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서울 사는 아들 내외 자랑, 공주같은 예쁜 손녀 자랑하면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있었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일찍 서울로 유학보내고, 두 부부는 고생 고생하며 학비를 조달하여 대학을 졸업시키고...
지금은 재벌회사 과장까지 승진하여 강남 아파트에서 명문대학 나온 우아한 아내와 잘 살고 있는 아들은, 정말이지 이 부부에겐 크나큰 자랑이었답니다...
아들은 여간 효자가 아니어서 추석이나 설에는 거의 빠지지않고 제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와서 명절을 보내고 올라가곤 했었답니다..
우아한 며느리와 공주같은 손녀딸을 볼 때마다, 노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늘 으쓱대는 기분을 느끼곤 하였지요.. 아들 내외는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아버님 어머님, 시골에서 이렇게 고생하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서울로 가시지요.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했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아니다.. 우리같은 늙은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서울이 다 무에야.. 그냥 이렇게 살다가 고향땅에 묻힐란다" 하고 사양을 했더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노부부는 언젠가는 서울의 강남에 있는 아파트에서 아들 덕택에 호사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믓해 했더랍니다...
그러다가 노 부부중 할멈이 먼저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상을 치르는 내내 아들 내외가 어찌나 애통하게 엉엉우는지.. 동네 사람들도 모두 가슴이 찡하였답니다...
초상을 치르고 나자 아들 내외는 또다시 간곡하게 청하였답니다.. "아버님, 이제 어머님도 가시였으니 어쩌시렵니까? 고향집 정리하시고 서울로 올라가시어 저희와 함께 사시도록 하시지요...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할멈도 떠나간 이제, 그도 그럴것이다 싶어 노인은 몇날을 생각타가 결심을 하였답니다...
논밭과 야산등...모든 가산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갔답니다.. 가산을 정리한 돈은 아들 내외에게 주어 32평아파트에서 42평 아파트로 옮기고, 노인의 서울생활은 처음엔 그런대로 평안하였답니다...
그즈음 아들은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할 때도 되었고, 회사일이 워낙 바쁘기도 하였으므로 매일을 새벽에 출근하였다가, 밤 12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일과가 몇 달이고 계속 되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모처럼 일찍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보니 집안이 썰렁하니 비어 있더래요...다들 어디 갔나? 하던 차에 식탁위에 있는 아내의 메모를 보았더래요...
메모에...
- 여보 우린 모처럼 외식하러 나가요...식사 안하고 퇴근하였다면, 전기밥솥에 밥있고, 냉장고 뒤져 반찬 찾아 드세요... 좀 늦을지도 몰라요....-
가족을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 속을 뒤져 맥주를 찾아서 마시고 있자니 현관쪽이 시끌해지며 나갔던 식구들이 돌아오는 기척을 느꼈습니다...
아, 그런데 들어오는걸보니 아내와딸, 둘만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왜 둘만이지? -둘만이라니? 요기 밍키도 있잖아?
아내는 강아지를 남편의 눈앞에 들어보이며 활짝 웃었습니다.. -아니, 아버지는? -오잉? 아버님 집에 안계셔? 어디 노인정이라도 가셔서 놀고 계신가? -아버지께서는 매일 이렇게 늦게 들어오시나? 남편이 약간 걱정스런 얼굴로 묻자... -응. 으응.... 아내는 더듬거렸습니다...
사실 아내는 평소에 노인이 몇시에 나가서 몇시에 들어오는지 도통 생각이 안납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노인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노인이 들어오실 때까지 자지않고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서재의 책상앞에 앉았습니다..아내는 벌써 잠들었나 봅니다..
그때 아들은 책상 한켠에 정성들여 접혀진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볼펜으로 꾸~욱 눌러쓴 글씨... 무슨 한이라도 맺힌듯이 종이가 찢어지도록 꾹꾹 눌러쓴 글씨... 아버지의 필적이 틀림없었습니다..
.............- 잘있거라 3번아, 6번은 간다.........-
* 묵화(墨畵) *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시인 1921년 황해도 은율 출생(사망 : 1984년) 토요시마상업학교 1954년 '현대예술'에 '돌각담' 발표로 데뷔 1971년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등
조선일보 연재.. 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편 [7]
귀향 / 곽성삼
이 상 원
미대 문턱은 고사하고
정규 미술 교육을 한번도 받지 않은 화가 이상원.
그런 그가 원하는 것은 남는 그림, 기억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그림을 모아 갤러리를 만들었다.
갤러리를 위해 이상원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은 모두 1000여 점.
그림은 팔지 않는다.
개인이 소장하는 그림은 죽은 그림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물소리와 새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양구.
이상원은 컨테이너 박스를 작업실로 만들었다.
작업하기에는 좁다고 느껴지는 그 곳은 이상원과 닮아 있다.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소장하지 않는
그의 생각이 작업실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간판장이의 소망 - 오랫동안 남는 그림을 그리자
이상원의 그림 인생은
극장의 간판장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후 미군들의 초상화 그리며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각 국의 국가원수들을 그릴 정도로
초상화계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그의 생각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것.
"남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래서 순수미술을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한 이유이지만
영화의 상영이 끝나면 지워지는 간판을 그렸던
그에게는 너무나 간절한 이유가 된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영정을 그릴 때 인연이 된
노산 선생의 유언이 계기가 되어
그는 불혹의 나이에 순수미술을 하는 화가가 되었다.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트랙터가 지나가고 남은 바퀴자국,
버려진 그물과 마대, 그리고 노인까지.
그는 버려진 것을 그렸다.
이상원 특유의 극사실주의로 말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차가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어렵게 소재를 찾던 중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인물이다.
생생한 표정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
그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기 위해 쫓아다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기도 했다.
최근 그가 그리는 그림들은 노인의 표정이다.
얼굴의 주름과 연륜.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이상원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더욱 인정받는 화가
1999년 러시아 예술의
자존심이라는 러시아 뮤지엄.
이상원 화백의 전시가 열린 것이다.
전시가 열린 자체만으로도 영광이라는
그 곳에 미술 교육도 받지 않은 그가 동양인으로는 처음,
생존 화가로는 샤갈 다음으로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장지에다 유화와 수묵, 물과 기름으로 인물을
그린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이 전시회에서 "동서양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작품으로
아방가르드로만 치닫는 러시아 작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01년 상하이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는
"진정한 수묵의 현대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나를 매우 감동시킨 것은
이상원의 모든 창작에 관통하고 있는
박애정신이다. 이상원이 관심을
가진 것은 다름아닌
우리 세상에서 제일 평범하고 비천한
구석이다. 그는 폐기한 그물, 쓰레기 더미,
눈 덮인 곳과 백사장 위의 바퀴자국, 그리고 모래 위의
바퀴자국처럼 세월의 조수에 사라질 인간들을 그린다.
그들은 활력과 생기를 지니고 살지만 곧
사라질 존재이다. 바다의 백사장은 원래 깨끗하고
순결한 것이었고, 낡은 마대는 본래 초록의 식물이었다.
또한 노쇠한 동해 어부는 원래 청춘의 열망으로 가득찬 영웅이다!
다른 화가들은 그들 어부의 과거를 많이 묘사했었다.
하지만 화가 이상원은 다른 작가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하는데,
노쇠한 어부들의 현재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 그것이다.
이상원은 따뜻하고 세밀한 기법으로 과거 이후의
현재를 그린다. 작가는 분노와 애통함을
겪은 이후에 마음의 평정을 이룩한 사람처럼,
충만한 사랑의 감정으로 가득찬 손을 통해
지나간 것들을 어루만지는 것과 같다.
1990년 중국미술관 전시회 서문
미술평론가/수천중(水天中)
첫댓글 글이 슬프네요. 자본주의 사회의 가정의 모습이 아닌지...멋있는 화가이시네요. 노년의 모습이 조금 더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요?
참...좋으네여...
그런데... 그 게... 말입니다. 거의 20년을 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다 보니... 참... 그 게... 그렇습디다.
마음안에서 천국과 지옥이 왔다갔다 하지요.. 뿌리님 대단하십니다..정말 대단하십니다..천국가실거에요..주님께서 수고했다..하시며 손잡아 주실거에요..왜 눈물나지..--ㆀ
부모는 열 자식 길러도 열 자식은 한 부모 모시기 어렵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림이 참 리얼해요
병원에서 시어머니 10년..이제는 친정 부모님..이제 제마음에는 싫고 좋고도 남아있지 않네요. 어느덧 그분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제모습만 발견하네요. 그림 음악 모두 참 ~~~
비오는 아침,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생명력 임을 다시 한 번 느껴봅니다...