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만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아무리 외롭고 힘들더라도 진실된 친구 하나만 곁에 있으면 험난한 길을 견딜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에겐 그런 친구들이 여럿이나 있다. 비행기로 16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떨어져 살아도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이다.
선생님, 우리는 멀리 있어도 늘 하나입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우리는 하나입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우리는 하나입니다.
악을 미워하는 우리는 하나입니다.
뜨거운 분노가 있는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한 곳을 바라 보며 걸어 갑니다.
12월 8일 저녁 동경에 도착하니까 미리 연락이 되었던 조선족 박정선(가명) 군이 호텔로 달려왔다. 정선 군은 중조 국경근처 奧地 출신 조선족인데 중국에서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들어가기 더 힘들다는 북경대학을 나온 수재이다. 어쩌다가 남한의 인권운동가 文國韓 선생을 만나 그와 함께 탈북난민들을 보호하고 구하다가 중국공안에 찍혀서 한동안 고생하다가 일본으로 망명(?)해버린 현장 인권운동가이다. 정선 군은 남에게 자신을 인권운동가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자신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2003년 정선 군과 함께 북경, 연변, 도문, 용정, 백두산을 돌아본 일이 있다. 현지에서 탈북자들 조선족들을 만나고 도문교 전망대에서 북한땅을 바라보며 숨이 막히는 절망과 분노를 느꼈고 백두산에 올라가서 천지를 내려다 보았다. 선구자가 달리던 해란강 옆의 일송정에도 올라가 보고 연변 서시장을 돌아보기도 했다. 필자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귀한 추억을 함께 한 동지이다. 文선생이 서울역 광장에서 12월 13일 [김정일에게 희생된 3백만인 추모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선 군은 그 즉시 서울행 왕복비행기표를 끊어놓고 하던 일 모두 내팽겨치고 나와 함께 서울로 들어 가겠단다.
북한인권주간 동경행사들에 참석하고 12월 12일 저녁무렵 부천 작업장에 도착하니 文선생 부부 徐여사가 2개월에 걸쳐 준비한 30개 검은 관들이 작업장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관 위에는 태극기와 굶어죽은 사람들 아이들의 영정들이 드리워져 있다. 링컨은 전쟁중 큰 전투가 닥치면 꿈을 꼭 꾸었다던데 서여사도 무슨 큰 일이 닥치면 꿈을 꼭 꾼다. 관만드는 작업을 하는 동안 사흘간 원혼들이 밤마다 서여사를 찾아왔다 한다. 문 두들기는 요란한 소리에 문을 열어주면 다리 없는 귀신, 팔이 없는 귀신, 눈알이 빠진 귀신들이 자꾸 방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왜들 이러시오! 며칠만 기다리시면 우리가 당신들을 위한 제사를 모실텐데 잠시만 더 기다리시오! 너희들이 김정일에게 희생된 사람들만 제사를 지난다는데 우리는 김일성에게 희생된 사람들이다! 우리 제사도 지내다오! 다들 모실테니까 제발 나좀 살게 내버려 두어 주시오! 원혼들은 천천히 사라졌다.
13일 아침 30개 관들은 추럭에 실렸다. 서울역으로 가자! 3백만 원혼들을 모시고 서울역으로 가자! 제기와 향로와 果物과 꽃들을 다 챙겨서 실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30개 관들을 내려놓고 100개 의자들을 정돈하는데 난 데 없이 산 영혼 하나가 난리를 부린다. 서울역 근처에는 노숙자가 많다 한다. 산발의 한 狂人이 삿대질을 하며 우리들이 하는 일을 방해한다. 아하, 서여사 꿈에 나타났던 원혼이 사람 모습을 하고 나타났구나! 어쩔 건가! 내버려 두어야지! 그렁저렁 제삿상 준비가 끝나고 오디오 장비 테스트도 끝나고 식순에 따라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다.
지옥의 요덕수용소에서 살아나와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按舞하신 김영순 여사가 흰 한복차림으로 鎭魂舞를 추는 동안 3백만 영혼을 위로하는 최성재 선생의 추모시가 낭송된다.
3백만 영령들이시여
지상낙원에서
한 주검과 한 배불뚝이만의 지상낙원에서
강요된 단식으로 파리 떼처럼 쓰러진 영령들이시여,
물고기처럼 물만 마시고 지렁이처럼 흙만 파먹다가
영영, 엉엉, 퍽퍽, 엉엉,
파리 떼처럼 쓰러진 3백만 영령들이시여,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혹 다시 오신다면
번개와 천둥으로 오소서
남과 북 어둠의 무리들에게
번개와 천둥으로 오소서
우리의 뒤범벅 피와 땀과 눈물을
깨끗이 씻어주는 천사로 오소서
그 날에
3백만 그대 생떼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외롭게 발버둥치는 우리를 지켜 주소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그 날을 약속하며
이제 편안한 데로 가소서
길 잃은 강아지조차 배고픔을 모르는 곳으로 가소서
그 날이 올 때까지
잠시나마 편안한 데서 쉬소서
하나님, 이 3백만 순백의 영혼을 어여삐 여기소서
하나님, 이 3백만 형제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이 추모시 全文은 조갑제 닷컴 네티즌 칼럼 2007-12-13 날자에 실려있음)
진혼무도 끝나고 추모시 낭송이 끝날 무렵 文선생 아버님의 처절한 통곡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8순 노구의 오장육부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민족의 통곡이 문선생 부친을 통하여 12월 차디찬 겨울하늘과 서울역 광장을 가른다. 얼마나 오랜 세월 쌓였던 통곡인가!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이 불쌍한 영혼들아,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눈물과 침과 콧물과 의분과 절망이 함께 섞인 울부짖음이 북한땅 요덕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곳 수도 서울역 광장을 가득 채운다.
이어 탈북동지들 몇이 준비한 공개처형의 재연이 진행된다. 두만강을 건너다 잡힌 탈북난민이 즉결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기둥에 묶인 뒤 총에 맞아 맨땅에 나둥군다. 오래 전 딴 나라에 있었던 참극이 아니라 오늘도 북한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야만적 현실이다. 2005년 3월 1일과 2일 함경북도 회령과 유선에서는 탈북자들을 도운 사람들이 공개처형 당했고 그것을 몰래 찍은 필림은 일본에서 상영되었고 남한과 미국에서 열린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에서 상영되었다.
묵념이 끝나고 추모제에 참석한 분들이 한 분 한 분 걸어나와 제사상 앞에서 경례한 뒤 꽃송이를 30개 관 위에 하나씩 하나씩 놓는다. 30개 관 위에 놓인 국화꽃들이 저렇게 처절할 수가 없다.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제일 멀리서 왔다고 나더러 추모사를 제일 먼저 하란다.
우리가 북한인권을 챙기고자 함은 바로 우리와 우리들 후손의 자유와 인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하여 하는 일입니다. 지금부터 145년전 1862년 12월 1일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미국민들과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In giving freedom to the slave, we assure freedom to the free – honorable alike in what we give, and what we preserve. We shall nobly save, or meanly lose, the last best hope earth.”
우리가 북한동포 노예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고자 하는 것은 우리 자유인들의 자유를 확실히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북한동포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고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모두가 영예스러운 과업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는냐에 따라서 이 지구상 마지막 최상의 희망 대한민국을 영광되게 살릴 수도 있고, 아니면 치욕 속에서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한미동맹 만세!
김정일과 김대중과 노무현이 제일 무서워하고 미워하는 독일醫士 노르베르트 폴러첸 義士가 꽃 한 송이를 들고 관 사이로 걸어가더니 한 어린아이 영정이 드리워진 관 위에 꽃을 놓는다. 저는 북한에서 저 아이가 굶어죽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몇 십만, 몇 백만의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죽었을까! 오늘도 중국정부는 탈북난민들을 강제북송하고 있습니다. 2008년 북경 올림픽은 1936년 나치 독일의 베를린 올림픽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굶어죽고 맞아죽는 북한주민들을 구합시다! 지옥의 땅으로 강제북송 당하는 탈북난민들을 구합시다!
식순에 따라 탈북동지들과 인권운동가들이 유족증언, 추모편지,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메시지,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들을 차례로 읽어 나간다. 3백만 영혼들이 흠향(歆饗)하신 제사상의 음식들을 서울역앞 노숙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드린다. 다들 잡수시오! 3백만 영혼들을 위하여 다들 잡수시오!
오늘도 안양 중앙교회 비전홀에서는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김정일에게 희생된 3백만인 추모제]에서도 절망과 분노뿐인 죽음의 땅 요덕수용소 죄수들의 기도문은 계속 울려 퍼진다: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에도 와 주소서!
아버지, 제발!
이 땅에 오소서!
이렇게 [김정일에게 희생된 3백만인 추모제]는 끝났다. 서울에서 처음 열린 이 추모제는 끝났지만 한반도의 3마리 독사들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과의 싸움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한없이 계속될 것이다. 3백만 영령들이 진짜 편히 쉬실 수 있을 때까지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2007년 12월 26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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