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의 교훈 페인트공 불만에 착안, 스카치테이프 만들어 예상밖 용도로 쓰이자 가정용 출시해 대히트
대규모의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개발한 신제품이나 서비스가 부진한 실적을 보이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다.
▲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사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에 기반을 둔 신사업이 성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다. 스티븐스(Stevens)와 벌리(Burley)의 연구에 따르면, 통계적으로 수천 개의 아이디어 중 연구·개발이 성공적으로 종료되는 것이 10개라면, 이 중 시장에 출시되는 것은 2개에 불과하며, 1개가 경제성이 있는 이익을 남긴다고 한다. 연구마다 다르지만 대개 신사업 성공률은 30% 내외로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혁신이란 매우 어렵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드러커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1985)'에서 혁신에 대한 일반의 오해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혁신은 천재들이 행하는 기적 같은 것이라는 오해다. 그게 아니라 혁신은 평범한 직원들의 체계적인 관심과 노력이 축적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3M의 스카치테이프나 애플의 아이폰, 바이엘의 아스피린 등은 일종의 기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기적을 처음부터 기획해서 성공시킨 기업은 거의 없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연한 기회의 발견 또는 매우 작은 변화의 시도로부터 출발해서 오랜 기간 개선을 축적하는 과정을 거쳤다.
둘째, 대부분의 사람은 혁신을 가리켜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러커는 통념과는 달리, 혁신이야말로 덜 위험한(less risky) 행동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행동은 혁신하지 않는 것(not innovate)이다. 고객이 바뀌고 있는데 과거의 익숙한 방식에 안주해 있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위험하다. 혁신을 위험하다고 간주할수록 혁신은 자꾸 기피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위험한 혁신을 성공시킨 사람은 더욱 신비하고 위대해 보인다.
하지만 혁신은 도박과는 철저히 다른 그 무엇이다. 혁신은 위험을 예상하되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실행해야 한다.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과감성을 혁신의 본질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드러커는 비교적 안전한, 즉 실패 가능성이 낮은 혁신 지침으로 예상하지 못했던(unexpected)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떤 사업이든 상품과 고객의 특성을 나름대로 설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종종 경영자 자신이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때로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욕구나 특성이 고객으로부터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1920년대에 미네소타 광공업 회사(3M의 옛날 이름)는 자동차 칠 공정의 마감용 사포를 만들고 있었다. 만약 이 회사가 원래 해오던 방식으로 줄기차게 사포만 만들었다면, 아마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구조조정되는 1930~1940년대에 소리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1920년대에는 자동차에 두 가지 색상을 구분해서 칠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먼저 칠한 부분에 기름종이를 아교로 붙여서 덮고, 두 번째 페인트를 칠하는 방식이었다. 이때 자칫 아교 때문에 다 칠한 페인트가 벗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페인트공들은 이를 늘 불평했다.
어렵사리 개발한 사포를 판매하러 갔던 3M의 직원은 페인트공들의 불평을 회사에 보고했다. 회사는 그동안 사포를 제작하면서 축적된 접착제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페인팅 보조 테이프를 개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스카치테이프의 원형이다. 우연한 사건을 놓치지 않고 거대 시장을 발견한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자동차용으로 개발된 이 제품을 주부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용도로 사다 쓰는 것을 회사가 발견했다. 그들은 옷가지나 소소한 생활용품을 붙이는 데 이 테이프를 사용하고 있었다. 회사는 설계를 바꿔서 새로 출시했다. 결과는 기적적인 판매 신장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혁신의 대명사 3M이 예상치 못한 사건에 주목하는 방식이었다.
만약 그때 그런 사건을 접한 3M의 직원이 "이건 우리 일이 아니다"며 고개를 흔들었거나, 고객이 제품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무시했다면, 오늘의 3M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드러커는 혁신이 소수자의 특수한 능력에 의존해서는 결코 안 되며, 조직 전체가 참여하는 일상의 경영 규범으로 정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식당 옆자리 사람의 대화, 고객사 직원들의 잡담, 특정 속성에 대한 요청 사항 급증, 소수 고객 집단에서 매출의 급증이나 급감 등, 일상에서 접하는 사소한 것들에 혁신의 기회는 항상 숨어 있다. 그러나 대개 이러한 내용들은 경영자에게 보고조차 되지 않고 허공으로 사라진다.
[Weekly BIZ] 기업에 필요한 人文學(liberal arts)이란 대체 뭘까
송경모·㈜미라위즈 대표·피터 드러커 연구가
조선일보 : 2014.08.16 03:04
송경모의 '드러커式 세상읽기' 리버럴은 지혜, 아트는 창조 : 기업가치·책임 自問하고… 실제 성과도 만들어 내야 경영이 바로 '리버럴 아트' : 인문사회적 통찰 바탕으로 만들고 건설하고 기르는 것… 리버럴 없는 아트는 맹목… 아트 없는 리버럴은 공허
▲ 송경모·㈜미라위즈 대표·피터 드러커 연구가
인문학은 과연 각광을 받는 것일까, 아니면 천대를 받는 것일까?
기업에서 인문학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아무래도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생전에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행했던 졸업식 연설에서 기술(technology)과 인문학(liberal arts)의 융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융합은 기능상 탁월함을 추구함과 동시에 고객의 감성과 욕구를 파고드는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두었을 뿐, 인문학이 추구하는 근본 질문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어쨌든 그 뒤 경영자들 사이에 동서양의 고전 읽기 모임이 성행하고, 곳곳에서 사내 인문학 강좌가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대기업 계열의 경영진도 앞다투어 인문학과 융합의 소양을 갖춘 직원을 선발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이런 뜨거운 인문학 열기와는 반대로, 여러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학과를 통폐합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취업률이 낮고, 기업에서 요구하는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문학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조차 자신이 소속된 인문학에 대한 관심보다는 경상계열 전공을 복수 전공하면서 취업 준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들린다.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피터 드러커는 저서 '새로운 현실(The New Realities·1989)'에서, 경영자에게 필요한 인문학을 이렇게 말했다.
"경영이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일컬어 온 리버럴 아트(liberal art) 바로 그것이다. 경영은 지식의 근본, 자신을 아는 것, 지혜, 그리고 리더십을 다루기 때문에 '리버럴'이고, 실제와 응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트'다. 경영자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지식과 통찰을, 즉 경제와 역사, 심리와 철학, 물질을 연구하는 제반 과학과 윤리에 대한 통찰을 지녀야만 한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경영자는 이런 지식을 모아서 성과와 결과를, 즉 환자를 치료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교량을 건설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판매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창출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리버럴은 인식과 지혜를, 아트는 응용과 연습과 창조를 의미한다. 어느 경영자가 삼국지나 난중일기 평석을 읽고 리더십의 본질을 알고, 논어와 소크라테스를 읽고 삶의 목적과 지식의 의미를 알았다고 하자. 여기까지는 '리버럴'이다. 다음 날 그는 예측 불가한 사업 환경과 다루기 어려운 직원들로 가득한 경영 현장으로 돌아온다. 어제의 앎을 바탕으로 다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서 탁월한 성과를 올릴 것인가?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체계적인 응용의 노력과 반성을 반복하면서 힘겹게 이룩해야 할 또 다른 과업이다. 이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아트'가 된다.
기업 경영을 논술한 드러커의 저작들은 어떻게 보면 개인의 인문학을 넘어선 기업의 인문학, 즉 기업의 리버럴과 아트를 탐구한 여정과도 같다.
철학은 실존하는 개인에게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 행동인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를 질문하고 그 해답에 이르도록 이끈다. 이를 위해서 개인은 역사를 읽고 예술을 감상하고 자신을 반성한다.
기업의 인문학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이 기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기업은 무슨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이 기업은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가?' '기업의 도덕과 책임이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기업이 취해야 할 '리버럴' 질문이다.
기업의 '아트(技藝·기예)'는 '리버럴(認識·인식)'을 기업의 임직원들이 공유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로부터 기업의 미션과 비전, 사회적 책임, 의사소통, 변화에 대한 끝없는 대응, 혁신, 강점에 대한 집중, 비핵심 사업의 폐기 등 위대한 기업으로 이끄는 전략과 전술이 등장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 경영자, 심지어 주주들은 '리버럴'은 고민하지 않은 채, 매출을 올리고 이익을 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때문에 수많은 기업이 탐욕의 주체로 낙인 찍히고 대중 사이에 반(反)기업 정서가 횡행하게 된다. 이는 개인이 '왜 사는가?' '나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 없이 성공에만 혈안이 된 것과 같다. 칸트식으로 비유하자면, 리버럴이 없는 아트는 맹목이고, 아트가 없는 리버럴은 공허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은 단순히 고전 읽기나 예술 작품 감상의 문제가 아니다. 리버럴의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아트의 성과를 내야만 할 절대적인 과제가 있다.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실현하는 기업은 많이 있어도 존경받는 기업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드러커의 통찰처럼, 대학이나 기업을 막론하고 인문학을 리버럴과 아트의 조화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인문학의 혼란상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