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긴 팔
김왕노
세상에서 가장 긴 팔이 그리움이라 했지요.
나도 늘 그리움이란 팔을
당신에게 뻗었는데 당신 내 팔을 본 적이 있나요.
너무 멀리 뻗었으므로 위태하고 팔을 누가 뚝 잘라버릴 것 같아
조마조마하고 두려운데
오늘 밤도 세상에서 가장 긴 팔을, 몇 천리만리 밖에 있는
당신에게 뻗습니다.
뻗은 팔로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고 고장 난 가전제품을 고쳐주고
목마른 당신에게 물을 떠주고 싶지만
그리움이란 팔은 말미잘 촉수 같아 닿기만 할 뿐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꽃 하나 키우는 기술은 뛰어나
당신이 즐겨 오르는 언덕에 그렇게 향기 좋은 들장미
믿거나 말거나 그리움이란 내 팔이 밤새 키운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이 좋아하는 꽃을 못 키우면 어디 사랑이라 할 수 있나요.
당신에게 뻗어 꽃을 키웠던 팔을 거두면 당신이 좋아하는
들장미 냄새 진저리치도록 납니다.
못 견디게 나는 들장미 냄새로 더욱더 그리운 당신입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4월호 발표
김왕노 시인
경북 포항에서 출생.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꿈의 체인점〉으로 당선. 시집으로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 『그리운 파란만장』,『사진속의 바다』,『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게릴라』 등이 있음. 2003 년 제8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 년 제7회 박인환 문학상, 2008 년 제3회 지리산 문학상, 2016년 제2회 디카시 작품상 2016년 수원문학대상 등 수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등 5회 수혜. 현재 웹진 『시인광장』 발행인 겸 편집인,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한국 디카시 상임이사, 한국시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