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며 : 생각하는 인간에 대하여
블랙리스트 사건, 나꼼수 현상, 메갈리아 마녀사냥은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여러 사건 중 하나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들을 관통하는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수 정권은 시민의 '개인되기'를 방해하기에 비판적 의식을 통제하는 제도적 억압을 가하고, 상대적으로 진보 진영은 이 억압을 향해 저항하는 과정에서 약자 혐오와 멸시를 정당화한다. 보수 우파가 특정 지역 혐오와 안보를 이용하고 페미니즘을 왜곡되게 활용한다면, 진보 진영은 '민주와 진보'라는 대의를 위해 노동자와 여성을 나중으로 미룬다. 혹은 노동자를 남성화하며 페미니즘을 억압한다. 여성주의를 적극적으로 경계하며 배제하려는 진보와 이를 오용하는 보수 우파 사이에서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하는 사회 구성원이 누구인지 생각하자.
국정원이 3500명이나 동원해서 '댓글 공작'을 펼친다면,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나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 등에서 인신공격성 댓글을 '전투력'의 하나로 과시한다.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의 인스타그램은 수시로 공격받는다. 만만한 타인에게 도덕성을 강요하거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으며 자신의 정의감을 확인한다. 이는 결코 익명에 기대어 벌어지는 태도가 아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자신의 얼굴, 이름, 소속, 거주지역, 출신학교, 나이와 배우자 유무, 심지어 자식 얼굴까지 밝히면서 욕을 하거나 차별적 발언을 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형성된 '끼리끼리'의 세계가 '공감과 소통'으로 포장되어 강화된다. '미개'한 타인과 '충'이 되어 박멸의 대상이 된 비/인간이 늘어난다.
솔직한 '표현'의 '자유' 표현은 누구에게 도착하는가
솔직함은 곧 순수가 되고 선이 되지만 위선은 믿을 수 없는 이중성으로 낙인 찍힌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가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날린 비난의 언어 중에는 '거짓말쟁이'가 많았다. 힐러리는 위선적인 거짓말쟁이지만 장애인 기자를 조롱하거나 멕시코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트럼프는 솔직한 인간이다. 자유와 솔직함을 향한 극단적 찬양은 권력의 횡포마저 자유롭고 솔직하게 만든다. "우리, 솔직해지자",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인데"라는 말은 간혹 위험한 속마음을 드러내기 전에 깔아놓는 안전장치다. 여기서 '우리'는 너와 나를 묶으며 일반적인 사람들로 확대된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실은 '너도' 그렇잖아, 라는 속삭임이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인데 너는 왜 아닌 척 하느냐고 얄궂게 몰아 세우는 태도다. "나만 그런가요?"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위선이다.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보다는 타인도 옳지 않은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프로 불편러' 때문에 숨이 막힌다고 말하거나, 그들을 두고 '쿨'하지 못하다고 비판한 후 되려 약자와 소수자를 비웃는 편이 더 세련되게 보일 지경이다.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세요
혐오와 차별은 때로 취향이라는 고급스러운 외피를 두른다. 백인을 좋아하는 취향, 뚱뚱한 여자에 비위 상하는 취향, 가부장제가 잘 맞는 취향,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취향 등 별별 형태의 차별이 취향으로 포장된다. '취향'이라는 말 속에는 비정치적이며 판단이 중지될 수 있는 중립적인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할 자유, 그냥 내 의견, 다양성, 다른 것은 있어도 틀린 것은 없다 등의 말들로 자신의 올바르지 않은 말을 방어한다. 취향이라는 소음기를 장착한 총으로 혐오발언을 마구 쏠 자유가 ‘표현의 자유’로 자리잡게 된다.
혐오 표현이 취향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상대가 선택할 수 없는 정체성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취향이 존중 받는다는 것은 '개인'으로 존중 받는다는 뜻이다. '공식적으로' 개인의 취향을 가질 수 없는 집단이 학생, 군인, 죄수다. 이들은 집단으로 존재할 뿐 '개인'으로 존중 받지 못한다. 유니폼을 입고 머리를 자른다. 소지품을 검열 받으며 개인 공간 확보가 어렵다. 군인은 업무의 특성상, 죄수는 징벌이라는 의미에서, 학생은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역할수행을 위해 이러한 억압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 취향의 억압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침해를 담보로 한다. 그래서 취향을 존중하자는 개념이 필요했거늘, 지금은 거꾸로 취향이라는 개념이 차별의 도구로 활용된다. 몰카가 예술의 자유, 혐오가 취향으로 둔갑한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라는 말을 하며 자신의 혐오 표현을 변호한다. 무지의 취향화, 성적 대상화에 갇힌 상상력으로 취향과 자유는 심각하게 오염된 개념으로 빚어지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권력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2046769
첫댓글 내 인생 칼럼 저어엉말 내용 좋음. 본문 내용이 다가 아님. 전문 꽤 깁니다 시간 좀만 투자해서 읽는 거 강추 필사로도 아주 굳
ㄷㄱ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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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