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1. 13. 월요일.
<한국국보문학카페>에 수필이 올랐다.
<국보문학 2023년 12월호>에 수록 예정인 원고이다.
작가 조경래 작. '천막극장 그리고 텔레비젼의 추억'
'..... 하루 종일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하던 광고 소리가 어느 덧 학습이 되어 수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입을 열면 바로 뛰쳐 나온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무을면민 여러분 본 영화사는 방금 절찬리에 전국을 순회 상영하고 오늘 드디어 무을면민 여러분들을 찾아왔습니다.
이번에 가지고 온 작품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 ....
지금은 방향 잃은 전파를 찾기 위해 안테나를 돌리던 그 추억은 찾을 길이 없고 그 추억 따라 가버린 모든 것이 아련한 것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시간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일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추억만이 허공에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고 돌릴 수 없는 안테나가 되어 머릿속에는 지난 시간이 눈앞에 천막 극장의 필름처럼 서성이고만 있다.
그리운 추억이 다시 올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문학지에 올릴 예정인 원고에 독자가 댓글을 달면 얼마 뒤에는 원안이 인쇄에 들어가면서 카페에 오른 원문과 댓글도 완전히 사라진다.
나한테는 댓글도 소중한 글감이다. 내가 댓글 달고는 '세상사는 이야기방'에도 퍼 올려 보존하면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아래는 내 댓글 :
'무을면'이 어디에 있나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경북 구미시 무을면', 이게 맞나요?
가설무대가 있었던 당시의 옛 지명을 글 하단에 표새해야 할 듯.
조경래 작가님은 언제 태생인지 연도를 표시해야 할 듯.
저는 1949년 1월 서해안 산골 태생이기에 1950 ~ 70년대 초의 과거는 꿈만 같지요.
서해안 산골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해는 1974년 여름철...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던 날에는 동네사람들은 '만세!'를 외쳤지요.
대전에서 TV를 사서 기차 철로편으로 운반, 충남 보령군 웅천역에서 TV를 받아서 리어커로 운반, 시골집에 설치했지요.
하필이면....1974년 8월 15일 광복절에 육영수 여사는 문세광이 쏜 총에 맞아서...
마을사람들이 밤낮없이 제 시골집으로 몰려와서 TV를 보고...
저는 시골 태생인데도 대전으로 전학가서 초중고를 다녔고, 서울에서 대학 다녔기에 1950 ~ 70년대 초의 시골과 도회지의 시대상을 얼추 기억하지요. 즉 도시물을 일찍 먹었지요.
수십 년이 지난 2020년대인 지금, 전기가 없던 예전을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변했지요.
지나간 시대상을 엿보게 하는 글 정말로 고맙습니다. 엄지 척! 합니다.
위 수필은 정말로 참신하다.
지나간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기에.
위 수필에서는 '천막무대'에 관한 내용이 길게 이어진다.
천막극장, 가설무대....
나도 기억한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1960년 봄 벚꽃 필 때에 서해안 산골마을에서 도회지인 대전으로 전학갔다.
대전시내 중심지인 은행동에서 살았다.
대전역으로 가는 길목에는 대전천이 흐르는 목척교가 있다. 대전 중심지 목척교 다리 밑에는 거지들이 우굴거렸고, 다리 밑에는 천막극장이 있었다.
가설극장, 가설무대에서는 쿵착 쿵작하고, 노래 부르고....
딴따라 패거리들이 풍물치고, 무희들이 춤추고... 엿장수들이 엿가위를 철거덕거리고...
정말로 흥이 나는 천막무대였다.
.... ....
도시 대전과 달리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 서해안 산골마을은 캄캄한 암흑시대.
* 석유등잔, 호롱불을 켰던 시절.... 더 가난한 집에서는 송진이 많이 밴 소나무 뿌리(고주배기)를 캐고, 잘게 잘라 태워서 불을 켰다. 끄으름이 무척이나 많이 나고, 불내 나고.... 어둠을 겨우 몰아냈다. 어쩔 수 없이 잠자리에 일찍 들어갔다.
내 시골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왔던 때는 1974년 여름....
* 1974년 이른 봄, 해동될 때다. 논을 가로질러서 전봇대를 세울 위치를 토지측량할 때다.
청년인 나는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다기에 자진해서 살얼음이 있는 논에 들어가서 측량기사가 가리키는 곳마다 깃발 막대기를 세웠다. 나는 무료봉사.... 아... 발목이 엄청나게 시려워서, 추워서 벌벌 떨면서 깃대를 꽂았다.
봄철에 전봇대가 들어섰고, 초여름에는 집집마다 전깃줄이 들어왔고, 100볼트짜리 전등 3개를 설치했고....
내 아버지가 대전에서 흑백TV를 사서 기차 철로편으로 시골 역으로 보냈다.
어머니와 나는 리어커를 끌고 십리길도 훨씬 더 넘는 웅천역으로 가서 TV를 찾아서 시골집으로 가져왔고,
면내 전파상 주인이 와서 TV를 설치했다.
내 시골마을에서는 처음으로 TV 설치.
특히나 기억되는 때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 현장에서 육영수여사(박정희대통령의 영부인)는 재일교포 문세광이 쏜 권총에 맞아서 돌아가셨다.
이 뉴스가 라디오와 TV로 숱하게 보도되었다.
충남 서해안 산골 마을에서, 시골마을에서는 유일하게 TV가 있는 우리집에 마을사람들이 몰려와서, 늘 득실벅실거렸다.
수십 년이 지난 뒤인 2020년대인 지금에는 세상은 천지가 개벽한 것처럼 많이도 변했다.
... .....
나중에 보탠다.
쉬자.
2023. 11. 13. 월요일.
추가 :
2023. 11. 14.에 원안 하단에 보충설명이 아래처럼 추가로 겻들여졌다.
* 가설극장이 있었던 곳은 조선 택리지에 우리나라 인재의 반은 영남이요 영남의 인재 반은 선산이라는 말이 있는 경북 선산군 무을면 사창마을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특히 무을(舞乙)이라는 지명은 새가 춤을 춘다는 아름다운 곳으로 그 중심에 있는 4일장이 서는 옛 창고가 있던 마을(사창마을)에 가설 극장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무을면'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를
'카카오맵' 지도로 검색하기 시작한다.
또한 인터넷에도 많은 자료가 뜬다.
원래는 경상북도 선산군 무을면이었으나 훗날 구미시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작가는 1960년생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작가의 나이를 뒤늦게서야 알았기에 위 수필의 시대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