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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7.10.29.) 말씀/ 전도서 3:11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거금도에서 목자 수양회가 있었습니다. 김효주 선교사님과 천영란 권사님도 함께 참석하고 왔습니다. 일 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있는데 여름에는 캠퍼스 중심의 수양회, 가을에는 교회별 중심의 수양회를 합니다. 특별히 가을 수양회는 사귐과 쉼을 생각하면서 풍경 좋은 남해 거금도에 장소를 잡았습니다. 가서보니 생각보다 아름답고 아주 좋았습니다. 예배장소 교회도 남해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고, 펜션도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에 있고, 음식도 회를 비롯해서 맛있는 식단을 준비하고, 산책할 수 있는 곳도 있어서 사모님들이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모처럼 수양회라 해마다처럼 목포 농산물시장에 들려 무화과 8상자와 홍시 감을 사서 가져갔습니다. 마침 천영란 권사님 남편이 낙씨점을 하길레 낙시대도 몇 개 챙기고 낙시밥과 배도 챙겨오셔서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첫 날 낙시대회가 있었는데 서울지역이 일등을 해서상금 10만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한 마리도 잡지 못 했지만 나중에 제가 선정한 방파제에서는 대어를 낚았습니다. 수양회 장소로 가면서 파도가 거품을 내며 놀려오는 멋진 몽돌 해변에서 사진도 찍고, 펜션에서 아침에 해돋이 일출광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첫날 개회예배 말씀으로는 진주의 성베드로 목사님이 수양회 분위기에 맞게 ‘잠깐 쉬어라는 말씀’으로 말씀 은혜를 나누었고, 둘째 날 저녁 강의는 허벤허 목사님이 그리스도 안에 사귐에 대해서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 말씀 그대로 쉼을 누리고 서로 사귐을 갖는 은혜의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물로 색소폰도 불었습니다. 문마가 목사님은 풀릇을 부시고, 천영란 권사님도 제가 가져가 앨토 색소폰으로 고난의 길을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저는 다른 것도 좋았지만 바다를 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닷가로 김효주 선교사님 천영락 권사님을 안내해드리며 사진도 찍어드렸는데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계에 모두 감동 이었습니다. 잠깐의 시간 이었지만 시;훤하게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과연 누가 이런 바다를 만들 수 있으며, 파도로 춤을 추게 하고, 모래 위에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순간 천양희 시인의 ‘불멸의 명작’이란 바다 시가 생각났습니다. 그 분도 자연 속의 바다를 보며 감탄을 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바다에 대해서 말하라면 나는 대책 없이 ‘파도는 내 전율이라고 쓰고 말겠네. 누구도 받아쓸 수 없는 대하소설 같은 것 정말로 나는 저 활짝 펼친 눈부신 책에 견줄만한 걸작을 본적이 없노라고 쓰고 말겠네..’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그것은 내 전율이라고 하고, 그것은 대하소설이며 그런 걸작을 본적이 없가고 하는데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사진을 찍고 글을 하나 쓰려보니 감탄은 되지만 먹먹했습니다. 말이나 글이 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간단히 바다에 대한 예의라는 시를 썼습니다.
바다에 대한 예의 그냥 바다를 바라보고,파도소리 들으며 행복한 힐링을 하고, 무한 감사하는 마음 갖는 다면 그것이 바다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그 무슨 말로 바다를 설명하랴 그냥 바다에 바람 맞으며몸도 마음도 맡기고 시간도 잊은 채 잠시나마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되어본다면 그것이 바다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그 무슨 말로 바다를 설명하랴 그냥 떠오르는 일출의 붉은 해를 기다리며 조용히 두손 모아 기도하고 설레임과 경외감으로 아침을 경건히 맞이 해 본다면 그것이 바다에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그 무슨 말로 바다를 설명하랴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속에 살아가면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에 아름답게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최고의 존재로 만드셨고, 동물과 각종 식물 새 물고기들은 종류대로 여러 모양 여러 색깔로 신성과 능력을 부여하며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모든 것 속에는 신성과 능력이 들어 있고,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인간 속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성품까지 주셔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전도서 3:1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때를 따라 아름답게 ... 그러니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역사를 마칠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4,10,12,18.21,25 그리고 31절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잠시나마 복잡한 도심 속에서 살다가 또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 있다가 이렇게 바닷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깐 쉬도록 주님이 초청하셨으니 얼마나 은혜가 충만했겠습니가! 이렇게 하나님 창조의 세계가 아름다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냥 보고 즐길뿐 아니라 아름답게 자연을 가꾸며 살아가는데 동참해야 하고, 또 우리 자신들도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습니까?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쉬은 일이 아닙니다. 탐심 욕심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연의 질서가 무너트려지고 그 결과 파괴라는 고통을 고스란히 안게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려면 우리가 욕심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돌아오다보니 아름다운 익금 해수욕장 한쪽에 흉물스런 방파제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더 벌려는 욕심을 내다보니 자연이 파괴되고 아름다운 곳이 흉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보십시오. 전쟁 싸움이 그치질 않습니다. 청정해역에 시멘트르 붓고 군사기지를 만들어 오염을 시킵니다. 핵을 실험하며 자연을 파괴 합니다. 제주도 강정리 그렇게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해군기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낙동강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기어어 40조라는 엄청나 비용을 들려 시멘트를 부어 넣어 복구 시킬려면 더 큰 비용이 들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탐심과 욕망에 빠져버리면 자연은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것은 고의적 파괴입니다. 자연은 그대로 놔 두면 아름답습니다. 탐욕 때문에 추해지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이기적 욕망과 탐심을 부인하고 죽여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자연히 아름다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곳은 아름다운 세상이 전개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을 보면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하고 고쳐주기를 바라는 내용의 말씀이 나옵니다. 당신 문둥병은 불치의 병이고 더럽고 부정한 병 이었습니다. 고름이 질질 흐르고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갑니다. 징그럽고 더럽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어디를 함부로 가지 못합니다. 혹시나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부정하다 나는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만나 치료받을 수 있음에도 한 문둥병자는 담대하게 ‘나를 고쳐주십시오’하고 요청할 수 가 없었습니다. 먼저 더러운 자기를 원하시는지 주께 물어봐야했습니다. 다들 피하고 무서워하고 더러워하며 돌을 던지는 문둥병자를 누가 원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런 문둥병자의 환부에 손을 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까? 똑같은 인간으로 대하며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보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즉시로 나병에서 개끗함을 받았고 예수님은 먼저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리고 사회 생활에도 자유를 얻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한 사람 더러운 문둥병자로 인해서 주변이 불결하던 곳이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이 닿자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거금도에 가보니 거금도 도달하기 전에 소록도가 나옵니다. 옛날부터 유명한 곳입니다. 한국에 당시 많을 때 문둥이들 6,000명이 이 곳에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고, 사회생활이 금지 되고, 그곳에 갇혀 살아야만 했습니다. 수양회 끝나고 다들 그곳에 들려보러 이동을 했습니다. 우리는 전에 가보았기 때문에 다시 가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오스트리아에서 온 마가렛 마리안느 두 자매 이야기가 있습니다. 본래 간호원 이었는데 대학에서 둘이 만났고 무엇인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다가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가난한 한국 이야기를 듣고 문둥이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에 자원 봉사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곳을 지원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당시 그곳에는 벨기에 의로팀 1명 간호사 2명뿐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에 오기 위해서 먼저 인도로 가서 한센병 전문가호를 배우고 와서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5년간 봉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갔을 때 이분들은 월급 받지 않는 봉사자로 남아 40년 동안 문둥이들 환자들을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돌보다가 나중에 문둥이들을 간호했습니다. 제가 TV영화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마가렛, 마리안느’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가며 다큐처럼 찍은 영화입니다. 처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분이 소록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무런 쪽지 하나 남기지 않고...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40년 정든 사람들인데...마지막 법적 쳬류 기간이 끝났을 때 자신들도 이제 더이상 그곳에 그다지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었을 때 조금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말 없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럽니다. 알았으면 정말 그대로 못 보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데...자신들을 어떻게 사랑해주었는데..맨손으로 환부를 닦아주며 치료해주고, 환부에 냄새를 맡아가며 상태를 체크하고,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가족들에게조차 버림을 받은 자들 사회에서 인간 대접 받지를 못한 자신들을 인간으로 대접을 해준 분들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둥이들 생각하면 손양원 목사님 생각을 하는데...이 분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들의 생을 소록도에서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장갑을 끼지 않고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맨손으로 치료하며 문둥이들을 사람으로 대접을 한 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희생적인 삶이 노벨평화상 후보까지 올랐지만 그 분들은 극구 상을 받는 것을 거부합니다. 더 이상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 없고 오히려 자신들이 요양이 필요할 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소리 없이 떠났습니다. 후에 기자들이 찾아가서 인터뷰하며 한국에 가 보고 싶지 않느냐 하니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들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으니 보고 싶지만 마음으로 본다고 합니다. 지금 가봐야 상주고 자신들 업적 들어내고 그럴 텐데 싫다고 합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온 생애를 헌신한 아름다운 분들입니다. 영화 처음에 이런 글이 올라옵니다. 사람은 희망은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희망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희망은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희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인스부르크 양로원에서 남은 생애를 보내고 있을 때 그곳 의사가 말 합니다. “제 생각에는 평생 남을 위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아부은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간호사로 봉사한 분의 이야기를 들아 보면 이런 말도 있습니다. “간호사는 환자 앞에 있어야 간호사 이다. 공부보다 손과 발을 움직여라” 이 분들은 스스로 밤에도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환자를 봐야 필요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늘 그렇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살폈다는 것입니다. 비자 연장을 위해 고국방문하면 후원자를 만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평상시도 늘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한 사람이나 나뿐 사람이나 도와줌으로 잘 되고 변화된다면 종교를 가리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살다가 마지막 올 때처럼 가방 하나 들고 배를 탔습니다. 아무런 미련 없이 고맙다는 말 한마디 받지 않고 스스로 떠난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거금도 남쪽 바다가 참 아름다웠는데 ...소록도에 얽히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그 바다가 더욱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마가렛 마리안느 두 자매의 이애기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믿음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던 사람답게 사랑하고, 대접하고, 삶의 희망을 주는 삶을 사는 것..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삶, 세상에 들어나지 않고 무명하게 묻혀 져도 천국에서 하나님이 알아주는 삶...그런 삶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분들이 삶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서 할 수 는 없을지라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아름다운 삶을 살뿐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는데 참여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은 비록 죄로 인해서 타락하고 추해지고 있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믿고 사랑하고 소망을 갖는다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깨끗해지고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 역시 가는 곳마다 아름다움이 창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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