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주성하기자 2013-04-11 6:55 am
진짜 투자의 귀재는 짐 로저스일까 김정은일까.
북한 군부소속으로 추정되는 한 유령회사가 북한이 망한다는 데 배팅한 ‘원자재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70)에게 ‘판돈’을 깔아주어 눈길을 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로저스 회장이 지난 주말 싱가포르 국제동전전시회에 나온 북한 금·은화를 거의 ‘싹쓸이’했다고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로저스 회장은 북한의 부강주화회사가 출시한 1온스(31.1g) 금화 20개와 1온스 은화 수백 개 중 금화 13개와 은화 대부분을 사들였다. 부강주화회사 관계자는 WSJ에 “로저스 측이 더 사고 싶어 했지만 물량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금화와 은화에는 북한의 스포츠 업적, 건축물, 동물 등이 새겨져 있는데 가격은 금화 1개에 2500싱가포르달러(약 224만 원), 은화 1개에 70싱가포르달러(6만3000원)이다.
1일 현재 국제 금은시세가 1온스당 각각 1595달러(약 178만 원), 28.3달러(3만1500원)임을 감안할 때 북한은 주화 발급으로 적잖은 시세차익을 얻었다.
문제는 로저스 회장이 전시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어느 시점에 북한이 국가로 존재할 수 없게 되면 북한 동전 가치는 올라갈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다는 데 있다. 그는 지난해 전시회 때에도 똑같은 이유로 북한이 출품한 금화 전부를 사들였다.
로저스 회장이 북한이 망한 뒤를 내다보고 주화를 산다고 발언할 당시 부강주화회사의 전시회 참가 여부는 미정이었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그의 발언이 알려진 뒤에 부강주화회사는 동전 매각에 참여했다.
자신들이 망한다는 데 배팅하고 때를 기다리겠다는 투자자가 현금을 잔뜩 쥐고 대기하는 것을 알면서도 기념주화를 판매한 것이다.
정치적 명분 앞에선 어떠한 경제적 실리도 무색해지는 것이 북한임을 감안할 때 부강주화회사의 행동은 설명하기 어렵다. 때에 따라선 정치적 범죄로 북한에서 큰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다.
이런 대담한 판매를 하는 부강주화회사는 대체 어떤 회사일까.
지금까지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유령회사다. 북한이 이번 국제동전전시회를 목표로 급조한 것이든지 아니면 주화 발행업에 뛰어들면서 만든 회사인지는 정확치 않다.
그러나 부강주화회사가 인민무력부 소속 정찰총국 소속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화폐를 제 마음대로 주무르며 희귀화폐를 합법적으로 빼내 세계 최고의 경매사이트 이베이 등에 꾸준히 팔아온 북한 기관은 오극렬이 부장으로 있던 노동당 작전부였다.
이들은 배열 숫자가 희귀한 화폐는 발행되는 대로 몽땅 따로 뽑아서 팔아먹었다. 아니, 희귀 숫자만 일부러 우선적으로 인쇄해 팔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김정일의 선군정치 노선에 따라 군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쥔 북한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2009년 북한이 화폐개혁을 하기 전에도 작전부는 화폐개혁 정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구 화폐를 엄청 빼돌렸다. 한번도 쓰지 않은 새 지폐(구권)를 컨테이너채로 달러와 바꾸려 한 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폐개혁이 있을 줄 알고 사기를 치려 한 것이다.
화폐 교환이 있은 뒤에도 새 화폐의 좋은 번호는 다 빼서 팔아먹었다. 지금도 이베이엔 지폐번호가 ‘499999’ ‘500000’인 북한 500원 화폐가 29.99달러에 올라있다. 북한 내부에선 500원이 0.05달러에 교환된다.
작전부가 돈 장사에 나선 것과는 달리 북한 주민들은 일렬번호로 된 지폐가 소장가치가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른다.
화폐 뿐 아니라 기념주화도 북한 통치자들의 돈벌이 대상이 된지 오래됐다.
해외공작을 담당한다면서 전 세계에 수많은 불법 아지트를 꾸려온 작전부는 북한에서 달러를 확보하는 불법통로가 가장 많은 부서였다.
정통한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바로 그렇게 때문에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이 가장 먼저 작전부를 자기 수중에 넣으려 했다고 한다. 보스가 되려면 달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김정은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극렬이 그리 순순히 돈줄을 넘겨주려 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아무리 저항해봤자 김정일이 밀어주는 김정은을 당해낼 수 없었다. 김정은은 정찰총국을 먼저 수하에 넣고, 이 정찰총국 산하에 작전부를 소속시키는 방법으로 작전부를 간단히 제 것으로 만들었다.
이때 밉보인 오극렬은 이후 이름이 없어졌다. 한때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위세가 높았던 오극렬이 몰락한 것이다,
작전부에서 화폐와 주화 장사로 노하우를 쌓은 인원들이 있는 까닭에 북한의 화폐 및 주화장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경험과 인원들이 부강주화회사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계속 이어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헌데 이 회사가 김정은이 사실상 총책을 맡고 있는 정찰총국 소속이라면 이는 북한 체제가 망한다는 데 배팅한 로저스에게 금화를 판 배후는 다름 아닌 김정은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주화장사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올 초 북한은 중국에서 순은 661.71㎏이나 사들여갔다. 65만 달러 정도 지불한 것으로 나타나 일단 순은 자체는 국제시세에 맞게 사들여 간 셈이다.
북한에는 자체 금광과 은광이 있다.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데도 은을 사들여 간 것은 그만큼 은 수요가 많다는 소리로 보인다.
이렇게 사들여 간 은이 기념주화발행에 쓰일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올해도 북한은 7월에 ‘조국해방전쟁승리 60주년’ 행사를, 9월에 ‘공화국 창건 65주년’ 행사를 열 예정인데 관례를 볼 때 이번에도 기념주화들이 발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념 금화 또는 은화들이 머잖아 이베이에 나올지 주목된다.
참고로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픈마켓인 이베이에는 1988년과 2002년에 주조된 1온스짜리 북한 금화가 각각 2,790달러에 매물로 나와 있다. 1일 금시세 1,595달러에 비해보면 꽤 높다.
그런데 끝으로 한 가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화나 화폐 판매업을 중점적인 돈벌이 목표로 했다고 하기에는 북한이 파는 물량이 많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도 싱가포르에서 몇 만 달러 정도만 팔았다. 화폐도 팔리면 올라오는 정도다. 이렇게 해서 돈을 과연 얼마나 벌까. 너무 많이 팔면 희소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금화 은화를 잔뜩 만들어 기념품이란 명목 하에 고위 간부들끼리 먼저 나눠먹고, 일부만 내다 파는 것일지도 모른다. 북한 간부들이야 말로 앞으로 금을 끼고 있어야 자손들은 어느 체제가 와도 무난히 살 수 있을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북한 체제가 망한다면 과연 로저스의 희망대로 북한의 금화나 은화 가치는 올라갈 것인가.
필자는 로저스와 반대로 배팅하고 싶다.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북한 간부들이 지금은 해외여행도 못하고, 인터넷도 없어 오직 꽁꽁 감춰놓을 수밖에 없는 기념 금화 은화 주화들이 그때에야 세계 시장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즉 북한 주화의 희소성은 북한이 붕괴되면 오히려 떨어질 것 같다. 물론 북한이 붕괴되고 다시 수십 년이 흐르면 그때엔 다시 희소해질지 모르겠지만.
로저스 회장의 손자들은 할아버지의 덕을 볼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