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 열람실에서
팔월 첫날 금요일이다. 지기들에게 지난번 다녀와 엮어둔 ‘상옥정 연밭’ 시조로 아침 안부를 전했다. 이어 ‘제동리 여름 장미’를 한 수 남겼다. “국도변 시골이라 한갓진 농가인데 / 뜰에도 울타리도 장미를 잘 가꾸어 / 늦은 봄 풍성히 피어 꽃 대궐을 이뤘네 // 제철을 넘기고도 뒤늦게 피운 송이 / 한여름 삼복염천 뙤약볕 아래서도 / 화사한 꽃잎을 펼쳐 제 임무를 다한다”
앞 단락 인용절은 어제 아침 가술로 나간 제동리에서 본 여름 장미였다. 날이 밝아온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서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 버스 정류소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이웃 노부부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건너편 아파트단지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20여 년째 농사짓는 분이다. 날씨가 무더워 밭으로 나가지 않다가 모처럼 농장으로 나가보는 걸음이었다.
여든 살 넘은 부부는 밭에 콩이나 참깨를 심어 가을에 수확물을 제법 거두었다. 이랑에 비닐을 덮어 작물을 가꾸고 장마가 오기 이전 초기에 잡초 제거를 마쳐 놓아 여름에는 손이 가는 일이 없을 듯했다. 오늘 아침에도 잡초나 병충해 염려로 농장을 찾는 길이 아니고 부식으로 삼을 풋고추와 가지를 마련해 오기 위함이었다. 농협 ‘하나로 마트’가 아닌 ‘강변 마트’ 가는 길이었다.
셋은 102번 버스를 타고 도계동으로 나갔다. 대방동을 출발해 근교 강가로 가는 31번 첫차 버스로 바꾸어 타고 용강고개를 넘었다.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면서 농사를 짓는 분과 산업단지로 나가는 이를 몇 더 태워 봉강과 죽동을 거치면서 거의 내리고 할아버지 내외는 북모산에 내려 밭을 둘러보러 갔다. 나는 제1 수산교를 거친 종점 본포에서 멀지 않은 상옥정에서 내렸다.
오늘부터 지난봄 파업으로 진통을 겪던 시내버스 요금이 인상되어 적용하는 첫날이다. 일반버스는 1,500원에서 200원이 오른 1,700원이 되었다. 번호를 다르게 하는 경우 환승 적용은 25분이나 50분 이내면 가능하다. 상옥정에서 짧은 구간 강둑 산책을 마쳐 신전으로 돌아오면 환승이 가능도 할 듯했다. 날씨가 무덥기도 해 아침 산책을 더 하고 싶어도 무리하면 안 될 처지였다.
농로를 겸한 지방도 길섶 밤새 피어난 달맞이꽃이 저물지 않은 채 아침햇살에 화사했다. 연근을 가꾸는 밭을 배경 삼은 달맞이꽃을 앵글에 담아 김해 한림으로 뚫은 신설 국도 굴다리를 지나 강둑으로 나갔다. 겨울이나 봄날에는 간혹 산책을 나왔으나 여름에는 드문 경우였다. 4대강 사업으로 정비가 잘 된 강변으로 자전거길이 시원스레 뚫렸는데 도보로 걷기는 더 좋은 길이다.
지난번 산청 합천 일대 기습 폭우가 내린 물난리로 남강과 낙동강 중하류는 흙탕물이던 물길이다. 이제 유량이 줄어들고 부유물도 가라앉아 수량은 안정되어 맑은 물이 흘렀다. 갯버들이 무성하고 물억새와 갈대들은 성장세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수박 접목으로 들여 키운 가시박이 번져 자라 생태교란종 밉상으로 찍혀도 세력이 좋았다. 칡넝쿨이 강가까지 덮쳐 가시박과 경쟁했다.
강둑 짧은 구간 산책을 마치고 대산정수장이 저만치 보이는 굴다리를 지나 신전마을로 왔다. 그곳도 겨울 당근이나 봄 감자를 캐낸 논에 벼들이 자랐다. 마을 앞 일부 구역은 뿌리를 캘 연을 가꾸었다. 1번 마을버스 기사는 종점에서 출발 시각을 지켜 시동을 걸었다. 몇 개 강변 마을을 거쳐 국도와 겹친 구간에서 가술에 닿아 오전 부여된 임무를 마치고 마을도서관에 머물렀다.
펼쳐 읽던 ‘길 위의 뇌’를 완독하고 점심때가 되어 밖으로 나가 추어탕으로 한 끼 때웠다. 식후에 그곳 마을도서관이 아닌 시내로 가야 할 처지였다. 배낭에는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이 채워져 있었다. 뙤약볕이 뜨거워도 시내로 돌아와 교육단지 가는 걸음은 드물게 양산을 펼쳐 손에 들었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같이 온 젊은 부모들이 가득한 열람실이었다. 25.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