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봉정사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던 터라 동창들의 모임은 가뭄 끝의 단비리라. 7시 안동행 버스를 타기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산행을 해야 한다면 약간의 과일과 캔맥주 정도는 준비해야겠지만 가볍게 떠나기로 했다.
가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차창 밖으로의 펼쳐지는 오월의 풍경은 싱그러움으로 힘이 넘쳐났다. 10시가 못되어 안동터미널에 도착해서 안동간고등어 정식으로 아침을 먹은 다음 10시 40분 봉정사행 시내버스를 탔다. 풍산들판을 지나는 한적한 시골길은 농사가 한창이다. 고추와 수박모가 가지런하게 잘 심겨져있고, 사과는 벌써 앵두만큼이나 굵어있다. 구수한 농부들의 입담을 들으며 버스는 20여분을 달려 봉정사 입구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5월 21일의 봉정사가 자리 잡은 천등산은 아카시아향이 은은하게 전해오고, 푸른 산의 굴참나무는 가는 바람에도 흰등을 드러내며 물결치듯 일렁이고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뻐꾸기의 노랫소리가 비 듣는 소리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세속과 거리를 둔 산사 주변은 잡음 없이 고요한데 다만 산새소리만 정적을 깬다. 아름다움을 넘어 무아지경의 경치이다.
석창에게 전화를 했다. 아침부터 이웃에 사는 배선생과 탁배기 한 잔 중이란다. ‘세상에~ 나 같은 놈이 또 두 눔 있구나!’
11경에 천등산엘 올랐다. 운무가 자욱하고 비교적 이른 시간에다 비 까지 내리고 있으니 등산객이 있을 리 만무하다. 두어 시간 동안 세 팀을 만났다. 574m의 天燈山 정상이다. 이리 저리 조망이 좋을법한데도 운무탓으로 보이는 것은 구름과 안개뿐이고, 조선초기의 지리학자이자 정치가인 조말생 선생이 안동지방에 소경이 많은 것은 천등산의 기가 센 탓이라고 해 ‘開目山’이라 이름을 고쳤는데, 그 뒤로는 소경이 없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정상에서 바로 개목사로 향했다.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려 우산을 펴 들었다. 후두득 비 듣는 소리와 산새소리가 묘하게 조화롭고, 넓고 푸른 상수리 잎에는 송홧가루가 빗방울을 따라 노랗게 몰려있다. 아담한 개목사와 봉정사를 거쳐 온 거리는 6km 정도, 2시간이 안 걸린 12시 40분경이다.
빗물과 땀으로 온몸이 다 젖었는데, 우리가 만나는 시간은 오후 3시이고보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이일을 어쩌나~ 옷이라도 갈아입었으면 좋으련만.... 궁리 끝에 안동으로 다시 나가기로 했다. 간단한 샤워를 하고 봉정사 입구에 도착하니 3시 10분경.
먼발치에 창원에서 올라온 윤호가 보인다. 미리 도착해 있던 한준이와 석창이를 불러서 ‘松停’이란 한정식집으로 갔다. 한준이가 고맙게도 공주의 특산품인 밤막걸리를 두말씩이나 사가지고 왔구나. 술집에 술통을 통째로 들고 들어가기 미안하여 주모에게 술주전자를 부탁해서 한 도꾸리씩 따라오길 3번, 두부돼지고기 보쌈에 송정의 동동주까지 더하니 아딸딸하다. 뒤이어 영옥이가 오고 울산에서 이숙이가 찾아왔다. 고마운 일이다. 검정고시를 보러 원주까지 간 사실과 졸업 전에 검정고시에 합격한 친구들이 5명이라는 사실도 그 때 첨 알았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뒤 송정의 산채비빔밥으로 저녁으로 먹고 석창이네 집으로 갔다.
석창이네 집엔 언제나 술과 안주가 있어서 양주와 밤막걸리를 꽤 취하도록 마셨고,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과붓집’으로 가기로 작당을 다 해놨는데 여자친구들이 맘에 걸려 단란주점에 갔다. 영옥이와 이숙이는 노랫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한준이의 팀 위력으로 뺀드아자씨가 헌신적으로 연주를 해 준 덕에 유쾌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몇 시까지 놀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석창이네 집으로 와서 더 마신 기억이 가물거리고 또 어떤이는 자신의 S라인 몸매를 자랑하겠다고 해서 걸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이튿날 7시쯤에 기상을 하여 석창이네 농장을 두루 둘러보고 라면과 밤막걸리로 아침을 먹고 베스트드라이브인 한준이의 스타렉스를 타고 석창이 어머님 물한교회에 모셔드리고, 이숙이네로 가서 눈인사 하고, 외순이네 동네인 연곡으로 갔다. 아담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연곡을 지나 모내기하는 논으로 가서 직접 모 이양기를 운전하시는 외순남편에 밤막걸리를 따라드리고 나머지를 다 드리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쉬운 부분이지만 잘생기고 인심 좋은 외순남편이기에 잘 드렸다는 생각이다.
석창이가 수도리라는 곳에 괜찮은 식당이 있다고 가잔다. 옹천을 지나고, 두산, 신전을 거쳐서 석탑을 지나 수도리(무섬마을)에 도착했다. 지난 겨울에 놓여졌던 외나무다리가 인상적이다. 수도리 민속마을을 휘 감아돌고 ‘골동반’이란 식당에서 동동주와 무섬선비정식을 시켰다. 자연식이고 화확조미료를 덜 썼는지 맛이 깊고 단백하다.
기분이 거나해서 좋았다. 왔던 길을 되짚었다. 석탑에서는 점종이에게로, 도산과 신전을 지날 때는 직원이와 영락이, 병태한테로 전화을 했는데도 이 눔들은 반응이 적거나 아예 없다. 인정머리 없는 눔들...
영락이 마을 초입에는 수령이 400년이나 넘는 김삿갓소나무가 있다. 소나무의 특징보다는 느티나무와 가까운 형태를 지녔다. 학가산이 올려다 보이는 신전은 비 온 후라서 티끌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맑고 깨끗하다. 향기롭고 아담한 마을이다.
옹천을 거쳐서 오일이가 소를 키우는 농장으로 향했다. 지난달 163마리의 한우를 사들여서 열심히 키우고 있는 중이다. 제수씨하고 단 둘이서만 조용한 별장에서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닌듯하다. 어쨌든 엄청 부러운 일이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석창이네 집으로 다시 갔다가 서로 헤어졌다.
모임 친구들끼리는 정말 유쾌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모임이었다. 물론 사는 것이 바빠서겠지 이해는 간다만 좀 더 많은 친구들이 모였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크다. 석창이는 모임주선과 밥값 치루느라 돈과 시간을 많이 썼고, 한준이는 사장답게 알밤막걸리와 단란주점비 밥값에 지출이 많았을게다. 방랑이는 맨날 얻어만 먹었고..... 창원에서, 울산에서, 공주에서 찾아준 친구들이 고맙다. 술을 원 없이 마셨던 지난 1박 2일 동안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첫댓글 철자나 문맥은 따지지 마라. 다만 그 때 상황을 그려보는데 도움될 듯 싶어서.......
잔잔하고 멋진 후기를 올렸네.일찍 내려와서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봉정사 일대의 정취를 만끽한 게 부럽구나.나도 언젠가는 그래 봐야지...늦게 합류를 해서 아쉬운 점이 많다.술만 잔뜩 마신 것 밖에 없고, 친구들이 적게 참석해서 좀 허탈했고,이대로 가다가는 동창회도 없어지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만난 친구들만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겠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시간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야.그래도 친구들이랑 여생을 보내야하지 않겠어? 짖굿게 장난쳐도 받아주고,실수를 해도 끌어 안아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그만큼 편하다.집안일에,직장일에 쌓인 스트레스도 맘껏 날려 보낼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