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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생각하며
안녕하십니까. 정호완(삼국유사문인협회)입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요즘 동북공정이나, 아리랑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국민적인 화두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단군신화를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담론이 떠오르고 있습니다(이종호 박사, 한국과학저술인협회부회장). 고인돌과 성벽, 적석총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와 유물유적을 논거로 동북공정의 부당함과 우리역사의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논의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중원의 문화영토를 꿈꾸었던 백제(百濟)의 나라 이름에 대한 정체성을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려 봅니다. 단적으로 백제는 그 뿌리로 보아 "맥제"로 해야 옳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고조선을 건설하고 우리겨레의 원류가 된 예맥족(濊貊族)의 맥족(貊族)이 세운 나라가 맥제(貊濟)라는 말입니다.
너무나 황당할 줄로 압니다. 백제라고 배웠고 그렇게 가르쳤으며 통용해 썼으니 황당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고구려가 되기 전 부여를 이루는 여러 겨레 가운데는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와 같이 짐승을 얼굴로 하는 토템 문화가 있었습니다. 맥족의 맥(貊)은 곽박의 <이아(爾雅)>나 <일본서기> ,<본초강목> 등에서 곰(熊)의 한 갈래로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곰을 조상신으로 섬기는 강력한 겨레를 맥족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턴가 맥족의 맥은 어디가고 "백(百)"으로만 읽고 배운 것입니다. 이런 걸 문자의 환영(幻影)이라고 합니다. 본질을 지나서 우선 겉만 본다는 게지요. 옛적의 나라 이름은 상당 부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투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관정에서 백제를 맥제로 해야 된다는 글을 올리니 널리 혜량하시어 재밋거리로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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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百濟)는 '맥제(貊濟)'라 해야
정 호 완(삼국유사문인협회) hwjeong@daegu.ac.kr
【1.0】 민족이 있는 곳에 그 민족의 언어가 있으며 언어의 역사는 민족과 성쇠를 함께 한다. 언어는 사회와 역
사를 투영하는 음성상징의 문화기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언어의 속내에는 상당한 문화정보가 깃들일 가능성
이 있다. 언어의 문화 투영이라는 관점에서 백제(百濟)의 표상에 대하여 알아 봄을 이 글의 보람으로 삼는다.
백제에 대하여는 그 동안 여러 가지 선행하는 논의들이 있어 왔다. 본 논의에서는 백제라는 언어 표상은 비류
와 온조로 이어지는 건국 시조의 혈통이나 백제를 터세운 북악(北岳 혹은 白岳)을 중심으로 하여 맥국(貊國)의
서울인 우수주(牛首州) 곧 춘천(春川)을 포괄하는 백제 초기의 지명을 보거나 또 백제의 백(百)의 복성모(複聲母)
로 추정되는 '백/맥〔pak/mak〕이 같은 글자이면서도 서로 성모(聲母)가 다른 점을 고려할 때, 백제는 맥족이 세
운 나라이며 백제는 '맥제'로 읽을 가능성이 있다.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 혹은 위만조선과 같이 혹은 예국(濊國)이나 맥국(貊國)에서처럼 나라를 세운 민족이나
사람의 이름으로 국명을 가름하는 경우는 왕왕이 있어 왔다. 백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라고 보며 맥족이 세운 나
라라는 기원적인 의미를 표상한것이 아닌가 한다.
동시에 한자의 차용표기로 보나 일본측 자료에서 맥(貊)을 포함한 고대 한국을 통틀어 '고마(koma)'라 함을
고려할 때, 맥은 곧 곰〔熊〕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방증하기 위한 논거로서 백제 전기의 지역은 물론
맥에서 개칭 국명으로 읽은 백(百/白)계와 웅(熊)-계열의 지명과 이와 관련한 땅이름을 살펴 보도록 한다.
먼저 백제의 어원에 대한 선행논의를 살펴 보고 이어 백제에 대한 형태를 분석하여 백-맥의 대응 가능성을 논
의한 뒤 지명을 통한 땅이름의 계열성을 검증함으로써 백제의 기원적인 의미가 맥(貊)임을 밝혀 보도록 한다.
【2.0】 지금까지 백제의 어원에 대한 논의를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1)溫祚都河南慰禮城以十臣爲輔翼國號是(중략)其臣民皆歸於慰禮後以來時百姓樂從改號百濟 其世孫本高句麗
同出扶餘故以扶 餘爲氏(삼국사기)/初以百家濟海因號百濟(<수서동이전>)
(2)양주동(1972 : 570-571)에서는 백제를 잣-재라 하여 光明城, 國原城, 夫餘城으로 보았고, 마한 54국 중에
서 伯濟가 그것이요(《삼국지위지동이전》), 慰禮城은 삿-잣의 음전에 의한 우리잣이다. 濟의 고음은, 濟가
城의 뜻임은 앞에서 든 유사의 百濟城, 匝干을 齊旱支라 한 것으로 確知할 수 있다. 백제성은 백제(성)의 의
이니 濟는 잣(재)의 차자로 성은 주기로서의 疊記이다. (중략) 十濟란 稱은 온조의 始都地 위례성 (우리재)
의 /우리가 열로 와전된 것을 후세 백제와 대칭하여 십제라 운위한 것이 다.
(3)박은용(1972:219-238)에서는 백제를 온조와 함께 əncə의 표기로 보고서 그 뜻을 廣/ 寬으로 풀이할수 있
다고 하였다. 본디의 의미는 선봉.지도자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라고 하였다.
(4)온조를 시조 개인의 왕호로 보지 말고 溫祚=百濟와 같이 대응시킬 때 溫=百(祚≒濟)이 성립함으로써 百
의 훈*on을 생각할 수 있다. 만일 殷祚가 온조의 이표기라면이 것들은 음 독이 가능하며 百의 釋과 정확히
일치한다. 중세국어의 溫(百曰溫《계림유사》)과도 일치를 보인다. 결국 백제는 우리말 수사 온(百)의 소리와
뜻을 빌어 적은 표기일 수 있다(도수희 1977:61/1992).
(5)고대국어에서 「溫-」의 종성이 외파음이므로 *ɔnə였다고 추측된다.성의 뜻으로 쓰인 제가 있는데 《行用
吏文》에 「在:城曰재」로 보아 백제는 「ɔnə-cai ⇒ ɔnə-sai」로 n이 모음 사이에서 r로 변동한 *ɔrə-sai로
추정한다./ jərə(十濟)-ərəsai(百濟)-ərəsai(慰禮城)(이 병선1988:199-200)
(6)《계림유사》에서도 百曰溫이었으며 중세어에서도 溫으로 표기되었다. 百의 溫〔un〕 역시 고대인의 수관
념과 관련하여 十과 마찬가지로 ‘많은 수’ 곧 ‘온’이란 뜻으로 쓰 인 것으로 보인다(천소영1990:40).
(7)토이기어 〔on〕은 十을 뜻한다. 十濟를 譯上不譯下하면 〔once〕가 된다. 尉禮城의 위 례는 十을 뜻하는
말로 현대어 열과 유사한 음의 표기라고 본다. 城은 잣.제와 〔ki〕가 있어 濟와 통한다. 중세국어로 〔on〕은
백을 뜻한다. 이는 백제가 〔once〕의 석차임 을 말한다. 따라서 十濟=百濟=伯濟=慰禮城의 등식을 얻고 이드
이 건국자 온조의 이표기임 을 알 수 있다(강헌규1988:39).
(8)《삼국사기》의 백제본기의 십-백의 어원도 믿을 게 못된다. 十濟․百濟․溫祚는 모두 onje(高氏öndür<몽고
문어>)로 읽어야 할 것이다. 十濟는 후기 신라의 지배층이 터키어를 썼던 만큼 백제인들이 왕을 onje라 하
므로 자기들이 쓰는말로 십을 on<turk>이라 하니 十 과 濟를 붙여 十濟(onje)라 했고백제는 지배층이 몽고어
를 샀으니 jaɣun(百<mong>)에 비 교 될 수 있는 on(百훈독)에 je(濟음독)를 부가하여 백제(onje)라고 표기
했던 것으로 추측된 다(강길운1980).
(9)일본측 사료에서 백제를 kutara라고 그 소리를 표기하여 백제의 나라 이름을 소리로 전 하고 있다. 백제의
초기 이름이 위례성임을 고려하여 위례성=위례국=십제=kutara로 보고 kutara로 읽어야 함을 논의하였으며,
이를 다시 다래재로 보고 십제를 덕재-닷재(다래재)로 보아 다래재의 변이형으로 상정한 바 있다.아울러 백제
와 부여를 같은 말이면서 서로표기만 다른 이형태로 보아 부리(夫里)에서 갈라져 나온 부여와 븻재(百濟)로 상
정하였다(권재선 1997:370).
(10)百의 음은 '백'과 '맥' 두 가지가 있다. 역사의 전통성에서 보면 맥음맥(貊音陌)이 되어 유사형태화에 의하여 백(伯)
이나 百으로 바뀌었으니 '맥'으로 불러야 옳다. 맥제는 天子시대 九黎의 蚩尤陵이 있는 곳이고 天帝시대에도 최고라
는 자부심으로 帝와 동음이자인 齊를 사용하였다. 고구리에서 高자를 사용하니 帝와 동음인 濟를 사용하므로 九黎와 朝
鮮 그리고 고구리를 계승한다는 뜻과 齊시대를 잇는다는 뜻의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百濟는 '맥제'로 불러야
전통성과 맥을 이어주는 것이다(오재성).
(11)백제 무령왕릉에서 능의 연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서수(瑞獸)가 발굴된 적이 있다. 이 서수를 맥(貊)으로 부르면 백제
를 의미하는 맥제貊濟가 됨으로 백제를 대표하는 서수가 된다. 맥제貊濟는 맥족貊族의 백제라는 뜻이다. 맥족은 예맥족
(濊貊族)에 속한 맥족이다(노중평).
이제까지의 논의에서는 백제-십제-위례-온조의 대응에서 한자의 소리빌림과 뜻빌림을 중심으로 하여 풀이하였다. 이
글에서는 백제를 세운 온조의 계통과 고조선의 민족구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와 문화담담층의 겨레를 주목하고자 한
다. 이를 바탕으로 백제를 맥제로 읽어 맥족이 세운 나라이고 이는 고구려의 대통을 이은 나라임을 국어학적으로 논의하고자 한
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틀로서 맥-웅-곰으로 이어지는 지명의 계열성을 확인하도록 한다.
【3.0】백제(百濟)는 백(百)의 복성모(複聲母)로 발음하여 〔백․맥〕으로 읽고 백제를 세운 지역의 기층 세력
이나 혈통, 백제의 한자음으로 보아 백제를 음독으로 읽어 맥제(貊濟)로 상정할 수 있다. 맥제의 맥은 자원(字
源)으로 보아 곰(熊)과 다름이 아니고, 맥제를 나라 이름으로 정할 때 정리한 형태로 백제가 된 것으로 보인
다. 이와 관련한 백제의 형태분석과 관련자료를 더듬어 보도록 한다.
(9)백제(百濟)의 형태
(가) 百濟- 百 + 濟
1) 百- 백〔pæk〕/ 맥〔mæk〕-行杖道驅人五百(대한한사전)〔mai<china>〕
〔mp〕>〔m〕/〔p〕(複聲母의 分化)
2) 貊(=貊〔陌〕)>百/白 //大丘>大邱. 加害>嘉善>加恩. 坡害平吏>坡平 (貊=貊=(대한한사 전/일본서기)
3) 濟-在: 城曰재(城/只)
4) 百濟-貊濟(=貊族의 나라)
(나) 貊과 熊
1)貊-食鐵似熊夷貘亦作貘釋名時珍曰按陸佃云皮爲坐毯臥褥能消膜外之氣(중략)郭璞云似熊而 頭小脚卑黑白駁文(중략)毛淺而光澤能舐食銅鐵及竹骨蛇虺其骨節强直中實小髓《본초강목》 //貊-豸(豕)/(意符)+百(白/(聲符)):貊音陌(*陌上桑人)//貊: 食鐵似熊夷 매기맥(*매기=貊耳: 숫돼지와 암소의 트기) 大韓古國名 나라이름맥 蠻貊오랑캐맥《대한한사전》
2)句驪一名貊耳有別種依小水爲居因名曰小水貊出好弓所謂貊弓是也(후한서)/國人有氣力習戰 鬪沃沮東濊皆屬焉又有小水貊句麗作國依大水而居西安平縣北有小水南流入海句麗別種依小 水作國因名之爲小水貊《삼국지고구려전》/驪江〔구려-맥이⊇소수맥〕
3)몽고족의 동 Buryat 방언에 qori(xori) 방언과 qudara(xudara) 방언, barguzin 방언이 있다. 고구려의 전차 단계를 이르는 扶餘도 buryat>burya>buya에서 기원한 것이고, qori는 槀離/句麗(고구려의 이칭)/qudara(백제)/kokulu(孤竹고구려)(野村正郞《世界言語槪 說 下》蒙古語544쪽)
4)熊hsiung(복성모) 似豕山居冬蟄/ 熊旗(주례)//맥.웅을 신성시하려는 토템에서 비롯되었다 (이병도 1972 한국사대관 10쪽) 북위 40도 이북의 지구 북반구에 널리 분포된 토템. homottɨi(곰)-homokkor(조상신)-homogen(영혼)<Evenk>고마敬고마虔고마欽<신증유합하 >그 고마시던바 恭敬며(敬其所尊)(내훈1:37)//곰숭배는 샤만과 더불어 고아시아족 의 특징이다. 고아시아족은 곰을 신화상의 첫 번째 인간으로 다루며 그들의 조상으로 숭 배한다.(maringer(1960)the gods of prehistoric man, p137). amur강 지역에서 첫 번째를 점하는 게 곰숭배이고 gilyaks들은 나무로 곰 우상을 만들었다.(중략) bazikkha 출토의 곰상이 핀란드와 비슷하다(okladnikov1950). 한반도의 신석기시대의 주민은 이른바 고아 시아족으로 밝혀졌다(김정배《고조선사》,1995, 25쪽 참조).
○熊女者無與爲婚故每於壇樹下呪願有孕熊乃假化而婚之孕生子號曰壇君王儉(삼국유사권제 1)
○于時得一女子於太伯山南優渤水問之云我是河伯之女名柳花與諸弟出遊時有一男子自言天帝 子解慕漱誘我於熊神山下鴨淥邊室中知之而往不返(삼국유사권1기이2)/太白山-熊心山(삼국 사기권13) (壇君王儉의 祖上-熊女/桓雄)/【 熊神山(熊心山)-太白山(=白頭山)】
5) 高麗․句驪(句馬kuma)․ 高句麗․ 貊(貊)․ 貊耳․ 濊貊(koma<jap>)/ 熊(kuma<jap>) 〔ΚⅤΜⅤ〕//こまいね(貊犬)こまちかざね(貊近眞)こま(高麗/貊):고대 조선반도의 북부 에 있던 나라 이름. 高句麗. こうらい.(時枝誠記《國語大辭典》)
6)백제(백지)-맥제(맥지)/없다 -움다(없어:움써)<방언>
【4.0】백(百).백(白)의 지명 방사
같은 형태라도 공간이나 시간이 달라짐에 따라서 문화정보가 바뀐다. 백제의 백(百)은 본디 기원적인 의미가 맥(貊․貊) 곧 곰(熊)과 같이 대동소이한 족속의 상징이었는데 뒤 로 오면서 적히는 글자에서 중국이 변방의 족속을 야만시하여 통칭하여 부르던 글자를 손 질하여 백(百․白)으로 굳혀졌다고 상정할 수 있다. 여기 흰 백(白)에다 밝은 태양숭배의 의를 부여하여 태양숭배를 바탕으로 하는 밝사상을 운위하기에 이르렀다. 백제의 백(百)과 그 궤를 함께 하면서 여기서 갈라져 나온 단어족에 값하는 지명들을 중심으로 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백제초기의 영역
○十三年八月遣使馬韓告遷都遂劃定疆場北至浿河南限熊川西窮大海東極走壤(삼국사기백 제본기온조왕13년)//二十四年秋七月王作熊川柵馬韓王遣使貴讓曰王初渡河吾割東北一百 里之地安之(삼국사기백제본기온조왕24년)
○백제전기 영역의 추정도(도수희(1980)백제지명연구,백제연구11집.46쪽 참조)-별지첨부
2)백(百)의 변이형태:
가)訓借類- 熊 能 羆//白(百)/貊
나)音借類- 곰(고마) 固麻 儉 錦(琴.今) 公(功)
3)지명의 방사
(가)①貊-(백제초기의 동쪽경계)東境-斧壤(평강)/走壤(춘천)/橫岳(於斯買:횡성)/述川(骨 斤乃 =여주)
*朔州賈耽古今郡國志云句麗之東南濊之西古貊地蓋念新羅北朔州善德王六年唐貞觀十一 年爲牛首州置軍主(一云文武王十三年唐咸亨四年置首若州)景德王改爲朔州今春州(삼국 사기35지리2)//十一月王欲襲樂浪牛頭山城至臼谷遇大雪乃還(삼국사기권제22백제본기 제1)
*북방식墓制(한강이북에분포)/積石塚(천전리3기.중도2기.화천군간동리1기)/鐵鏃의 출 토(평남대평리와 같음)
*三岳山城(일설 貊國山城)-덕두원남방에 위치. 산성부근에서 마제석검/맥국멸망과 관 련한 전설-의암댐.말골.방울장수.시궁치//우두산성의 陵山//왕뒤(王臺-맥국의 왕궁 터) 궐터.바리미(춘성군신북면鉢山里)-장시봉.맷뚝(맥뚝貊城). <춘천풍토기>에는 바 리산을 貊國山 혹은 王臺山 속칭 發山. 맥국왕의 묘(삼한골)<走壤>
*泰岐山-평창지방: 맥국의 왕 태기가 예국의 왕에게 멸망. 횡성지방:지한의 마지막 임금 태기가 신라에게 쫒겨 마지막 전투를 한곳/성터.玉散臺.兵之坊.屯內.甲川.御踏 山<橫岳>
②백(白.百):
*白頭山(-熊神山/太白山<삼국유사>):강화.나주.김해.의령.청원.옥천.원주 白山(白岳/太 白山/栢屛山=白山):영광.나주.신안.강진.이리.정읍.남안.부안.순창.창녕.함안.합천.밀양. 의령.영일.고령.유성.보령.괴산.청원.삼척白石山(白頭山)(김포)/白岳(北岳*백악신터)(서 울.대구. 괴산.상주)/太白山:咸白山. 白峙. 白積山(화천), 栢山洞(태백) 白岩(欣岩里 흰 바위(여주):함양.울주.거제.고성.울진.청송.군위.삼척.양양.홍천) 白牙谷(횡성공근).
③웅(熊/羆/能) :
※熊川: 진해웅천(명동/제덕/선사시대의 유물 및 패총 熊山神堂<신증동국여지승람 >).음성.양산.천원.논산.보령.서산.의령.경주.청송.안성(坪宮里(現진위)등궁터(이병도 )공주(<熊州<熊津<熊川석장리 구석기시대의 유적 熊神壇)//熊峙:화성. 보성.임 실/진안.남원.태안.웅촌(熊神祠울주) 熊島-의창.구산.진동.고현.진해.거제.태안.서산. 熊浦:익산.진해.통영.울릉.당진.보령 熊縣-포천.울주.문경.금릉.달성.괴산.보은
※能-:能城洞(대구).能店/能治(김천어모-功城(<熊閃))能-능할능.곰능.자라내.별이름태 (<대한한사전>)
(나)곰(고마)-류(kvm(v)):
①곰-: 곰개(熊浦(익산)). 공개나루(서천한산).당진/곰고개(공고개)의정부신곡/곰골 (熊洞)사천두량-관율. (熊谷)보은내북-이원/곰굴(公根)(횡성)/곰나루(<고마 熊 津<용가3.15>)공주/곰내(논산양촌-모촌 곰티에서 발원)/곰내재(熊川縣양산.청송.와 여)/곰네미고개(포천)/곰다리(웅포교:김제만경)곰당굴(熊堂)(서천)/곰둔(웅둔-횡성 안흥)/곰말(웅촌-단양의춘)곰바우(공암-군위거매/熊巖-경주현곡.제원금성/곰바위- 김포월곶/곰방우(구무방우)-안동북후)/곰발(삼척노곡)/곰밧골(熊田골-명주옥계)
곰산(熊山-창녕.영동.진해)/곰살미(상주공성)/곰섬(熊島-의창구산.진해명동.태안.서 산)/곰소(熊潭-파주법원/곰쏘熊淵-밀양단장)/곰실(熊谷-여주북내.연천백학.남양주 (웅실).화순.신안.광산삼도.함양.진양.거창.고성.김해.영풍.상주공성.천원문의/공골 熊洞-장수반암/古音里-청도안인)/곰실재(熊谷峙-남원)/곰울(熊谷.웅골-여주점봉)
/곰재(熊峙-남원주생.순창구림.선산산동(熊峴). 금릉개령.달성구지.논산양촌.대전유 성.보령미산)/곰재곡(선산산동.옹진적덕.북제주애월)/곰절(熊神寺>성주사-창원천 선.단양(熊寺洞)/곰짓내(孔之川-춘천)/곰지기(熊只-영양입암.천원풍세)(熊村.熊里)
/곰지골(熊谷-중원)/ 곰쟁이(보은내북.보은산의)
②금(錦)/공(公)-류:
錦江:本熊川河東北五里源出長水水分峙北流經鎭安龍潭茂州錦山永同沃川懷德還 州之北經定山扶餘爲白馬江經石城恩津林川爲鎭浦立于海(대동지지)(熊川>錦江)/ 공(孔-孔之川(곰짓내.공골(孔洞)-춘천)).公-公州.公山(熊川>熊州>公州(곰골.곰나 루).公山(能城-대구) 公根(곰굴(횡성))功-功城(熊峙곰티)
③고ㅁⅴ:
古毛里(곰굴.고무골: 화성.포천소흘/고무실.곰실.고모: 김해진례)/고모재(熊城.熊 峴-문경농암.궁기/고모령(顧母嶺.古毛嶺-대구시지) )/고목(熊項.곰의 목-제원 덕 산)/ 고무골(熊洞-무주부남)/고무다리(熊橋-안성공도)/고무리(熊洞-예산대술.장 복실북쪽)/고미내(熊川.곰내-개풍군봉동)/古隱里(熊谷.곰실춘천신동)/고목동(古木 洞-곰의골(홍천내면))
4) 熊.貊.곰-계열의 땅이름 지도
【5.0】마무리 하면, 백제는 맥제로 읽고 써야 할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언어, 특히 지명이나 나라 이름이란 문화와 역사를 반영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말하자면 언어는 문화기호이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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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1998) “지명산고”, 지명학1, 한국지명학회.
김영수편(1992) 고대동북아시아의 민족과 문화.여강출판사.
김택균(1995) “춘천맥국설에 관한 연구”, 고조선사, 백산학회
도수희(1977) 백제어연구, 아세아문화사.
도수희(1992)“백제의 왕명․인명에 관한 연구”(1),백제논총제3집,백제문화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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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소영(1990) 고대국어의 어휘연구,고대민족문화연구소.
한글학회(1980) 한국지명총람, 한글학회.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번역본)
첫댓글 고구려-고려 논의가 떠오르네요.
한국고대사의 논쟁 주제가 한두개가 아니거늘 이제는 백제를 맥제로 읽어야 한다고 하니...
역사문과 함께 사유의 길을. 관심 고맙습니다.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자료가 아직인 상황. 백제라는 상징화두를 통하여 겨레의 정체성과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9 년 전 제가 중국 장춘의 길림대학에 있을 때 동북공정에 참여한 학자들이 만나 주지도 않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사연 줄입니다. 늘 행복하소서. 정호완 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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