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로 가는 길은 수행의 길과 같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굽이 굽이 백담계곡길을 다리가 부서져라 걸으면 탁 트인 백담사가 납자들을 기다린다. 끊임없는 정진의 뒤에 깨달음의 맛을 보기 위해 한여름의 무더위를 뒤로하고 전세계의 불교 석학들이 설악산 자락, 백담사에 모여 화두정진에 들었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소장 종호)가 8월 15일 백담사 무금 선원에서 제2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를 앞두고 개최한 간화선 실참수행에는 미국, 중국, 일본 등지의 해외석학 20여 명이 모였다. UCLA 로버트 버스웰 교수, 스미스대 피터 그레고리 교수, 테네시대 미리암 레버링 명예교수 등 세계적인 권위자들은 간화선 실참에 참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간화선의 구조와 원리에 대한 연구는 둘째 치고 자신을 돌아보고 참나를 찾기 위함이었다.
4박 5일간의 이 길에는 무금선원장 신룡 스님,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 종호 스님도 참석해 이들을 이끌었다. 이날 지도법사인 수불 스님의 간화선 화두 법문을 시작으로 진행된 수행 실참은 철저한 조사어록에 의해 진행됐다.
또 빠른 의단(疑團) 형성과 지속을 위해 방선(放禪) 시간이 없이 진행됐으며 수행에 방해되는 일체의 행동과 말이 금지됐다. 매일 저녁에는 소참법문이 내려져 각 경계에서의 극복방법과 화두타파에 대한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오직 모를 뿐, 갑갑함 느끼는 것이 인연” 이날 수불 스님은 정진에 앞서 참가자들이 손가락을 움직이에 한 뒤 ‘무엇이 나로 이렇게 하게 하는가’는 화두를 내렸다.
수불 스님은 정진에 앞서 “잠과 망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당부했다.
또 스님은 “갑갑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 벽을 뚫기 위해 더욱 치열히 정진해야 한다”고 지도했다. 다음은 수불 스님의 간화선 화두법문 전문이다.
좋은 인연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화두 참선은 굉장히 정성스러워야 합니다. 굉장히 간절해야합니다. 굉장히 집중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여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사공이 어디에 의지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비유를 하자면 밝은 해를 볼록렌즈에 비춰서 불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더 깊이 얘기하자면 돌과 돌을 부딪쳐 불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화두 참선에는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잠입니다. 공부 할 때에는 눈을 뜨고 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눈을 뜨면 눈을 감는 시간을 한 시간에 5분 정도 내외로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 감는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포기 하는 것과 같습니다. 차라리 졸리면 누워서 잠을 자는 것이 낫습니다. 결코 앉아서는 졸아서는 안 됩니다. 조는 것이 공부의 가장 큰 방해요인입니다. 두 번째는 망상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는 것을 없애고 공부하려면 안 됩니다. 망상과 함께 공부해야합니다. 망상이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이제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문제를 내려 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내려진 문제에 따른 답만 찾으면 됩니다. 문제를 제기하기 전 이미 들고 있는 화두가 있다면 비교하려 하지 말고 지금 내려지는 문제에 집중하십시오. 화두든 목적은 화두를 통해 정신적인 벽을 타파하기 위함입니다. 화두가 제시되면 바로 정신적인 벽을 느껴야 의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위적인 것이 따르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 수 있습니다. 마치 비유하자면 큰 가마솥에 물을 넣고 끓일 적에 물 온도를 100도로 끓을 때까지 풀무질을 쉼 없이 하는 것입니다. 50~60도 까지는 쉽게 물 온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90도를 넘어 100도를 넘기기가 힘듭니다. 짧은 시간에 100도에 이르러 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문제를 내겠습니다. 문제는 한번 보고 듣고 느끼면 됐습니다. 손가락을 들어 퉁겨 보십시오. ‘무엇이 나로 이렇게 하게 하는가.’ 마음, 손가락, 스님이 시켜서 라는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마음이 하는 것은 왜 아니냐. 부처님이 깨달은 것을 설명하기 위해 붙인 것이 마음입니다. 손가락이나 내가 한 것이 왜 아니냐. 손가락도 나한테 딸린 것입니다. 내가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손가락 스스로 이렇게 퉁기지도 내려놓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내가 했다고 해야겠습니까. 손가락이 했다고 해야겠습니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하게 했습니까.
오직 모를 뿐입니다.
눈앞에 정신적인 벽이 가로 막혀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벽을 놓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면벽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르는 그 일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이 몸을 끌고 다닐 때 ‘이 뭣고’ 합니까. 스스로 끌고 다니는 놈이 ‘뭣고’ 하면 안됩니다. 그 일단의 일을 모를 뿐입니다. 깨닫던지 모르던지. 아니면 엉거주춤 할 뿐입니다. 알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다시 한번 문제를 내겠습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했습니까. 그냥 답만 찾으시면 됩니다. 무엇이 마음입니까. 모를 뿐입니다. 그 것 몰라서 알려고 애를 쓸 뿐입니다. 배워서 이해하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실제 마음이 무엇인지 모를 뿐입니다. 그 마음 찾으려면 노력해야 합니다. 알려고 할수록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계속 궁금해야 합니다. 문제를 외운다던 지해서 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그냥 답만 찾아야 합니다. 문제는 한번 보고 느꼈습니다. 단지 답을 모를 뿐입니다. 어떠해야 그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냥 갑갑할 뿐입니다. 그 것도 인연이 있다면 그렇습니다. 인연 없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일단의 일에 대해 알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것은 손가락이 내가 하는 것도 마음이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합니까. 무엇이 갑갑함을 느끼게 합니까. 그렇다면 그 것을 알려고 하십시오. 끊어지지 않게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 하십시오.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무엇인고? 무엇인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은 의심이지만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눈앞에 가로 놓인 정신 벽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치 비유하면 생고무 줄을 끊으려고 애를 쓸 적에 끊을 듯 하며 힘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힘이 들더라도 끝까지 밀어 붙여야 공부가 끝이 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거문고줄 끊듯 하면 안 됩니다. 거문고 줄 터트리듯이 해야 합니다. 팽이를 칠적에 완벽하게 돌게 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살살 치다 나중에는 있는 대로 세게 쳐야 합니다. 정중동. 지금 제시된 의심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바로 시작하십시오. 잠 좀 안자도 밥 좀 안 먹어도 되고 끝날 때까지 밀어붙여서 규명해 보십시오. 공부 할 적에는 좀 이기적으로 돼야 합니다. 친한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화두 의심과만 가까이 하십시오. 24시간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 것이 알아질 때까지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의심은 제거하고 의정을 바로 들어가도록 하는 이것을 따르십시오. 의심만 가지고는 4박 5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습니다. 의심은 바로 집어던지고 의정이 의단화되도록 화두를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화두든 상황에서 걱정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진짜로 의심해야 될 화두를 집중하십시오. 집중하다보면 그 것이 커지게 됩니다. 이 것은 제가 최면을 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문제제기를 제가 했을 뿐입니다. 알려고 하십시오. 알려고 하는데 갑갑한 기운이 왜 형성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과를 깊이 믿고 끝가지 밀어 붙여보십시오. 무슨 도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하는 것도 마음이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이렇게 하는지 알고 살았습니까? 모르고 살았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파고드십시오, 4박 5일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리 결과를 말씀 드려서 미안하지만 어떤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매미 허물 벗듯. 120근짜리 짐을 벗듯. 한번 해 보십시오. 이런 체험을 전 250회 이상 해오고 있습니다. 공부 중 일어나는 경계 현상에는 집중하지 말고 공부가 되냐 안 되냐 에만 집중하십시오. 그냥 오직 갑갑할 뿐입니다. 인연이 있다면. 무엇이 석연치 않는 기운이 걸려서 삼켜지지도 않고 뱉어지지도 않는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가슴이 갑갑할 때도 있습니다. 머리가 또 깨질 듯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탁하지만 머리 위로는 공부하지 마십시오. 목 아래로 공부하십시오. 알고 보면 머리 쪽은 둔한 것입니다. 몸이 더 민감합니다. 알려고 애써야 합니다. 이 무슨 도리이겠습니까. 소화 안 되는 쇠뭉텅이를 삼킨 것처럼 갑갑해야 할 텐데...갑갑한 것을 해결하려고 믿음을 내고 들어가 보십시오. 방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공부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밀어 붙여야 합니다. 내 앞에 무엇인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알면서 방치하고 지냈습니다. 그 문제를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처음부터 정성스러워야 한다. 대충하면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소뿔로 된 쥐틀을 마련해 놓고 쥐를 유혹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이 뾰족하기 때문에 점점 어려워 질 것입니다. 그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장치에 여러분을 밀어 넣어드려야 하는데 같이 최선을 다해서 할 적에 무엇인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머리로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의심된 것만 의심하지 의심 단계에서 펼쳐지는 것은 망상으로 내버려 두십시오. 그동안에 들고 있던 화두가 더 잘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것을 무시하십시오. 4박 5일간에는 여기에 집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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