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힘 “주님이 영원한 안식처이다”
2025.1.17.금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
히브4,1-5.11 마르2,1-12
산대로 살고 산대로 죽습니다. 엄중하고 엄연한 진리입니다. 언젠가의 갑작스런 놀라운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축적된 삶이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되고 운명이 됩니다. 그 빛나는 모범이 오늘 기념일 미사를 봉헌하는, 251년에 태어나 356년까지, 즉105세까지 천수를 누렸던 성 안토니오 아빠스입니다.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안토니오의 생애”가 성 안토니오의 삶을 잘 소개합니다. 성인의 생애를 잠시 소개합니다.
‘3세기 중엽, 이집트 중부의 부유한 가정 출신인 안토니오는 부모가 돌아가자 많은 재산을 처분하여 자신과 누이에게 필요하다 생각되는 만큼 남기고 가난한 이들과 나눕니다. 바로 다음 두 성서 말씀과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태19,21)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6,34)
그는 21살에 은둔자가 되어 가난과 겸손, 거룩함과 자기훈련의 모범으로 살았습니다. 많은 유혹을 물리치며 고향 인근에서 살다가 35세 산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성의 폐허로 이동해 무려 20년을 독수자로 살았고, 그동안 6개월마다 음식을 가져다 주는 사람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세웠고 자신도 혼자 살면서 필요할 때만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엄격한 삶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활기차고 즐거운 삶을 살았고, 사람들은 그의 쾌활함으로 한눈에 그를 알아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배웠고 성인도 그들에게 배우려 노력했습니다.
60세 때, 종교적 박해 시기에는 순교를 바라며 악렉산드레아에 갔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이단과도 치열히 싸웠습니다. 이어 끝까지 사막에 은수자로 105세까지 사는 동안 병에 걸린적도 없었고 시력도 좋았으며 치아도 건강했습니다. 참으로 전설적인 믿음의 대가, 은수자들의 아버지 성 안토니오 아빠스입니다.’
성 안토니오의 삶을 통해서도 하루하루 한결같은 하느님을 찾는 진리추구의 믿음의 삶이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무슬림 지도자와의 대화에서, 분열이 아닌 일치의 평화를 위해 더불어 노력하는 종교인들의 믿음의 자세를 환기시켰습니다. 교황님 말씀입니다.
“종교들은 평화의 가교들을 찾기 위해 더불어 일해야 한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하느님을 찾는 공부에 항구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합니다.
“공부하며 쌓은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지만, 공부해나갔던 자세만큼은 머리가 아닌 몸에 새겨진다.”<다산>
“군자가 도리에 맞게 학문을 깊이 파고드는 까닭은 스스로 경험해 얻고자 함이다.”
살아온 대로 정직하게 새겨지는 삶의 나이테요, 세월의 풍화작용도 견뎌내는 삶에 새겨진 신망애의 나이테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한결같이 평생 하느님을 찾아 노력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 참된 영원한 안식처인 주님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습니다.”(시편90,1)
예수님께서도 안식처를 찾듯이 아버지와의 만남이 필요한 새벽마다 외딴곳을 찾아 머물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안식처에 들어가는데 믿음이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중풍병자의 믿음이 좋은 동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안식처임을 믿음의 눈으로 알아봤음이 분명합니다. 주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주님을 찾으십시오. 멀리 밖에 있는 안식처가 아니라 주님 함께 하시는 오늘 지금 여기가 주님의 안식처입니다. 그러니 안식처를 찾아 엉뚱한 밖에서 헤매지 마십시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는 참된 안식처임은 다음 주님의 초대 말씀이 입증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참된 안식처가 되시는 예수님은 중풍병자 동료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눈물겨운 믿음의 노력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죄의 용서를 선언합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이어 곧장 주님은 권위있는 말씀으로 육신의 치유를 선언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느님의 권능이 참된 안식처 예수님 말씀을 통해 그대로 발휘되는 틍쾌한 장면입니다. 혼자서의 치유의 구원이 아니라 더불어 치유의 구원입니다. 동료들 믿음 덕분에 치유의 구원을 받은 중풍병자요, 중풍병자와 더불어 동료들도 치유의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좌우간 이분들은 평생 주님의 치유의 구원 체험을 잊지 못했을 것이며, 끊임없이 믿음의 원동력이 됐을 것입니다.
영혼과 육신은 하나입니다. 동료들의 믿음 덕분에 죄의 용서로 영혼이 치유되자 저절로 육신의 치유가 뒤따릅니다. 정말 죄의 용서로 영혼치유가, 영혼건강이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이 복음 장면을 대할 때 마다 생각나는 다음의 미사경문입니다.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되게 하소서.”
혼자의 믿음은 약하나 교회 공동체의 믿음은 강합니다. 우리 약한 믿음도 더불어 주님의 교회공동체 믿음에 뿌리내릴 때 강한 믿음이 됩니다. 새삼 교회 공동체의 믿음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믿음 좋은 동료들 덕분에 치유받은 중풍병자처럼, 우리 역시 교회공동체의 믿음 덕분에 죄를 용서받고 영육의 치유와 구원을 받으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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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성 안토니오의 삶을 통해서도 하루하루 한결같은 하느님을 찾는 진리추구의 믿음의 삶이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