람실에서 보냈다. ‘길 위의 뇌’를 쓴 저자는 뇌를 치료하는 대단한 의사 러너였다. 나는 고작 걷는 것에 만족하는데 그녀는 20년째 달리고 있었다. 걷는 놈 앞에 뛰는 년(?)이 있었다.
점심때가 되어 열람실을 나와 평소 들린 밥집에서 국수로 한 끼 때웠다. 식당을 나와 공원 쉼터로 가면서 뙤약볕에 꽃잎이 시들지 않은 채송화가 보여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다시 열람실로 들지 못하고 연락이 닿아 시내에서 나온 두 지기와 접선해 야자수를 연상하는 진입로를 통과한 카페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해거름이 내리기 전 시내로 들어오니 도심 거리 아스팔트 열기는 여전했다. 2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