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에게 말을 걸다.
삼백여개의 오름을 자식처럼 보듬고 풍만하게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제주도. 관광지라는 수평적인 개념으로 보기엔 수직적인 위엄과 아픔이 있는 곳.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한 점 산으로 솟은 탐라 제주.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민초들의 삶. 역사의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4.3의 원혼들로 가슴 처연한 곳.
어승생악 정상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무심한 바람소리에 가슴이 휘어지고, 차귀도의 일몰이 눈에 일렁이나 코끝엔 오롯이 슬픔이 내려앉았다.
평화박물관의 땅굴로 들어가면서 역사의 끝부분을 부여잡고 애를 쓰는 후손이 안타까웠고, 송악산 억새밭에 넘어지면서 삶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지독한 감동으로 혼미해졌다. 저마다의 방법대로 몰입을 했겠지만 제주는 너무 아름다워서 슬펐다.
제주와 사귀고 싶다.
어승생악이라 했던가? 나무 계단을 밟고 오르는 동안 내내 잘 꾸며 놓은 일식 집 현관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언덕을 덮은 조릿대는 자연산이었지만 마치 견본의 조경공사처럼 반듯했다. 숨이 턱에 닿게 정상에 올라 한적한 풀밭을 찾아 벌렁 누워 하늘을 보았다. 하늘색은 파랗게 몽골의 하늘을 닮아 있어 어디서 독수리라도 날아 올 것 같았다.
생애 처음 오름에 올라 바람을 맞으니 내생각의 규칙들이 시나브로 무장해제가 되었다. 자연의 위대함이란 인간의 복잡한 의식구조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보는 이기적인 세월이 나에게 찾아 왔지만 오늘만큼은 전부를 포용하는 너그러운 오름이 되고 싶었다.
차귀도를 배경으로 해넘이를 보는 전망대에서 때를 기다렸다. 맵시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무념무상으로 바다와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집트 나일강이나, 인도나, 안면도에서나, 해넘이는 언제나 장관을 연출한다. 더구나 모놀 식구들과 함께 해넘이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감동은 증폭되고 있었다. 드디어 떨어지던 태양이 수평선을 가볍게 착륙했고 또렷한 오메가 현상을 보게 되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어떤 말이든 사족일 뿐이었다.
인간을 읽는 가장 밑바닥의 코드는 욕망이고 그 중에서도 식욕은 우선순위다. 별이 총총히 뜨는 팬션에서의 오겹살 숯불구이는 인간애를 끌어내었다. 우호적인 날씨로 제주의 첫 날 밤은 별들의 잔치로 흥겨웠다.
제주에게 사랑 표현하다.
여기 진정한 평화를 갈망하는 제주인(濟州人)이 있었다. 아버지의 증언과 기록과 유추와 발췌로 오늘의 박물관을 사재를 털어 건립한 사람. 계산된 언어구사로 방문객의 감성을 말랑하게 자극하는 부류가 아닌 우직한 사람.
평화 박물관 주인 이 영근 관장님이 제주를 지키는 투박한 돌하루방처럼 느껴졌다 관장님의 깨어있는 의식의 주체성이 경제의 난항으로 변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제주 4.3 사건을 검색을 통해 하루 종일 읽어보았다.
일본제국주의와 미군정에 저항하고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반대하고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사람들을 빨갱이라 몰아세웠으며 엄청난 학살을 자행한 것도 모자라 여러 가지 불가항력으로 동조를 한 양민마저 마구잡이로 죽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후손이 억압된 법칙에 항거도 못하고 존재조차 금기로 여겼을 세월의 무게로 마음이 아파왔다. 제주의 항쟁들이 바로 정립되지 못하고 아직도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고, 코끝에 내려앉던 슬픔의 등식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제주의 서정적 지성과 교제하다.
송악산의 진입로는 동네 약수터 올라가는 길과 흡사했다. 진부한 시선으로 산길 따라 줄을 서듯 올라갔다. 그러나 곧이어 터지는 사람들의 괴성으로 송악산이 놀라고 수많은 억새로 나도 놀랐다. 산은 온통 반짝이는 억새밭이었다. 고대 원형극장처럼 거대한 분화구에 무리 진 이름 모를 작은 꽃들. 작고 귀여운 노란 국화꽃 무리들.
미의 보편적 범주를 벗어 난 풍광은 심장을 딱 멎게 하였다. 인간의 기본적 속성은 비슷하여 사람들이 열광한다. 자아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포착되고 규정되는 존재처럼 사람들이 흥분해서 마구 사진에 찍히고 찍어대었다. 베토벤의 작곡보다 극명한 서정성이 억새마다 넘실대었다. 송악산! 흔하고 평범한 이름으로 예측 못할 반전의 신비감을 선물하다니......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포만감을 안고 휘청거리고, 휘어지고, 아름다워서 슬프고, 또 슬픈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제주 돌이 되어 침묵하다.
제주의 거대한 갯깍병풍바위를 보면서 세계 불가사의의 돌들이 떠올랐다. 이스트 섬의 모아이 석상이나, 영국의 스톤 핸지, 중국의 만리장성,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이집트의 피라밋 요르단에 페트라, 페루의 마추피추, 로마에 콜로세움, 인도의 타지마할 그리스에 파르테논 신전 등으로 고대인들이 주물럭거렸던 건축물까지 전부 돌이지만 갯깍바위의 돌은 따뜻한 나무 느낌이 나는 특이한 돌이었다. 인간이 만든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여기저기 서있지만 갯깍바위엔 천연의 오벨리스크가 병사처럼 도열하고 서있어 보기에도 시원하였다.
같은 화산섬이란 공통점으로 제주의 돌은 이스트 섬의 모아이 석상과 비슷하였다. 그 모습 또 한 하루방을 닮았다. 인간을 닮은 거대한 석상을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만들고 안녕을 기원했을 그들과 돌하루방에 염원을 담던 우리 조상들이 같은 맥락의 나약했던 인간상을 보여준다.
지하의 박물관에 있는 조각가의 작품 같은 돌들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용암에 녹다 살아남은 융기를 풍화라는 자연의 손길로 돌들의 예술성은 살아 움직였다.
공원에는 무덤 주위에 세워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는 동자석이 많았다. 레테의 망각의 강을 건넌 그들은 현세를 기억도 못 하는데 살아남은 자들의 몫인 한을 달래느라고 돌을 깎아 자식처럼 무덤가에 세워 놓았다.
제주 여인들의 손때가 묻은 수많은 맷돌이 시루떡처럼 쌓여 벽을 이루고 있었다. 세상과 사물에 침묵해야 살아남음을 아는 제주 사람들은 저마다의 맷돌을 가슴에 얹고 언어를 여과 시켰겠지? 그들의 한숨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리는 듯 했다. 퇴장 무렵의 돌 문화 공원은 죽음 같은 침묵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제주 부재에 대한 그리움
사랑은 존재보다는 부재에서 그리움이 촉발되고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 사랑은 증폭된다. 내 가슴에 제주를 키우면서 그의 사랑으로 사적인 고통을 음미하게 되었다. 5월의 너는 눈이 부시겠지?
|
찬미는 사진을 넘 잘 찍어서 옴메~~~기죽어~~~ 피장파장~ ㅎㅎ
언냐 너무 멋져! 다른 말들은 언냐 말대로 사족이야!!!!!! 넘 멋져
은사시의 젊고 예리한 감각의 글이 산뜻해서 부러워~~~~~ㅎㅎ
이런 멋진 글로서 답하느라 그동안 그렇게 아팠나보다... ㅎㅎㅎ 진짜 제주도의 깊음을 더 느겨보게 되었네요. 감사해요^^*
로또 당첨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ㅎㅎㅎ
센스만점인 아낙수나문 님의 후기는 또 다른 깊이가 있네요. 열심히 제주 답사에 임하신 속내에 흠뻑 취해봤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렇게 쓸 수 있는 기억력에 탐복합니다. ㅎㅎ
요시님 바빴어요? 요 며칠 안 보였네요.ㅎ 답사에서 만나요~~~
멋진 후기도 감상하고...생각보다 너무 씩씩하게 잘 오르는 걸 보고, 제가 감탄했지요... 역쒸~ 사람은 준비를 잘해야 된다고...ㅋㅋㅋ 답사내내 즐겁고, 행복한 시간 함께해서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