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남자>
영화 나쁜남자를 접하게 된 건 작년 내가 스무 살 되던 해였다.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다 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그 포스트를 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한 여자가 온 몸을 노출한 채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보는 모습 이였다. 그렇지만 정작 거울에 나오는 모습은 주인공인 조재현이 거울을 통해 날카롭게 경멸하는 모습 이였다. 나는 이 포스트를 보고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무척 궁금증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제목은 왜 나쁜남자이며 포스트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친구랑 주말에 영화관으로 저절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때 영화를 보고 나서 난 느낌은 평소에 영화를 보고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졌고 허망한 현실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을 영화제목으로 "나쁜남자" 정말 한마디로 잘 표현된 단어인 거 같았다.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면서 한사람의 계략으로 인해 평범하게 지내온 한 여자의 일생을 순식간에 바꿔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엄청난 모욕감이 복받쳐 올랐다. 지금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저런 일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런 막연한 생각도 들게 되었고 그렇게 되는 현실세계가 원망스럽고 안타까웠다. 이 당시 스무 살에 느꼈던 감정들을 되살려서 다시 DVD로 보면서 이 작품에 대해 세밀한 분석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단지 영화 내용에만 치우쳐 보았지만 이번에는 작품 속에 담겨져 있는 감독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선화는 남자친구와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고 지내는 남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평범한 여대생 이였다. 평범하지만 얼굴은 예뻤다. 그런 반면 한기는 사창가 깡패 두목인 한기는 서원의 예쁜 모습에 매료되었지만 선화의 경멸에 강제적인 키스를 퍼붓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구타이며 선화에게 뺨을 맞는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는 누군가가 저런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하고.. 그런 심한 모욕을 당한 한기는 복수심과 소유욕에 불타서 선화를 창녀로 만들 계략을 실행한다. 계략에 말려들어 창녀가 된 선화의 방 거울은 밀실의 유리와 연결되어, 한기는 밀실을 통해서 매일 밤 서서히 창녀로 변해 가는 선화를 지켜본다. 치욕과 공포에 찌들어 가는 선화를 지켜보면서 한기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자괴감을 느낀다.
선화는 그녀를 좋아하는 한기의 부하 명수로 인해 한기의 계략에 대해 듣게 되고, 명수를 이용해서 창녀촌을 탈출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그녀는 집 앞에서 한기에게 잡혀 창녀촌으로 끌려온다. 창녀촌의 일상에 젖은 선화가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한기를 밀어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을 즈음 한기는 숙적인 달수파의 공격을 받는다.
한기 부하인 정태는 이에 대한 복수로 달수를 죽이지만 한기가 정태를 대신해 사형 선고를 받는다. 뜻밖에도 선화는 한기에게 죽어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고, 이것을 본 정태가 자수를 하는 바람에 한기는 감옥에서 풀려난다.
한기는 선화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보낸다. 그러나 둘은 바닷가에서 재회한다. 한기는 트럭을 타고 다니며 자기의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판다. 두 사람이 탄 빨간 트럭이 바닷가 마을을 벗어나 또 다른 운명의 공간을 찾는다.
이런 줄거리 속에서 또다시 느껴진 것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니깐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일반인이 선화가 사창여로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인 거 같다. 무섭고 끔찍함을 소재로 다룬 영화이다. 모든 여성들이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여성에 대해 치욕감과 여자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사창에서 일하게 되는 선화의 모습을 보고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창 여로 변해 가는 선화는 서서히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예전의 본연의 모습을 버리고 한기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난 그런 선화가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자기를 사창가의 여자로 변하게 하고 마지막까지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기의 모습에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죽도록 미워하고 자기를 이 지경까지 만들어 놓은 한기를 원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사랑했기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한기를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이런 생각도 머릿속 한 구석을 스치고 지나간다. 한기는 일상 생활이 사창가에서 자라왔으며 생활해 왔기 때문에 배운 것이라곤 사창가의 생활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따져 봤을 때 선화의 생활은 죽기 보다 싫었을 것이다. 나라면..
그리고 빨간 원피스 입은 여자가 자살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그때 선화는 그 해변 가에서 그 빨간 원피스 입은 여자가 어떤 남자와 찍은 사진을 주웠다. 사진은 찢어져 있었고 얼굴부분만은 찾을 수 없었다. 선화와 한기가 그 바다에 있었던 시점은 선화가 한기 동생 중에 한 명을 꼬드겨서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도망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만나주겠다고...그러고 나서 도망가다가 자기 집 현관 바로 앞에서 한기에게 붙들려왔다가 그 바다로 한기가 데려간다. 거기서 선화는 한 빨간 원피스 입은 여자가 자살하는걸 보고...그리고 그 여자가 남자와 찍은 찢어진 사진을 줍게 된다. 결국 처음엔 모르지만..나중에 알고 보면 그 자살하는 여자는 선화이다. 이건 내가 보기엔 선화가 그때 자기 자신을 죽인 거 같다. 마음속으로 자신을 죽인 것이다. 탈출을 시도했지만...실패한 선화는 이제 과거의 대학생인 자신을 죽인 거다. 이미 현실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며 막연한 꿈에 대해서 포기해 버린 것일 수도 모른다. 영화를 유심히 보면 실제로 그 이후로 선화는 창녀촌에서 안 하던 호객행위도 하면서 창녀 생활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로부터 돈독 올랐냐는 이야기도 듣고, 남의 손님 가로챘다며 머리채가 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그 빨간 원피스의 여자가 죽은 건 사실 선화의 마음속으로 자신을 죽인 거라고 나는 해석하고 싶다. 그리고 찢어진 사진...선화는 그 찢어진 사진을 맞춰놓고 혼자 멍하니 들여 다 본다. 그러나 얼굴 부분이 없다. 나중에 알고 보면 그게 바로 자신이다. 나는 이 부분을 선화가 한기를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한기에 대한 규정할 수 없는 선화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바로 그 함께 찍은 찢어진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한기는 배에 칼이 찔렸고 밤새도록 피를 흘렸는데도 태연하게 살아서 옷을 갈아입는 여유를 보이며 바다로 향한다. 그리곤 선화를 바다에서 만나 바로 그 찢어져 있던 사진을 찍습니다...그동안 모르고 있던 선화와 한기의 마음이 이루어 진 것이다.
마지막에 선화가 몸을 팔며 생활하는 것...그건 내가 보기엔...한기의 자책감 일수도 있고 그런 것 같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선화의 인생까지 망쳐버린 자신이 선화와 둘이 함께 정상적인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건 이치에 맞지 않고 과분한 일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는 자기와 함께 사는 여자의 몸이나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없는 놈이라고 자학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간에 나오는 한기의 딱 한마디 대사 중에 "깡패 새끼가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그래서 한기는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트럭으로, 그들은 배추 장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 트럭으로 그들은 떡볶이나 어묵을 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하다. 여자는 여전히 몸을 팔고, 남자는 창녀촌 깡패나 하는 짓을 계속한다. 그래서 이것은 원을 그리며 닫히는 순환적 모습으로 보인다. 여자와 남자가 다시 출구 없는 일상 속으로 다시 갇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다.
김기덕 감독은 한기에 대해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현실세계와 타협하지 못했던 것은 어렸을 적부터 겪어온 상처라고 생각했다. 상처는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 즉, 그 상처는 자신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상처가 낫는다면 그건, 상처가 거꾸로 가면서 앞으로도 가기 때문이다. 상처가 복원된다는 것 그건, 상처가 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고 상처가 치유된다는 것 그건, 상처가 아직 오지 않은 새살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되돌아가면서 동시에 나아가는 것이다.
선화와 한기는 예전 상태로 되돌아갔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상태로 나아갔다. 그들은 사회 몸이면서도 몸이 아닌 상처들이다. 그들이 새살. 치유되는 상처는 커다란 고통은 없지만 조그마한 상처가 더 큰 상처를 낳는 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거대한 고통은 없지만 최후의 깊이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상처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의 저항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흐름들 간의 비 대칭성으로 인해 상처는 붕괴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나 치유되는 상처는, 자기를 바꾸면서 동시에 사회와 몸을 바꿀 것이다.
이런 김기덕 작품세계는 어려움을 주며 새로운 현실세계에 대해서 다시 눈을 돌려 볼 기회를 제시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더 흥미를 주며 재미를 준다. 제목과 결말에 나는 가장 어울린다는 찬사를 더해 주고 싶다. 솔직히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왜 나쁜 남자였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나쁜 남자였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살펴본다면...그러나 내가 가장 안타까워했던 점은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나쁜 남자가 착한 남자이기 바랬던 마음인지도 모른다. 끝까지 비극적으로 남은 결말을 보고 나쁜 남자에서부터 결말은 한기와 선화는 그 사창가 생활에서 벗어나 현실세계와 타협하며 트럭을 몰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한기와 선화는 본연의 모습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똑같은 일상 생활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을까..세상은 조금만 더 살아보고 둘러보면 좋은 일이 얼마나 많을텐데..
그리고 나쁜남자를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현실세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어두운 조명아래 주인공들이 펼치는 광경을 통해 한사람의 비극적 인생을 볼 수 있었다. 색다르고 흥미로운 영화였던 거 같다. 다시 봐도 새로움을 일깨워 주고 머릿속에 그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