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포엠포엠 봄호 2편 - 김대호

[자작]

 휘말린 감정

난 자연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서정시인도 별로 안좋아 한다 
 
자연스럽게 살라고 하는 말도 믿지 않는다 
 
사기성이 높은 가게는  
 
대부분 간판 이름이 예쁘고 자연스럽다 
 
내가 지금 사는 것에 별로 불만이 없다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사기에 휘말린 것이다 
 
내가 지금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면 
 
글쎄, 
 
난 그가 사기에 휘말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또한 나의 이러한 염려가 
 
사기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상관 없다 
 
우리는 모두 자연 앞에서 을이니까

나는 죽어서도 내 속에 담겨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기체의 몸이 되어 허공을 떠돌면서도 철이 안든 고집과 유치한 발상들은 그대로 이어지겠지 저 구름은 왜 동쪽으로만 흐른담? 저 비행기는 왜 나를 다시 흩어놓는감? 나는 속도에 흩어진 물방울들을 다시 끌어모으며 귀찮아 할 것이다 치매에 걸린 신도 만날 것이며 인생을 잘못 살아서 구천을 떠돌면서도 고민하고 있는 동료 기체들과 유니크하게 몸도 섞을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에 잠긴 자기집을 들여다보는 수몰민의 심정도 가질 것이다

감정도 수학이라서 
 
공식에 맞지 않으면 감정이 풀리지 않는다 
 
공식에 대입했을 때 
 
감정이 공식에 맞을 때 
 
단순한 기분전환은 쉽다 
 
심각한 감정의 혼돈을 푸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고 
 
응용이 필요하고 미적분도 필요하지만 
 
이것 역시 기본적인 공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공식이 없는 감정의 혼란은 광기가 되고 
 
자신만 이해하는 문장을 만든다 
 
공식에 대입만 하면 
 
감정이 다 풀리는 것도 문제겠지만 
 
공식없이 감정을 우기는 것은 위험하다

어릴 때 아이들이 모이면 도끼로이마까라상과 같은 일본식 이름을 지어내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그 다음 아이는 코를 손등으로 쓱 문질러 바지춤에 급하게 닦고는 그것보다 더 자극적이고 잔인한 일본식 이름을 지어냈고 전체 아이들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끼득거려 줌으로서 하나가 되었다 그런 놀이에 아이들의 무의식이 흐르고 있었는지 어떤 아이는 나중에 깡패가 되었고 술만 마시면 살림을 작살내는 놈도 되었고 거칠게 살다가 일찍 세상을 뜬 놈도 있다 

난 어둠 속에서 눈을 뜰 때마다 어릴 때 내가 몰입했던 감정 중에 어떤 것이 남아서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출처도 없는, 이상한 일본식 이름을 지어내곤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오늘도 질문이 생겨났다 
 
나는 이제 대답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의심스럽고 궁금한 것만 보인다 
 
철이 든다는 것은 의심을 푸는 것이라는데 
 
의심을 풀고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데 
 
나는 자꾸 손을 뒤로 감춘다 
 
긴장은 그곳에 도착했을까 
 
왜 막장은 갑자기 시작되는가

자기가 무엇인지 모를 때, 비로소 자기의 옹아리를 들을 수 있다고 오늘도 추풍령 바람은 내게 말한다 저 바람은 한순간도 뭉친 적이 없는 낱낱이지만 형체가 있고 이름이 있고 느낌이 있다 자기가 직접 관여하지 않아도 풀이 흔들리고, 춤을 배우지도 않은 검은 봉다리가 이 세상에 없는 춤을 춘다 내 주위에 있는 나무나 강아지는 매일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일들을 한다 난 그것이 보기 좋아서 한참 그것들을 쳐다보는 것인데, 어쩌다가는 나도 따라서 한다

때가 되면 올 것이 온다 
 
그것은 꼭꼭 숨어도 찾아오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까불고 있을 때도 온다 
 
손아귀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분명 꼭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빠져나갈까 봐 손에 힘을 주면 
 
더 빨리 빠져나가는 모래같이 
 
그것은 그것은,  기어이 온다 
 
그것이 오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알려 준 
 
세상을 알뜰하게 살다 간 사람이 남긴 
 
그 감동적이었던 유언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이 오면 
 
평소에 없던 감정이 생기고 
 
한 20년 넘게 못 본 사람의 얼굴이 
 
참 허망하고 심심한 기분으로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나를 배반하거나 한치 차이로 나를 비껴갔으니,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연습을 했다 나를 눕혀놓고 어느 부위를 잘라도 그 단면에서는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의 선연한 피가 배어나올 것이다 몸의 독기를 독으로 치유하고 슬픔을 슬픔으로 치유하는 이 고약한 전통이여 
내 주위의 자연은 나보다 잔인하므로 내가 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속으로 누군가를 용서해도 이것은 쉽게 잊혀질 일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연습해서 나는 오늘도 먹고 놀고 일한다

[정가네]

그렇네요. 배워야 할까 봐요.
좋아하지 않는 걸 좋아하는 연습을 하면 정말 내려놓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작]

잘 지내시죠 쌤
같은 김천에 살면서도 외국인 듯 못보네요
함 놀러 가것습니다^^

[미루미루]

자작님의 시를 대하니,
조만간
시남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커피, 수제 초콜렛,
가로로 난 창이
문득 그리워지네요.

[자작]

네 반갑습니다
언제든지 달려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