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상한 지식 (빌3:3-9)
1.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사실이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종교 (knowing about God) VS 하나님을 아는 신앙 (Knowing God)은 차이가 있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종교는 이론적 혹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 신학적인지식, 성경적인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 이는 마치 전기나 자서전 같은 것을 통해 아는 것과 같아서 책을 통해 출생, 학력, 가정생활 취미들 정보를 아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100번을 읽어 그 안에 나오는 내용을 달달달 외우다시피 안다고 해서 그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는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착각할 때 바리새인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자기들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로이드존스 목사는 <부흥>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 성경의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잘못 아는 것은 <죽은 정통주의> 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교리적으로는 뛰어난데 인격이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없는, 어떠한 친밀함도 없다는 것입니다.
2. 본문 빌립보서는 바울사도께서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빌립보 교회에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육체적인 것들을 자랑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유대인이란 사실을, 유대인이야말로 할례 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이라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민족이라고 자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너희들은 조상이 유대인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왜곡된 복음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할례를 받지 않아도 예수님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들어온 유대 기독교인들, 이들 때문에 몹시 혼란스러워하는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5-6절‘육체를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 자랑하라. 율법으로 말하면 나는 어느 유대인보다 더 자랑할 것이 많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그 모든 육체의 자랑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 자랑한다면 ‘나만큼 자랑할 것이 많이 있는 사람 나오라’고 할 만큼 자신의 자랑거리를 설명합니다.
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정통 유대인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② “이스라엘 족속이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란 뜻입니다.
③ “베냐민 지파요”- 베냐민 지파는 유다지파와 함께 남 유다에 속한 지파입니다. 좋은 혈통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④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이방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히브리인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종교적, 사회적 엘리트란 뜻입니다.
⑥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종교적 열심은 얼마나 대단했든지,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했는데, 그 일에 바울사도도 앞장 섰다는 것입니다.
⑦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율법의 규정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 자기 관리를 거의 완벽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7-8절에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자신이 지금껏 누려온 모든 좋은 것들, 자신이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에 13장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천국 비유 말씀에 딱 들어맞는 고백 같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값진 진주를 사고자 한다는 것이지요.(마 13:46). 자신이 발견한 보석을 소유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예수 믿으면서도, 예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자랑하는 분은 안 계십니까?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인생은 방향을 상실한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본문 8절에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은 후 그는 말하기를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3. 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할까요?
예수님을 깨달아 아는 것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5~26에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고 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48~51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얻어지는 생명은 짧은 세상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귀중한 것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절대적입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생명입니다. 본문 9절에서는 그것을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8)하셨습니다. 이러한 죄인들의 죄를 없이하여 의인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시키시고자 이 땅에 오신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아 생명의 길로 들어가는 방법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 고상한 지식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한 것은 예수님을 깨달아 아는 것은 참 자유를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의 공통된 욕망은 자유입니다. 자유함이 없는 생명은 살았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처럼 소중한 이 자유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하셨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또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시며 이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유를 주실까요?
1)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십니다. 롬8: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셨습니다.
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십니다.
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배울 때 참된 안식 즉 염려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예수님을 만나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누리는 기쁨, 행복-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길 수 없는 탁월한,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4.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하덕규씨가 작사 작곡한 노래 <가시나무>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하덕규씨는 이 노래를 작곡할 당시, 공허한 인기를 좇아가다 지쳐 술과 마약에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누나의 인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하나님을 만나 180도 인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하덕규씨는 자기 안에 ‘수많은 나’ 가 존재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욕심과 욕망이 가득한 나, 쉼을 얻지 못해 지치고 피곤한 나, 깨어진 영혼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누구도 다가 올수 없게 하는 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상처를주어 돌아서게 하는 나, 어둠과 슬픔, 우울함이 가득한 나, 이런 내 마음 속에 당신이 들어올 곳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중에 이런 마음으로 힘들어 하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이 필요한 분입니다. 쉼이 없어, 고달프고 피곤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슬픔과 우울, 상처로 얼룩져 있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13:44 “천국은 마치 밭의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예수님은 감추인 보화입니다. 예수님을 얻은 사람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얻기 위하여, 천국을 소유하고 누리기 위하여,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사람, 그 분은 오늘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여러분 ! 예수를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바울사도는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예수님은 세상의 그 어떤 가치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인생 전부를 걸고도 바꿀 수 없는 분, 가장 소중한 분,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의 인생이 어떠한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8절에서처럼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예수님과 매일 동행하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요 최고 고상한 것이고 행복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