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천일기도 174일 2013.05.16 목
광주시 청년불자회 청화(淸華)큰스님 초청 특별법회(1992.08.30)에서 발췌했습니다.
12년 지난 다음에 반야경(般若經) 공(空) 도리를 22년동안 - 부처님 설법 가운데 가장 고구정녕하게 22년 동안 - 반야 공도리를 말씀 하셨습니다. 모두가 공이다. 사실 이 몸뚱아리가 이것이 어떻게 있습니까. 여러분들 12인연법(十二因緣法)도 다 배우셨지요. 과거 전생(前生)의 무명(無明)으로 해서, 무명 그것은 지금 무슨 자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명은 우리 식(意識)에 있는 번뇌(煩惱)입니다. 무명은 사물을 바르게 못보는 것입니다. 검으면 검다고 보고 희면 희다고 보아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못보는 것이 무명입니다. 성자(聖者)만이 무명이 없습니다. 성자는 사물을 사실 그대로 봅니다. 이른바 실상(實相)을 봅니다. 우리 중생은 가상(假相) 밖에는 못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 무명 때문에 행(行)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무명 때문에 음욕(淫慾)의 행이 있었기에, 그리고 부동(浮動)하는 그런 영(靈)도 그런 식(識)도 역시 무명식(無明識)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연(緣) 따라서 거기에 끌려갑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태(胎)속에 안착해서 커나왔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몸뚱아리 입니다만 과거 전생에 이와 똑같은 몸뚱아리는 없었지 않습니까. 과거 전생에는 없었습니다. 한동안 살다가 교통사고 만나서 죽든 또는 80세에 죽든 어떻게 죽든 결국은 죽는 것인데 죽은 다음에는 이런 몸뚱아리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금생(今生)에 몇십년 동안 모양이 이렇게 존재합니다. 그러면 모양 그것은 실존(實存)인가. 잠시간 금생에 존재하는 모양 이것도 바로 실존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관념(觀念)이, 우리 중생 인간 차원으로 보기 때문에 저 사람은 저렇게 잘 생겼다. 그러나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 일초의 몇 억분의 일도 역시 같은 모습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리학적으로 보더라도 일초의 몇 억분의 일도 역시 그 찰나(刹那) 한 순간도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10년간이나 20년간이나 있다가 만나면 젊은 사람이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보통 매일 만나서는 잘 모릅니다. 분명히 변화하는 것인데 잘 모른단 말입니다. 일초 전과 일초 후의 우리 몸뚱아리가 같지 않습니다. 신진대사(新陳代謝)로 보더라도 일초전과 일초후의 우리 몸이 같지기 않습니다. 이런 것을 자기라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일초전의 자기와 일초후의 자기 또 일초의 몇억분지일의 전(前)의 자기와 후(後)의 자기가 같지 않은데 우리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철저하게 과학적입니다. 어느 순간도 같은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무아(無我)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무아(無我)이지만 나를 구성하는 산소가 있고 수소가 있지 않은가? 또는 산소나 수소를 구성한 양자나 전자나 중성자가 있지 않는가? 그런 것은 또 가장 미세한 소립자(素粒子)로 쪼개지고 그것도 역시 종당(終當)에 가서는 염파(念波)라! 마음의 파동(波動)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음의 파동에 불과합니다. 전자나 양성자나 중성자나 그런것이 모두가 다 마음의 파동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간(宇宙間)에 있는 어떠한 존재 물질도 태양계(太陽系)나 은하계(銀河系)나 그러한 존재도 모두가 다 마음의 파동에 불과합니다.
마음의 파동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마음의 파동은 좋아(貪)하고 싫어(嗔)하는 마음(痴)에서 무명심(無明心)에서 일어납니다. 무명(無明)으로 해서, 무명이란 우리가 사태(事態)를 잘 못 보는 것입니다. 바로 보면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인데 일심진여(一心眞如)인데, 오직 청정무비(淸淨無比)한 마음 뿐인 것인데 우리가 잘 못보므로 거기에서 이제 아(我)가 생기는 것이고, 아(我)가 생기면 나 한데 좋으면 탐심(貪心) 나한데 싫으면 진심(嗔心)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무명심 (無明心)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 마음이 파동(波動)을 일으켜서 그 파동이 전자(電子)가 되고 양성자(陽性子)가 되고 중성자(中性子)가 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전기(電氣)가 되고 자기(磁氣)가 되는 것입니다. 전자기장(電磁氣場)이 되어 광명(光明)의 바다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보면 모두가 본래는 마음뿐입니다. 마음이 파동을 일으켜서 전자(電子)가 되고 무엇이 된다 하더라도 마음 자체는 조금도 변동이 없습니다. 금(金)으로 안경테를 만드나 금으로 시계줄을 만드나 금의 순수도(純粹度)는 조금도 변질이 없듯이 진여불성(眞如佛性) 일심진여(一心眞如)의 그 마음자리가 이렇게 변동하고 저렇게 변동해서 사람 같은 모양이 되나 별 같은 모양이 되나 또는 금 같은 모양이 되나 「일심진여」라는 그 마음의 순수도는 조금도 변질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진여불성(眞如佛性)은 생사(生死)를 초월(超越)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나 조금도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주(宇宙)는 한 말로 말씀드리면 모두가 다 어제도 오늘도 진여불성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반야(般若)의 도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것은 다들 비어 있습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한 권만 가지고도 반야심경 한편만 가지고도 성불(成佛)이 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 있지 않습니까.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라! 우리가 생각하는 꿈같은 견해, 우리는 지금 잠꼬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못 보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어느 순간도 같은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무아(無我)입니다. 마음의 파동에 불과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우주 일체존재가 다 염파라! 아미타불!_()_
"모두가 본래는 마음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보리방편문 108독 아미타불! 10000념 금강 부처님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_()_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