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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과 가까운 고즈넉한 산사, 돈암동 흥천사 '
▲ 흥천사 전경
흥겨운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4월 초파일)을 며칠 앞둔 어느 평화로운 봄날, 돈암동 |
♠ 흥천사 입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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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입구(돈암2동 주민센터)에 이르니 장대하게 솟은 느티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내밀며 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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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를 지나면 잘 닦여진 길이 나타난다. 도로 차단봉이 설치된 지점 쯤에 흥천사의 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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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복판인 돈암동 산자락에 둥지를 튼 흥천사는 '삼각산(북한산) 흥천사'를 칭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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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이 쓴 흥천사 현판 |
▲ 흥천사 극락보전 |
4. 신흥사에서 다시 태어난 흥천사, 다시 정릉과 이웃이 되다. |
♠ 흥천사 대방과 명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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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 핵심부를 가리며 동북쪽을 바라보고 앉은 대방은 경내에서 가장 큰
집으로 특이하게 '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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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방 정면에 걸린 흥천사 현판 |
▲ 대방 우측의 옥정루(玉井樓) 현판 |
▲ 대방 좌측의 서선실(西禪室) 현판 |
▲ 대방의 다른 이름, 만세루 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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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각(鐘閣) |
▲ 오세창 선생이 남긴 종각 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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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 서쪽에는 명부전이 자리해 있다. 동남쪽을 향하고 있는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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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중심으로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석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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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 좌우에 자리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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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상과 금강역사상, 사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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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부전 시왕상과 시왕도(서울 지방유형문화재 42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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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왕을 머금은 시왕상은
패널에 오려 붙인 형식으로 1/3왕과 5/7/9왕, 2/4왕, 6/8/10왕이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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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가운데 칸 문
위쪽에는 시커먼 피부의 길쭉한 나무 상자가 걸려있으니 그가 비로자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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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 서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는 바위로 인도하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의 끝에
구멍 |
♠ 흥천사의 보물 창고,
극락보전(極樂寶殿) |
대방 뒷쪽에는 흥천사의 법당인 극락보전(극락전)이 대방의 뒷꽁무니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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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英親王, 영왕(英王) 1897~1970>은 고종의 7번 째 아들로 1901년에 흥천사를 방문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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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 내부는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불단에는 목조여래좌상(아미타여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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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 보물 중 가장
백미(白眉)는 복잡하게 생긴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이 아닐까 싶다. 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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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시왕도는 1867년에 의운자우(義雲慈雨)가 그렸다. 푸른 두광(頭光)과 연두색 신광(身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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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왕도는 덥수룩한 검은 수염을 휘날리는 제왕 모습의 염라대왕(현왕)이 그의 부하들을 거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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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도는 호법신(護法神)들의 무리를 정신없이 담은 법당 지킴이용 탱화이다. 그림 상단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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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9품도는 화면을 9개로 나누어 극락세계의 구품(九品)을 그린 것으로 고양시 흥국사(興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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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도는 신중도의 축소형 탱화로 위태천과 천룡팔부(天龍八部)가 담겨져 있다. 1898년 용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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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생소한 도량신도는 삼보(三寶)의 도량을 지키는 도량신을 머금은 그림이다. 도량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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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천사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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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 우측에 자리한
용화전은 막연히 56.7억년 후에나 온다는 미륵불(미륵보살)의 거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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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등은 큰 연등으로 저녁이 되면 스스로를 불사르며 몸을 환하게 밝힌다. 그것이
연등과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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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 서쪽에는 갈색 피부를 지닌 관음전이 있다. 대방 정도의 큰 집으로 일반적인 사찰 기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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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루 신중도는 관음전의 신세를 지켜 그곳을 지키고 있는데,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 등 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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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천도 역시 대방에서
넘어온 것으로 제석천이 중심이 된 신중도의 간단 버전이다. 제석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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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뒷쪽 언덕에는 독성각과 북극전이 있다. 이들은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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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막을 씌운 북극전(北極殿) |
▲ 북극전의 주인, 칠성탱 |
북극전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칠성(七星)의 보금자리로 귀에 많이 익은 칠성각(七星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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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성탱 옆에 자리한 산신탱과 산신상 |
▲ 독성각(獨聖閣) |
북극전과 나란히 자리한 독성각도 앞에 비닐막을 씌워 기도 공간을 늘렸다. 1칸짜리 맞배지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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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채가 선명한 독성상과 독성탱 |
▲ 흥천사에서 적조사로 올라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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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1년 2월 18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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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황화방의 위치가 혼동되요.... 정동 미국대사관과 러시아~ 라는 글에서 // 정동에는 미국대사관이 아니라 영국대사관이고,,, 정동에 정릉이 조성되었다면 그 정릉은 요즘 동네 이름 정릉과 다른 것인가요??? 흥천사위치가 늘 돈암동 근처였다면 중간에 정릉(글에서 정동근처로 보면) 이사를 갔다는 것인가 봅니다...// 아무튼 긴 정성 들인 글 감사드립니다... 제가 며칠전 보낸 쪽지보냈습니다. 아직 안열어보신듯.
정동에 미국대사관이 있었지요,. 지금은 한옥으로 지어진 대사관저 등 일부만 있고, 대사관은 광화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정동에 정릉이 조성되었고 태종 때 도성 밖 현재 성북구 정릉동으로 추방되었는데, 그 정릉으로 인해 정릉동이란 이름이 생겼습니다. 그 정릉 때문에 정릉동이 되었다는 뜻, 흥천사는 정동에 있다가 중종 때 파괴되어 나중에 돈암동 지역에서 다시 세워졌습니다. 다음 쪽지는 거의 스팸쪽지 투성이고 주변 사람들도 다음쪽지를 잘 이용을 안해서 잘 안보는 편인데, 오늘 확인을 했습니다.
@도봉산고양이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이제 잘 이해 되었습니다.
@에스프리 이렇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 글을 이렇게 꾸준히 쓰신다면 자료 준비도 그렇고 시간과 노력과 경비가 꽤 들텐데.... 늘 이렇게 풍성한 글을 무료로 읽으니 정말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저의 외람된 의견으로는 산사 가실때마다 영상을 찍어 유튜브로 만들면 수입도 생기도 풍경도 생생하고 그럴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글이 더 좋은 점도 많지만,,,절 풍경은 정말 영상도 멋질 것 같습니다.
영상 분야는 경험이 거의 없고 소질이 맞지 않네요. 글고 유튜브도 완전 포화상태지요. 영상쪽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