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년 지바현 초시(子)에 둥지를 튼 ‘히게타쇼유’는 올해로 창업 392년을 맞았다. 독자적인 국균과 효모, 그리고 독특한 양조법으로 간장 만들기 외길을 걸어온 히게타쇼유 본사를 찾았다. 잘 정돈된 사옥 구석구석에서 400년 역사가 묻어난다. 빼곡하게 적힌 4장의 답변 용지와 역사만큼이나 오랜 서류를 가득 들고 나타난 하마구치 도시유키(濱口 敏行) 사장.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1970년 미국 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수재로 업계에선 지적인 간장맨으로 통한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1년, 그는 일본 최대 간장 제조업체 키코만에 입사해 세계전략업무를 담당했다. 오늘날 키코만이 세계적인 간장업체로 발돋움하도록 한 주역이 바로 그라는 평이다. 8년 후 히게타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02년 7월 사장에 취임해 히게타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는 “맑고 투명한 와인 빛 색상에 진하면서도 잡스럽지 않은 산뜻한 풍미가 히게타 간장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간장 양조에는 물, 미생물의 성장을 좌우하는 기후, 지리적 특성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처럼 인공적인 시설과 설비로 환경을 조절할 수 없던 예전에는 자연환경이 더더욱 중요하게 작용했다.
“400년 전 간장양조를 시작할 당시에는 지리적 특성을 몰랐는데, 이 지역은 기후가 온난하고 습기가 많아 미생물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지역이어서 지금은 간장 제조의 최적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공장입지 선정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지바현의 호농이었던 창업자 다나카 겐반(田中玄番)의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 간장 양조에 좋은 물이 나는 곳을 안내해 준 것. 그래서 따라간 곳이 바로 현재 공장이 있는 지바현 초시라고 한다. 이 전설은 회사 이름 ‘히게타’ 탄생과도 관련이 깊다.
“‘히게’는 ‘수염’이라는 뜻입니다. 꿈속에 나타난 신선이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창업자 다나카의 ‘타’에 신선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히게’를 앞에 붙여 ‘히게타’가 된 겁니다.”
히게타 초시공장 정문 오른편에 간장 양조의 신을 모시는 ‘다카베(高倍)신사’가 있다. 제13대 사장이 ‘일본서기’에 근거해 세운 것이다. 히게타의 간부사원들은 매달 5일 이 신사를 참배하고 양질의 제품과 공장의 안전을 기원한다고 한다.
“제품 하나하나를 신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만든다면 더욱 좋은 제품을 만들 것이고 그 마음이 소비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라 믿어요.”


일본의 간장 맛은 지역마다 다르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의 경우 맛이 옅고, 오사카와 교토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맛은 진한데, 이 진한 맛은 ‘히게타’가 만든 것이다. 창업 당시 에도(지금의 도쿄)의 간장은 90%가 관서지방에서 제조한 것이었다. 에도에는 전국 각지에서 무사들과 상인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다양한 맛이 요구됐다.
“요구에 부응하려면 기본 맛이 변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간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1697년, 대두만을 사용했던 제법에 밀을 섞는 등 대대적으로 양조법을 개량해 풍미가 뛰어난 진한 맛의 간장을 완성한 것이지요.”
이 맛이 오늘날 일본 간장의 원형이 되었고, 일본의 독자적인 간장으로 발전했다. 당시 에도에서 소비되는 간장의 90%가 관서지방에서 가져온 것이었는데, 이 개량된 양조법으로 만든 간장이 시판되면서 3년 후인 1700년경에는 관동지방에서 소비되는 간장의 90%가 히게타 간장으로 채워졌다. 지금도 도쿄의 대부분 메밀국숫집에서는 히게타의 간장을 사용한다.
그 후에도 미세한 개량을 거듭하며 400년간 최고의 간장으로 군림하며 간장 역사를 써 온 히게타. 이렇게 4세기 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는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품질개량을 해 왔기 때문이며, 둘째는 상도(商道)를 준수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있는 1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은 확인된 것만 1만5207개 사에 달한다. 개인상점과 소기업을 포함하면 10만 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 히게타는 네 번째로 오래된 기업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책임감도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이 회사의 경영비전 제1항은 ‘400년 전통을 계승 발전하고 자연의 혜택과 일본 식문화를 소중히 한다’다. 행동 규범에는 ‘인권존중과 공평한 처우로 안전하고 일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라는 항목이 있다. 그는 “장인의 인권과 처우를 지키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자 운명을 결정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한다.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수차례의 전환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히게타는 시류의 변화에 타협하지 않고 고유의 맛을 지켜 냈다. 매출액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알짜배기 기업이라 상장 계획이 없는지 물었다.
“히게타의 가치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큽니다. 상장하면 이 숨은 가치에 투자자가 몰릴 텐데 그렇게 되면 이 잠재가치를 지킬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지요. 상장하면 이익극대화를 추구하게 될 것이고 장인존중과 400년 전통의 맛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어요.”
히게타에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중 그 첫 번째가 400년간 전해져 오는 히게타 특유의 ‘효모’와 ‘양조기술’. 그 다음은 히게타의 오랜 기술을 전승하는 장인들이다. 히게타의 300명 사원 중 250명이 장인이다. 숙련된 장인들의 주요 업무는 미생물과 온도 등을 조절하는 것. 기후변화와 습도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장인교육은 ‘도제제도’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2대, 3대에 걸쳐 일하는 장인이 많고, 창업지인 초시 지역 출신이 대부분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옆집 아저씨가 옆집 청년에게 감각과 기술을 전수해 온 식이다. 이렇게 형성된 장인정신으로 이룩한 기술은 새로운 분야에서 개화하기 시작했다.
2005년 12월 22일, 일본 언론들은 ‘일본 연구팀이 국균(麴菌)의 게놈해석에 성공해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했다’며 대서특필했다. 히게타를 중심으로 한 일본연구팀의 4년간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다. 히게타는 지금 새로운 단계를 향해 비상하고 있다. 간장 생산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브레비스균(Brevibacillus choshinensis)을 활용해 양질의 단백질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했으며, 브레비스균 발현 시스템을 활용해 EGF(상피세포성장인자)를 제조하고, 이를 동물용약 원액 및 생화학시약으로서 공급하고 있다.
“전통기업의 과제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는 거예요. 앞으로도 식문화와 바이오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인간의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실현하는 데 공헌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