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희의 ‘마음의 성역’
내가 지금 죽어 하늘의 심판대에 서서 이제껏 지상에서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해야한다면, 무수한 죄 중에 제일 먼저 “저는 누군가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6-7년 전 법학과 2학년 학생들이 수강하는 교양영어 과목과 영문과 2학년 영작 과목을 동시에 맡았던 때의 일이다. 우연히 두 반의 수강생 수가 스물 네 명씩 똑 같고 법학과 학생은 모두 남학생, 영문과는 여학생만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 나는 두 반 학생들에게 영어로 펜팔을 시키기로 했다. 각자 배우 이름이든 작가 이름이든 자기가 잘 아는 영어 이름으로 가명을 쓸 것, 두 장 이상 영어로 쓸 것, 예쁜 편지지에 쓰되 자기 신상에 관한 말이나, 낭만적인 말을 쓰지 말 것 등, 몇 개의 법칙을 정하고 임의로 남녀 짝을 지어 펜팔 상대를 정해 주었다. 난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걷어서 정검하고 배달해주는 우체부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첫째 주에 영문과 여학생 하나가 휴학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그 여학생의 자리를 내가 메우기로 했는데, 나의 ‘펜팔’ 명호(가명)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한참 이성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라. 나의 ‘교육적’ 실험은 큰 효과를 거두어서 영어로 문단 하나 쓰는 것도 힘들어 하는 학생들까지도 영화 이야기며, 음악, 동아리 이야기를 나누며 두 장의 편지를 꼬박꼬박 써왔고, 자신의 펜팔에게서 오는 편지를 많이 기다리는 눈치였다. 성실하고 착한 명호는 광주에서 올라와서 누나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외로움을 잘 타고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었다. 마침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나는 자주 격려의 말을 써주었다. 그런데 편지가 오고 감에 따라 나는 점차 명호가 내게, 아니 내가 가장한 캐서린이라는 영문과 2학년 여학생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더럭 겁이 났으나 이제 와서 캐서린이 나라고 밝힐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덟 번 가량의 편지 교환 후에 종강이 되었고, 나는 학생들에게 모르는 사람과 편지를 나눈 기억을 대학 생활의 추억으로만 간직할 뿐, 끝까지 익명으로 남고 자신의 펜팔을 찾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지막 편지에서 명호는 ‘이제껏 내가 나의 외로움을 많이 달래주어서 힘든 대학 생활을 너 때문에 잘 넘길 수 있었다. 너무나 고맙고 너를 생각하며 꼭 사법고시에 붙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또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여학생 화장실 문에 캘빈 클라인(명호의 영어 이름)이 사법고시에 붙었다. 라고 써 붙이겠으니 그러면 내가 합격한 줄 알고 기뻐해 다라’라고 썼다.
그리고 1년 쯤 후, 무심히 학교로 들어오던 나는 ‘사법고사 여덟 명 합격!’이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보았다. 문득 명호 생각이 났다. 밑에 있는 명단에는 분명히 ‘법학과 3학년 김명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날 오후 인문관 여학생 화장실 문 앞에는 ‘캘빈 클라인 사법고시에 붙었다.’라는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혹시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명호가 날 찾아왔다. 그 여학생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합격도 의미가 없다고 안타깝게 호소했다. 나는 그 여학생은 그 사이에 유학을 가서 연락이 안 된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 명호는 자기 선생이 순전히 편의 때문에 자신의 마음의 성역을 마구 참범한 줄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
마음의 성역(sanctity of human heart)이라는 말은 19세기 미국의 작가 나다니엘 호손이 그의 대표작 주홍글씨에서 쓴 말이다. 아름답고 젊은 부인 헤스터와 불륜을 범한 딤즈테일 목사에 접근해 복수를 다짐하며 교묘하게 그의 영혼을 고문하는 늙은 칠링워스 아이의 밝히라는 주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간통녀를 상징하는 주홍글씨 A를 달고 딸과 묵묵히 살아가는 헤스터, 죄의식과 고뇌로 점차 쇠약해지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더욱 감동적이고 호소력 있는 설교를 하는 딤즈테일 목사, 이 세 사람의 삼각 관계가 갈등의 주류를 이루는 이 소설에서 호손의 목적은 결국 미로와 같은 인간을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조금씩 죽음에 다가서는 딤즈테일을 보다 못해 칠리워스가 자신의 남편이라 밝히는 헤스터에게 딤즈테일이 말한다
“우리가 지은 죄는 남을 헤치지 않았으니 남의 마음의 영역을 침범한 칠링워스야말로 가장 큰 죄를 지은 죄인이요!”
‘주홍글씨’ 뿐만 아니라 호손의 작품 근저에는 항상 ‘머리와 마음의 균형이라는 주제가 깔려있다. 즉 머린른 지력, 분석력, 이성을 말하고, 마음은 감성, 이해, 용서를 관장하는데, 지력만 너무 발달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감정만 너무 발달해서 이성적 사고를 못해도 참다운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내와 불륜을 범한 남자를 벌하고 싶은 것은 인간적인 욕망이지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체 간교한 수법으로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한 칠링워스는 호손이 말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죄를 통해서 승화된 헤스터의 선행과 자선을 통해 가슴의 A가 천사(Angel) 또는 유능한(Able)을 의미하도록 귀결짓는 호손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결국 호손이 제시하는 구원의 메시지는 그가 살았던 19세기보다는 머리만 점점 비대해지고 마음은 자꾸 작아지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더욱 필요한건지도 모른다.
요즈음도 19세기 미국 문학 시간에 ’주홍글씨‘를 가르치며 ’가장 악한 자는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하는 자‘라는 문구를 익을 때마다 그때 명호의 슬픈 뒷모습이 떠오른다.
*장명희 교수는 소아마비를 앓았고, 50대에 암으로 소천하였으나, 그가 남긴 주옥같은 글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 독서계에 혜성과 같은 존재로 남았다. 앞으로 계속하여 소개하겠습니다.
때묻은 우리의 마음을 그의 글이 정화시켜 주리라 믿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